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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9 | 연재 [저널초점]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황토현 전적지, 그 속빈 강정
윤덕향(2004-01-29 15:44:37)


지난 여름은 정말 돌이키기도 싫을 만큼 짜증스러운 날들이었다. 지루한 장마와 그 뒤를 이은 더위와 눅눅한 습기로 불쾌지수는 최대치를 웃돌고 일에 쫓겨 지친 몸과 마음은 금방이라도 자리에 널부러지고 싶은 날들이었다. 참다못하여, 아니면 아이들 성화나 주변 사람들의 들뜬 행렬에 휩쓸려 떠난 피서 여행은 초장부터 파장까지 피곤의 연속이었다. 미친 듯한 차량행렬, 바다건 산이건 계곡이건 어느 한곳 마음 히 비집고 앉을 수 없게 시리 뒤덮인 각종쓰레기 더미, 썩어 가는 음식물에서 풍기는 냄새를 따라 눈앞을 오가는 파리떼, 불친절이 아니라 무 친절의 극치를 이룬 각종 접객업소의 상혼, 그것들은 교양이고 인격이고 사회적 체면이고를 떠난 광란하는 여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중에도 한줄기 상큼한 바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7월말부터 2주간에 걸쳐 있었던 시민강좌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지루한 장마 비를 불구하고 모여든 이 지역 이런저런 분들의 진지한 참여는 어느 호화로운 맥주 집에서도 제공할 수 없는 청량제였다. 비록 우리의 준비 미흡과 열의 부족으로 기대한 만큼의 참여를 끌어낼 수는 없었지만 강의를 맡은 분이나 듣는 분들 모두의 열의는 갑오농민전쟁 100주년 기념사업이 결코 우리만의 의로운 몸짓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시민강좌의 마지막 날 있었던 답사는 시끄러운 에어콘 소리와 곰팡내나는 강의실을 벗어나 매미소리와 밝은 햇빛 속으로 찾아드는 작은 가슴 설레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장이 주는 그 강렬한 의미와 감동, 아니 여름날 벼가 익어 가는 들녘을 바라보는 그 풍요로운 느낌은 처음 찾아든 백산 에서부터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 같은 상실감은 삼례를 거쳐 전주로 돌아오는 차안에까지 이어져 방향 모를 분노와 배신감을 가슴 가득 담고 오는 여정이 되고 말았다. 이는 결코 이번 답사 길에 동행한 분들이 안겨준 것은 아니다. 아니면 길게 이어지는 답사 길의 무더위나 차멀미 따위에서 비롯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곳에서도 갑오농민전쟁의 정신을 전해 주는 곳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사실 그 같은 기대자체가 무리한 것이었고 여름밤의 꿈과 같은 것이었기에 나 자신에 향하는 분노나 배신감이었는지도 모른다.
