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2.11 | [문화저널]
불에 얽힌 글자풀이
황안웅․향토사학자 (2004-01-29 16:01:36)
세상이 점차 밝아지는 걸 우리는 문명(文明)해 진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아마 인간이 불을 발견하여 화식생활(火食生活)을 비롯해 불을 이용할 수 있었기에 오늘날의 문명생활이 가능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는가 싶다. 즉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푸스산에서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이래로 우리 인간들은 어둠을 헤치고 앎에 눈을 떠 광명의 새천지를 바라 볼 수 있었고, 땅 속에 숨겨진 갖가지 광물을 단련시켜 편리한 도구를 만들어 문명의 길로 역사를 이끌어 왔다. 그럼 불은 어떤 모양을 지었는가? 자연의 상태에서 불을 볼 수 있었던 경우는 둘이다. 첫째 화산의 분출구에서 뿜어내는 불이 있고, 둘째 하늘에서 내려친 벼락이 용케도 원시림에 떨어져 온통 숲을 태우는 그런 불이 있었는데 이 모두가 아래에서 위로 타오르는 모양을 짓고 있지 안았던가? 불이 타오른 모양은 마치 물이 흐르는 모양처럼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다만 물은 겉으로는 어두우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지만 불은 겉으로는 밝으나 안속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에 물은 양쪽 바깥은 음이나 속은 양이요(☵), 불은 반대로 바깥은 양이나 속은 음이라는 점(☲)이 크게 다를 따름이다. 불에 불을 다하면 불이 훨훨 잘 타고 있다는 뜻으로 “탈 염”(炎)이라 이르고 불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누구나 그 광명을 느낄 수 밖에 없으므로 “불이 지니는 빛”(光)을 불(火)과 사람(人)의 합자로 삼았다. 어둠을 헤치는 횃불의 불씨를 누가 고스란히 남겨 오늘의 이 세상을 문명케 하였는가? 어설픈 사람은 잡을 수 없다. 횃불은 적어도 어둠을 밝히는 불이기에 어디를 비춰야 하고, 또 무엇을 향해 비춰가야 할지를 잘 아는 경험많은 어른이 잡아야 했다. 게다가 조심스레 모진 바람을 막고 제대로 불씨를 살려낼 수 있는 어른이 잡아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 특히 경험 많은 원로를 “늙은이 수”(叟)로 썼는데 이 글자의 얼개는 바로 손(又; 의 변형으로 오른 손을 나타냄)에 횃불을 들고 조심스럽게 바람따라 양쪽을 손으로 가리고 불씨를 살리고 있는 모양(臼), 바로 그런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불이 무서운가? 물이 무서운가? 혹자는 물이 무섭다 이르고 혹자는 불이 더 무섭다고 말하여 각자의 경험 내지는 견해에 따라 달리 말할 수 있지만 물이나 불은 모두가 꼭 필요한만큼 무섭고, 또 편리한만큼이나 무서운 게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물(水)과 불(火)을 공히 “재양”(災)이라 이른 것이리라. 그렇다. 문명해질수록 물이 무섭고 또한 불이 무서워져 간다. 불, 전기, 그리고 원자로, 핵반응… 이런 것들의 근본은 모두가 불이 아니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