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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0 | [서평]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혼인』 (또하나의 문화, 이효재외 지음, 1991)
지역사회연구모임 (2004-01-29 15:43:59)
1. 당신의 결혼사상은 무엇입니까? 결혼식은 어떤 방식으로, 왜 그렇게 하려고 합니까? 우리나라 전통혼례의 역사와 숨은 뜻을 아십니까? 민주적 혼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혼하기 위해서 만약 이러한 질문에 부딪힌다면 우리들은 무엇이라고 답변할 수 있을까. 세상은 날마다 결혼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떨지만 결혼의 의미나 올바른 혼례에 대한 고민은 없는 듯하다. 어쩌면 이러한 인식의 부재는 현실 문화에 대한 의심없는 신뢰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혼수를 알뜰하게 장만하는 법이라든지 신부화장 잘하는 법에 대해서는 여성지의 아낌없는 관심이 뒤따른다. 그러나 예식장과 피로연은 언제부터 생겼고 왜 생겼으며 폐백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묻는 이도 없고 답하려 애쓰는 이도 없다. 현 결혼풍속도는 혼례의 의미라든지 가족의 민주화와 문제점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은 도외시 한 채 혼수니 예단이니 남들 하는대로 무작정 따라가기 바쁘다. 또 한편으로는 각 시기마다 결혼에 대한 사상이 다르고 전통과 현대와의 갈등이 뒤따르다 보니 어떻게 결혼을 바라봐야 하며 진정 결혼의 가치를 잘 살린 결혼식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혼돈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판국에 혼인이란 대체 무엇인지에 관해서 사회적 맥락속에서 파악하려는 책들을 만나보기가 힘든게 현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우리들에게 조금이나마 해갈의 기쁨을 준다. 가족의 민주화와 안정을 지향하기 위한 한국가족연구의 첫 번째 시도라고 할 수 있는 이책은 혼인을 주제로 한 6개의 연구논문을 엮은 결과물이다. 혼인의 역사적 상징적 의미를 고찰하는 연구와 더불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의 혼인의 상품화 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혼인 양상에 대한 계층별 분석을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도시 저소득층과 도시 중간계층의 혼인양태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각 계층의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를 통해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자의 선택과정, 혼인의식 및 혼수와 예단, 혼인생활에서의 혼수의 영향, 신랑 신부측 예물 들이 상세하게 조사되어 있다. 또 혼인으로 인한 사회문제의 원인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진단할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2. 우리 사회는 갈수록 핵가족화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핵가족화는 부부중심주의로 나타나며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부부의 생활기간이 길어졌다. 그에 따라 평생의 반려자를 맞이하는 혼인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으며, 양성평등의 혼인관계를 통해 가족의 민주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사상이 확대되고 있다. 혼인은 개인적으로는 인생주기의 또 다른 한단계로 접어드는 발전단계이자 사회적으로는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족을 구성하여 안정적으로 사회성원의 재생산을 담당하기 위한 시작이다. 그러나 이 책의 연구자들은 오늘날의 혼인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다. 비록 사상적으로는 일부일처제의 건강하고 평등한 결혼사상을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성장에 의한 시장경제의 지배로 여성을 억압하고 성을 상품화하고 사유화하는 가부장제 현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한다. 중산층에서는 여성을 전담주부로 강요하여 소비의 노예로 비인간화시키고 있으며 맞벌이 부부의 경우라도 가사노동의 분담을 통한 여성의 자아실현은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자계층에서는 경제적 자립과 생존을 위해 임노동자화한 남녀가 저임금에서 오는 경제적 요구를 해결할 목적으로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동거상태로 들어감으로 인해 사회적 법적 승인으로 완성되는 혼인의 불안정성을 겪고 있다. 이러한 계층별 혼인 실태는 이책에서 상세하게 사례조사 및 질문지 조사를 통해 실증하고 있으며 이것은 성과 계급을 차별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영향이 혼인과 가족관계를 위협하는 요인임을 보여준다. 곧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영향은 가족의 민주화를 저해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성의 상품화가 성의 무책임한 자유를 조장하거나 혼인관계에서 경제적 이해타산을 앞세우게 됨을 강조하고 있다. 값비싼 예단을 해가야만 시가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떳떳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를 말해준다. 또 갈수록 같은 계층의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동류혼이 성행하는 데 물론 서로의 환경이 비슷함으로 인해 결혼 적응도가 높을 것이라는 추측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도 경제적 수지를 맞추기 위한 혼인거래가 더 중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남는다. 또한 우리나라 전통혼례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현재에는 어떻게 수용되고 단절을 겪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의례가 ‘직접적으로 감지될 수 없는 믿음, 이상, 가치, 정서등을 구체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혼인의례의 올바른 자리매김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지를 고민하게 한다. 흔히 우리것을 찾자는 뜻에서 제현되는 대학가의 전통혼례가 사실은 민속 고유의 혼례가 아니라 지배층에 의해 강요되어졌던 규범으로서 당시 지배이데올로기를 대변해 주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우리가 얼마나 혼인에 관해 정작 알아야 할 것에 무심했던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더욱이 갈수록 어려워 지는 농가 경제와 농촌의 결혼문제에 관한 연구를 읽을 때면 그 해결책은 결코 ‘농촌총각 짝지워주기’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3. 가족연구의 첫발을 내딛는 연구라고는 하나 기왕에 시작한 연구하면 좀더 사회구조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혼인에 대한 심층적 진단과 해결책 모색에 나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제목에 비해 연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혼인과의 사회구조적인 연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한계점과 연구자들의 관점이 통일되지 않음으로 인해 무슨 말을 하려고는 하나 핵심을 찌르지 않고 지나가버린 듯 한 느낌을 갖게된다. 혼인에 대한 원칙의 천명, 혼인사상에 대한 소개, 각 계층별 혼인 실태조사와 전통혼례의 연속과 단절에 대한 역사적 고찰, 그리고 현대 결혼의례의 의미에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결혼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비누거품처럼 허망한 이데올로기속에서 혼인이 무엇인가라는 알짜를 놓치고 형식에만 치우치고 마는 것은 결코 개개인 인식능력의 문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 어떠한 상품의례절차를 살 것인가라는 개념과 통하게 되는 이상 결혼산업은 번창할 것이고 결혼의례는 갈수록 형식적이 될 것이다. 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법칙을 뒤바꾸지 않는 한 열성만으로는 피해갈 수 없지만 적어도 의미를 알고 행하고 올바름을 실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국적없는 결혼풍속도 많이 바뀌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올바른 혼인의례가 무엇인지는 이 책에 없다. 앞으로 많은 고민과 실천속에서 재정립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필요로 이 책에서 결혼식의 전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다만 우리시대 결혼의 풍속과 그 문제점을 살펴보고 그 원인을 정치경제적인 입장에서 진단하고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도모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할 준비가 된 사람이라면 많은 시사점을 얻게 될 것이다. (정리․김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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