백산은 농민전쟁 초기에 반봉건의 기차아래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머리끈 질끈 동여매고 모여들어 ‘서면백산, 앉으면 죽산’ 이라는 말을 낳게 한 곳이다. 마지 못한 듯 세워진 비석과 안내판의 내용 중에는 왜 이곳을 집결지로 선정 했겠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마한시절의 토성이 있었던 곳이다. 따라서 농민군 지도부에서는 이 같은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알고 이를 이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여하튼 비석을 세우고 정자를 짓기 위하여 축조된 성이라고 하더라도 그 역사적 의미에 비추어 잘 보존되어야할 곳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에 돌을 파내는 곳이 있어 유적의 보존을 거스르는 망치 소리가 드높기만 하였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이곳에서 돌을 캐내는 일은 아마도 보존구역의 외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을것에 틀림없을 것이지만(?) 자칫 유적자체의 성격을 망가뜨릴까 두렵기만 하다. 왜냐하면 이 낮은 구릉자체가 당시 토성으로서 방어의 구실을 한 것이지 성이 축조된 곳만이 방어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지형을 훼손하면 그로써 성의 의미는 감소되며 자칫 전혀 무가치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어서 찾아든 황토현 전적지는 넓은 자리에 백산에 비하여 얄미울 만큼 말끔히 단장되어있었다. 우뚝한 전적비, 잘 손질된 잔디밭, 성격을 알 수는 없지만 웅장하게 들어선 건물과 담장, 주차장과 값비싼 돌로 만든 길...곳곳에서 돈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것도 모자라서인지 전시관 뒤로는 또다른 건물을 짓는 분들의 손길이 바쁘기만 하다.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잘 꾸며진 황토현 전적지는 가히 다른 전적지들의 모범이 될만한 것이었다. 다만 아쉽다면 날씨가 더운 탓인지 우리 일행말고 찾아든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필요하다면 사람들을 동원하면 될 일이니 구태여 트집잡을 바가 아니다. 또 그 무슨 춘향제니 사선제 같은 제전이면 약방의 감초처럼 꼭 끼는 미스XX 뽑기 같은 것도 있었음직 하지만 때를 못 맞춘 탓인지 그 흔한 포스타 한 장 남아있지 않았다.
환장할 듯한 돈냄새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전시관의 측면으로 길게 자리한 건물에 걸린 한폭의 초상화를 접하자 그 명실상부함에 압도되고 말았다. 건물 현판의 제목이 무색하게 잘먹어 개기름 번지르르한 양반의 초상화는 누가 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혹시 조병갑의 초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세상만사에 초연하고 오로지 먹고 자고 긁어들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한 그 얼굴은 너무도 바깥 건물들과 어울린다. 전체적으로 돈냄새가 나는 황토현에서 어울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 끔직한 농민전쟁 과정을 그린 기록화-어느 저명한 화가는 걸레라고 흑평을 했지만-일 것이다. 왜 평온을 깨는 그같은 살벌한 그림을 기념관에 걸어 놓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양반이 기생질하거나 뱃놀이하거나 시사회를 하는 그림이 어울릴 것이다. 아니면 다급한데 골프 치는 그림이나 사진이라도 무방할 것같다. 이왕 고칠 바에는 기념관안의 별 의미도 없는-참으로 농민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다-전시물들도 조선후기 양반들이 사용하던 백자, 문반사우, 노리개 따위로 바꿀 일이다. 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기록화도 치우고 조선후기의 훌륭한 그림으로, 진본이 안되면 사본이라도, 바꿀 일이다.
도대체 황토현 전적지 어느 곳에서도 방봉건 반외세의 거치를 내걸었던 농민군의의지나 농민군 지도부의 벙신을 찾을 수가 없다. 그것은 백산이 왜 집결지로 선택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굳이 여기서 농민전쟁 전개과정을 보여주는 상황판의 전기시설리 작동하지 않는 것을 따지자거나 전적지를 가꾸면서 이전 시기의 유적을 마구 파제낀 것을 가슴 아파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 수많은 돈을 들여서 가꾼 황토현 전적지의 호사스러움에 배가 아픈 것이 아니다. 전적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자는 것이고 전적지를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그곳에 참으로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전적지의 경우 현장성이 강조되는 것은 그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가 주는 소리를 가장 잘 듣고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전쟁 전적지들중 이번에 둘러본 삼례 집결지나 말목장터, 원평 집결지 등 많은 곳에 사실을 전해주는 작은 푯말이나 안내판조차 없는 판에 많은 예산을 들인 황토현 전적지가 속빈 강정에 불과한 것이 분한 것이다. 결국 가장 시원할 뻔한 시민강좌 마지막 날의 답사는 또다른 짜증을 안고 끝나고 말았다. 언제까지 이같은 짜증이 계속될 것인지? 어느 날에나 겉치레 위주의 정책이 끝나고 참으로 옹골찬 문화정책이 수행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차라리 서까래를 들고 물고기를 잡으려 나서야 될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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