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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1 | [문화저널]
「문화저널」 창간 5주년을 축하합니다.
임현빈 황숙․ 정훈 김경석 (2004-01-29 16:03:30)
주변인들에 대한 더 큰 관심을⋯⋯ ‘문화에 대한 따뜻한 인식과 사랑을 바탕으로’라는 문구에 이끌려 들어간지 어언 다섯해. 풍요하지만 잘 길들여지지 않은, 발딛고 서있는 이땅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증폭 되었다면 순전히 『문화저널』에 길들여 진 탓이리라. 우리에게 만남의 장이 되어 버린 『문화저널』이 이 지역 문화예술 행사에 대한 적절한 논평을 통해 독자들의 폭넓은 교감을 이루어 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일정 주제에 대한 각계 전문가의 학술적 논평은 상당한 수준에 서서 대중적 이해의 어려움을 주고 있으며, 대중문화에 대한 일방적 비판은 우선 잡지의 대중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편견없는 접근에서 싹튼다고 볼 때, 어는 한 방향에서 치우침은 前사회에 대한 ‘잘못된’ 서술-예, 양반, 서민문화…-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하여 찝찝한 느낌이다. 일정 관념에 대해 치우쳐진 사랑은 자칫 대중성을 상실하고 그 발전은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섯해를 지나는 『문화저널』이 격조높은 수준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이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주변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켜가야 하는 무거운 책임도 있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창간 다섯해 축하합니다.” (임현빈․전주 완산구 의료보험조합본부) 기왕의 노력에 천착을! 「문화저널」에 바란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그의 「조선사총론」에서 ‘조선사는 내란이나 외적의 칩입에서보다 조선사를 저작한 사람들의 손에서 더 많이 없어져 버렸다’고 말하며 사가의 사관의 부재와 사상을 표시하는 도구-문자-의 예리함과 둔함, 지방자치제의 연원과 사라짐에 대한 원인 규명을 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내가 보아온 『문화저널』은 단제 선생의 심중을 꿰뚫고 우려를 간파하기라도 한 듯한 기획과 편집으로 지역문화지로서의 독창성과 한국 문화지로서의 독창성과 한국 문화지로서 보편성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하고 자랑하고픈 간행물이다. 기실 전라도는 유사이래 부정적인 역사와 함께 문화․유물이 유실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이는 분명 제도권 교육 아래서 하향식의 역사교육의 병폐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 이 지역의 모든 것에 애착을 갖고 가꾸는데 게으르지 않았나 하는 자성의 여지도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저널』이 일구어낸 업적들, 즉 백제기행, 동학농민혁명 재평가 작업 등은 옹골찬 수확을 걷어가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문화칼럼, 저널여정, 옛말사랑, 환경문제 등 기획물들은 퇴폐․향락문화의 와중에서 초점이 되고 있는 문화정보에 대한 뚜렷한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 어디 이 뿐이랴. 전주권에로의 편중을 막기 위해 지역편집위원제를 둔 점, 사진 한 장, 광고 문안 하나 하나에 깃들여진 정성을 읽노라면 어느 새 이슬비같이 가슴이 적셔온다. 바라올 점은 기왕의 노력들에 천착을 거듭하여 호남들녘처럼 넉넉한 글판이 되기를 바라고 『문화저널』의 노력이 대중화되기를 위해, 뭇 사람들의 개안을 위해 독자들의 숙제가 무겁기만 할 따름이다 (황숙․전주시 효자동 현대아파트 101동 406호) 계속 전진하는 「문화저널」이 되길 바랍니다. 전북문화저널사가 설립된지 어느새 5년이 되고 『문화저널』도 오십세번째권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한사람의 독자로서 『문화저널』 창간 5주년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우리 사회처럼 정치, 경제, 문화등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에서 정치, 경제, 문화의 변방인이 지역의 생산적인 문화창달을 위해 노력하고 이제는 그 한복판에 우뚝선 『문화저널』은 이 지역의 자랑입니다. 특히 퇴폐와 향락문화를 반대하고 건강한 청년문화 실현과 희망찬 조국의 내일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우리에게 『문화저널』은 때로는 올바른 인식을 높이는 지침서요, 건전한 문화생활의 요구를 불러 일으키는 촉매제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습니다. 이 점은 다시한번 『문화저널』을 창조하는 모든분께 감사 드립니다. 『문화저널』이 외부의 아무런 지원도 없이 어려운 재정 조건에서도 순전히 자력갱생으로 한번도 거르지 않고 발행하며 이렇듯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문화에 대한 열열한 애정과 치열한 연구, 노력 덕분이라 판단되며 이는 우리도 따라 배워야할 모범입니다. 특히 눈앞에 다가온 동학농민전쟁 백주년을 보다 의미있고 내용있게 준비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연구발표와 기획강좌등의 사업은 귀감이었습니다. 계속 전진하는 『문화저널』이 되리라는 것은 변함없는 믿음입니다. (정훈․전주새길청년회 사무국장) 백제기행 23회와 26회 『문화저널』이 창간된 지 벌써 5년이나 되었단다. 경하해 마지 않을 일이다. 지금까지의 문화저널사의 성장과정이나 업적들은 다른 분들이 자세히 말씀하여 주실 것이고, 독자들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는다. 나는 ‘문화저널사’에 죄아닌 죄를 지은 몸인지라 그 진상을 내 입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1992년 1월 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23회 ‘백제기행’이 있었다. 전남 송광사 등지를 돌아 운주사 천불지탑을 돌아보는 기행이었다. 그날 따라 마침 일이 있어 부득이 일행들과 떨어져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어쨌든 밤이 이슥해서 출발하려니 귀찮은 생각도 들어 같이 가기로 했던 선배에게 투정을 부렸더니 극구 가자는 것이었다. 누구 고집을 꺾으랴. 서둘러 총알택시를 타고 광주로 가서 어찌어찌해서 일행이 투숙하고 있던 송광사 앞의 ‘송광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마침 전남대의 이태호교수님이 ‘조선시대의 민화’라는 주제로 슬라이드 강연을 하고 계셨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잠시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하긴 11시가 다되어 들어서니 놀랄만도 했을 게다. 들어서자마자 부터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어 다음날까지 넋을 빼지는 않고 지켜보았다. 물론 남들은 모르게 말을 붙일 염도 못내고 돌아와서는 저널의 윤 기자에게 무조건 찾아내라고 윽박질러 열흘만에 모처럼 두근반 서근반 하며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서둘러 서둘러 4월에 결혼을 했다. 사람들의 입방아가 무성했다. ‘백제기행’을 오염시켰다든가,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기행에 참가했다든가. 여차저차해서 다음 두 번의 기회를 놓치고 26회 기행에 나섰다. 마침 신혼여행을 갔었던 지리산이기도 했었고 인사는 해야 했었으니까 말이다. 저널에서 맺어진 첫 번째 인연이어서인지 내심은 불편했을지 몰라도 드러내고 박대하지는 않아 고마웠다. 속내는 불순함이 전혀 없었노라고 부정하진 않겠다. 나이 삼십에 여자도 없었으니. 아내의 몸이 수상쩍다. 내년 4월 이후에는 눈도 안뜬 아이를 기행에 데불고 다니면서 눈을 틔워줄 작정이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본의 아니게 운주사의 천불천탑에 불공을 드리고 와서 바라는 딸이 아닌 아들을 낳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는 것이다. 처음엔 꼭 딸을 보고 싶은데. (김경석․전북대 대학원 영문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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