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11 | [서평]
우리 역사적 대의, 적극적으로 조명
『전 인민군 종군기자 수기 이인모』
(이인모․신준영 씀, 월간 『말』, 1992)
전북청년문학회
(2004-01-29 16:09:45)
올 가을 독서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두 권의 책이 잇다. 북한작가 백남룡 씨의 소설 『벗』(살림터)과, 월간 『말』지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전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씨의 수기가 그것이다. 『벗』은 이미 여러 가지 지면을 통해 다양하게 소개됨으로써 남한 독자들과 친숙해졌고, 시내 유명서점인 ㅎ서점에서도 당당히 베스트셀러레 진입되는 쾌거(?)를 올린 바 있다. 아직 이인모 씨의 수기가 10위권에 진출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지만 현재의 추세로 볼 때 머지 않아 메달(!)을 획득할 전망이다. 이들 책은 시대배경이나 내용에 있어 상당한 차이점을 갖고 있지만, 분단체제의 소산물이라는 점과 ‘통일’이라는 역사적 대의를 적극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동질성을 갖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기는 해도 이 두권의 책을 읽고 난 후의 감동에는 아주 미묘한 편차가 존재한다. 『벗』을 읽고 난 뒤의 감동에는 어떤 설레임이나 아름다움이 끼어들 여지가 충분히 있지만, 이인모씨의 수기를 읽고 난 뒤에는, 읽는 도중에도 그렇지만 설레임보다는 분노가, 아름다움보다는 혐오나 증오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흔들림 없이 역사를 살아왔고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증거하는 한 존재에 대한 가슴아픔 연민과 존경, 나아가 나약한 자신(우리들)에 대한 반성으로 이야기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이인모씨의 수기를 토론하는 청년문학회의 분위기는 『벗』의 그것과는 달리 매우 침울하고 비장하기까지 했다.
익히 알고 있듯이 ‘리인모 로인’의 송환문제는 남북 고위급 회담과 적십자 회담 등에서 주요 안건으로 거론될 만큼 국내외적으로 큰 파장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유명세(?)를 감안한 탓인지 이 수기의 제목은 그냥 『전 인민군 종군기자 수기 이인모』이다. 『남부군』이나 『조국』, 『최후의 빨치산 000』등의 빨치산 활동 관련 책 제목에서 보여지는 어떤 상징성이나 비장미를 이 책 제목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어쩌면 이것은 그간 발행되었던 빨치산 활동 관련 수기들이 역사적 진실을 심히 왜곡한 채 무책임하게 쏟아져 나온 것에 대한 이인모씨의 적극적인 반감(?)의 표시일지도 모른다. 내용에 있어서도 비남로당 출신의 빨치산으로서는 최초로 쓴 수기인 만큼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약간의 지식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 특히 빨치산 투쟁의 전설적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이현상 부대’에 대한 새롭고도 냉정한 시각은 이 책 전반에 걸쳐 매우 돋보인다 <빨치산=이현상> 밖에 몰랐던 많은 독자들은 자칭 ‘남부군 총사령관’이라 주장했던 이현상의 직책이 ‘거창한 간판’에 불과했으며 ‘종파적 경향’까지 내포하고 있었다는 이인모씨의 발언에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또한 정전 후 빨치산의 ‘운명’을 남로당과 북로당의 군력투쟁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것에 대해 단호히 비판하고, 빨치산을 일컬어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사람들” 운운하는 ‘낭만적’ 해석에 대해 거의 증오를 보내기까지 하는 이인모 씨의 태도는 그 결연함에 대한 존경과는 별도로 우리를 약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단순한개인의 일대기를 넘어서 한국현대사의 주요한 대목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동일한 입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각각의 수기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그다지 성숙한 태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빨치산 활동 당시 중앙당과의 연락이 전혀 신속하지 못했고 연락선이 두절되기가 다반사였으며 각 부대들도 유격활동의 특성상 뿔뿔이 흩어져서 활동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빨치산 활동에 관한 역사적 복원작업은 단순한 시대적 요청을 넘어선 이상의 거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난과 오욕의 역사를 관통하고 살아남은 이인모씨는 ‘살아남음’의 의미를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빨치산을 소재로 한 몇 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34년 감옥살이에서 살아남은 것을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적어도 우리 동지들이 살아 있는 한 허튼 소리를 하는 자들도 예전처럼 제멋대로 굴지는 못할 것이 아닌가.>
어쨌든 이인모씨는 ‘마땅히 죽였어야 하는데 아직 안 죽인 놈’에서 이제 ‘당당히 살아남아 역사를 증거하는 자’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이인모씨의 삶을 이야기 할 때 ‘1917년 함경남도 여어골에서 태어나…’하는 식의 서술은 그 절절하고 엄혹한 운명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 아니 어떠한 글로도 이땅 장기수들의 북받치는 삶과 한과 신념과 절개를 만족하게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차라리 그들의 독백에 조용히 귀기울이는게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조국통일에 몸바치겠다고 지리산 눈밭을 달렸던 서른 살 시절. 그리고 체포되어 굶주림과 폭력,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7년후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 그러면 뭔가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독방의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던 시절. 드디어 옥문을 나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숨죽이며 살피던 때의 설렘. 박정희 군사정권의 의도된 탄압으로 다시 그들의 포로가 되어 대전형무소에 갇혔을 때의 절망감. 이제 조국통일을 위해 벽돌 한 장 쌓아올릴 기회도 없이 손발 묶인 채 평생을 갇혀 있게 되었을 때의 그 깊고 깊은 절망감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리.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그러나 더 늦기 전에 모두 표현하고 말겠다는 노전사의 초조한(?) 조국애와 동지애는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에피소드’형식으로 처리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그러나 수백 수천의 영웅적이고 처절한 죽음들을 단 몇 줄의 글로 압축시켜 표현해야 할 때, 정작 더 안타까운 사람은 이인모씨 자신이었을 것이다. 수기 속에 실린 몇편의 시들과 자주 등장하는 감탄사가 그것을 말해 준다. 굴욕적인 전향을 거부하고 기꺼이(?) 수행한 감옥살이 34년을 마치고 이제 일흔 여섯의 백발로 역사와 민중 앞에 선 전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씨. 그는 다른 동지들 앞에서 자신의 행복(?)을 미안해 한다. 손자 앞에 자신은 부끄럽지 않은 전사가 되었고 지구를 몇 바퀴 돌았건 간에 어쨌든 서로 연락도 하고 살기 때문이다. 소식을 몰랐을 때보다 알고도 가지 못하는 고통이 더 크다고는 하지만 사랑도 명예도 청춘도 목숨까지도 잃어버린 다른 동지들을 생각하면 어찌 자신의 고통을 고통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산 속에서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며 죽어간 동지들의 청춘과 투쟁과 애국심을 기록해 후세에 남기는 일, 이 일이야말로 죽을 날이 다 된 인민군 종군기자의 최후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훌륭하게 그 임무를 마친 이인모씨는 이제 그의 일생 최후의 최대의 소원인 “통일조국”을 기다리며 ‘한 개 바윗돌처럼’ 앉아 있다. 감옥생활 초기에 마포형무소에서 지었던 시의 한 구절을 다시 그에게 되돌려 준다.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기쁨이여 영광이여
네 뼈마디에 마지막 기름이 마르고
네 가죽이 백골보다 앙상한 뼈를 감쌀 때까지
네 심장이
마지막 맥박을 칠 때까지
조국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