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에서 실시했던 갑오동학농민전쟁에 대한 일련의 탐구자세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는 수많은 대중 매체속에서 우리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는 상업성이 매우 짙어 세인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해 잡지의 판매부 수만을 늘려가려는 얄팍한 상혼이 판을 치고 있다고 하다. 그런 판국에 요즈음 우리고장에서 조용히 그러나 알차게 많은 소식을 소개하고 있는 문화저널이라는 잡지가 여러 어려움을 가사하면서 꾸준히 발행되고 있는 것을 볼 때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갑오동학농민전쟁 100주년을 준비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 지역 대중들과 더불어 갑오동학농민전쟁이 지니는 정신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어받기 위해 문화 저널이 7월 30일부터 8월 10일까지 모두 여덟차례에 걸쳐 시민강좌를 실시하고 그 성과를 강좌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특집을 다루어 준것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강좌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진 역사교사로서 갑오농민전쟁에 대해 현재까지 연구가 미흡하다가 생각해왔다. 그런 중에 나름대로 생각해왔던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연구방향을 간단히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살펴 보았 을때 나를 놀라게 한 사실은 현재까지 이만 아직도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성격규정이 명확히 내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894년의 농민전쟁과의 연관성문제인데 동학이 혁명의 초기부터 과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는지 아니면 19세기의 복잡한 사회상으로 인해 농민들 자체적으로 의식이 성장한 것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자기권리투쟁의 과정에 동학이 사상적인 기반으로 작용하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명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동학교단내부에서의 1894년 농민전쟁에 대한 의견이 대립, 특히 북접에서의 농민봉기와 그 주도자인 전봉준에 대한 강한 반발, 이것이 갑오농민전쟁과정에서 무엇을 의미하고, 또 북접이 참여 해가는 과정에 대한 연구 또한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또 혁명의 지도층에서의 동학에 대한 인식과 전쟁의 주력인 농민군내부에서의 동학에 대한 인식의 정도, 동학군 내부에서의 동학교도와 비교도의 구성비율, 전쟁에의 참여 정도차이, 그 이전에 각처에서 반발하고 있었던 밀란과의 연계성문제, 그 당시에 순종만을 강요받았던 농민들이 그처럼 정부에 대해 자신들의 요구를 과감히 주장할 수 있게 만든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명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갑오농민전쟁을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그것을 발전적으로 계승할 방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저널이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작업을 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