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하늘이 머리위를 수놓는 이맘 때 쯤이면, 해마다 생각나는 한 학생이 있다. 3년전 시골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2교시후 지난 시간의 학습내용에 대한 성찰에 골몰해 있을 때, “저―, 선생님 힘이 없고 배도 아파요 조퇴 좀 시켜주세요.” 평소, 착실하고 귀엽던 2학년 우리반의 1번 아이였다. 창백한 얼굴색을 보니 아무래도 꾀병은 아닌 것 같기에, “그래, 오늘 가서 푹쉬고 밝은 모습으로 내일 만나자.”고 대답해 주었다.
그후 이틀간을 계속 결석하기에 전화로 확인하였더니,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받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일까?’
1주일 후 그의 아버지한테서 전해진 병명은 ‘백혈병’. 서둘러 병원에 피가 멈추지 않아 수혈도 하지 못하고 앙상한 몰골만 남아있었다. ‘저럴수가…….’ ‘엊그제까지, 교실 앞자리에서 장난하고 친구들을 웃기고 개구쟁이 짓을 하던 아이가…….’ 많은 학급 학생들과 전체학생들이, 구명운동에 참여하고 헌혈에 적극 동참하였다. 그러나, 한달 후 그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린 한 생명의 죽음. 젊은이의 죽음. 반 아이들과 백마강에 젊음의 물망초를 뿌리면서. ‘과연 人生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 속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가? 늙을때까지 무병장수하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는 없을까? 과연, 행복이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맹자는 부모가 살아 계시고, 형제무고가 첫 번째 즐거움이라 했건만, 오늘 하루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활기차고 희망찬 생활이 되도록 도움말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고 행복을 느껴야 할 장소는 바로 여기(교실)라고 자신 있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며칠 전, 교과서의 詩를 감상하고서, 여유 있는 시간에 백지를 나누어주며 아이들에게 「행복이란?」이라는 주제로 글쓰기를 할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가 흔히 현재 우리의 교육을 주입식 교육이다. 입시위주 교육이다 라는 등 많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자신을 점점 해보고, 수정해 보고, 정서가 매마르고 삭막해져 가는 이 시대에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음미해보고 서술해주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행복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은, 목표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며, 목표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며, 목표 없이 살아왔다는 것은, 人生을 방황하며 허비했다는 증거입니다. 행복이란 정의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각자 나름대로 솔직한 심정을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을 곁들이면서……. 종이를 받은 학생들은 진지하게 쓰기 시작하였다. 고민하는 학생, 웃는 학생, 서로의견을 주고받는 학생, 엄숙한 시간이었다.
많은 학생들의 글을 읽으면서, 난진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꼇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행복의 제1순위로서 가정이 화목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을 뽑았다. 또한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목표를 달성했을 때 성취감이 행복인 것을 나름대로 표현하였다.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으며 나의 마음속에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많은 아이들이 써주었다. ‘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인가?’
대부분의 학생들의 건전한 인생관을 칭찬하면서 가슴 가득 뿌듯함과 마음 한구석에 나는 과연 행복한가? 라는 의문을 가져 보았다. ‘나는 과연 고직에 대한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교단에 서 있는가?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대하며, 사랑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또한 자기개선에 게을리 하지 않았는가?’ 반성해 본다.
‘혹,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사회에서 경험하는 실제가 다를 때,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교에서 1+1=2로 가르쳤는데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1+1=3이 나올수 있고, 1+1=4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교직에 대한 허무감만 느낀다. 이럴 때 아이들에게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며,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조화롭고 균형있게 유지하라고 말한다면 설득력이 있을까?
나는 오늘도 교무실의 책상 앞에 앉아 한 학생이 쓴 행복이란 정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