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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1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주목에 값했던 영화, 그 당연한 흥행의 성공 「하얀 전쟁」
장세진․방송평론가 (2004-01-29 16:13:16)
10월 4일 폐막된 제5회 동경영화제에서 「하얀전쟁」이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대견스럽고 축하해줄 일이지만 한편으로 외교적 성과는 그럴듯해도 내치(內治)는 빈한해 보이는 이땅의 정치판과 너무 비슷하여 우울하기도 하다. 정지영 감독이 수상소감에서도 말했듯이 검열철폐와 소재제약의 전면 개방이 이뤄지지 않아 그렇고 그런 저질 싸구려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저간의 현실을 「하얀전쟁」은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정치의 민주화가 하루속히 이뤄져야 할 이유가 거기에도 있는 셈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하얀전쟁」은 안정효의 동명소설을 「남부군」의 정지영 감독이 베트남 현지촬영으로 연출한 영화이다. 지난 여름 흥행호조로 영화계를 흥분시킨 「결혼이야기」․「장군의 아들3」․「시라소니」들처럼 보도자료 등을 통해 너무 많이 알려진 터라 굳이 영화를 보지 않고도 내용이 대충 짐작될 정도이다. 분명한 것은 「하얀전쟁」이 앞의 영화들과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이미 「남부군」으로 보여 주었지만 비극적 현대사의 하나인 월남전을 바로 우리의 시각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플래툰」․「디어헌터」등 월남전을 다룬 외국영화들이 거둔 프리미엄때문 「하얀전쟁」에 관심이 쏠렸는지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변화를 실감케 해주는 건 사실이다.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해외촬영이 하나의 유행이다시피 한 때가 있었다. 미국, 일본, 스페인, 프랑스, 스웨덴, 독일, 브라질, 심지어 시베리아, 알라스카까지 영화를 찍으러 갔고, 어김없이 개봉되었지만 대부분 관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속되게 말하면 본전도 못건진 흥행참패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얀전쟁」은 우선 주목에 값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많은 돈을 들여서 배경 정도만 찍어왔던 흥행참패의 영화들에 비하면 「하얀전쟁」은 치유하기 힘든 이 땅의 상처를 공산 베트남에 가서 담아온 것이다. 적어도 해외촬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영화의 한 모형을 제시해준 셈이다. 그 상처는 ‘80년대 이 땅의 일상현실 속에서라면 터뜨리지 않아도 통증이 오는 그 상처는 한기주(안성기)와 변진수(이경영)등 참전병사들을 통해 전달된다. 더 자세히 말하면 나레이터 한기주의 회상과 변진수의 귀국후 일상생활이 교차되면서 나타난다. 하기주는 섹스가 안될 정도의 월남전 상흔을지닌 정신적 불구자이며, 변진수는 아예 살짝 미쳐 있다. 10년이 지난 현재 그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대개 월남전 회상을 통해 설득력을 주려고 한다. 한병장이 겪는 토굴에서의 공포와 무차별 난사, 민간인들을 죽이고 위장한 김문기 하사 (독고 영재)와 그를 죽이는 조태삼 상병(박흥근), 또 그것을 목격한 변일병의 전쟁증후군 현상들이 그것이다. 그런 장면들은 헬기의 굉음과 함께 역동성으로 화면을 꽉 메우지만, 그러나 뭔가 아쉬움이 느껴진다. 이른바 우리의 시각 때문인지 모르지만 자중지란을 통한 전쟁의 공포와 무용성 부각이 왠지 겉도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원주민들의 “더러운 따이한 놈!”이라든가 한기주의 “전쟁을 체험해 보고 싶은 건 허영”이라는 자조섞인 탄식 따위도 겉돌기를 도와주는 장치들로 보인다. 물론 월남전 후유증을 갖고 있는 변진수와 한기주가 80년 ‘서울의 봄’에 놓이게 되는 장면의 극적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본질적으로 전쟁의 무용성에다 그것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또는 참전할 수 밖에 없는) 실마리 제시로 최루탄과 화염병의 정치현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범’이 따로 있긴 하지만 그러나 이 땅의 젊은이들이 왜 무모한 대리전쟁에 기어들 수밖에 없었는지 구체적 접근이 없어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심지어 한기주의 자조섞인 탄식에 귀기울이다 보면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복무중 사고쳐서 월남전쟁에 자원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듣기로 그런 개인사적 경우가 아주 없었던 바도 아니지만 지금 속속 밝혀지고 있듯 정권유지차원에서 소위 파월이 자행되었음을 보다 명쾌하게 밝혔더라면 더 좋을 뻔 했다. 필자 개인으로 또 하나 아쉬웠던 것은 한기주가 변진수를 권총으로 쏴 죽이는 결말 장면이다. 어떤 평론가는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린 변진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라는 한기주의 행동”이 감동적이라 말하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엔 주제의식이 약화되는 「하얀전쟁」의 한계였다. 그것이 같은 참전용사인 한기주의 몫도 아닐뿐더러 그로인해 월남전 후유증을 깨끗이 청산하겠다는 조급한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다루는 영화는 그냥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환기정서가 관객의 몫임은 물론이다.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좋지만 해결하거나 재단해서는 안된다. 정신이상된 상태에서 변진수는 으레 그랬던 것처럼 지향없는 발길을 서둘러 돌리고, 한기주는 애절하게 그를 부르며 뒤쫓는 결말이 오히려 「하얀전쟁」이 노린 전쟁의 무용성-그 괴물에 할키고 찢긴 비극적 역사를 훨씬 인상깊게 하지 않았을까. 한편 월남전 참전 단체들의 삭제요구(중앙일보.92.7.11 참조)에, 당연하지만 의연하게 대처한 정지영 감독의 용기와 신념은 또 다른 감동으로 받아들여진다. 무릇 예술은 이해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정권보다 더 큰 세력의 압력단체가 되어 우리영화 발전을 저해해왔거니와 조태삼 상병의 김문기 하사 살해장면 등이 잘렸더라면 아주 엉터리가 될뻔 했음을 전개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하얀전쟁」은 현재까지 53만명으로 최다관객동원 기록을 세운 「결혼이야기」와 내용등 비교할 수 없는 면이 많지만 흥행면에서도 성공한 영화로 알려졌다. 정치․금기의 역사, 노동현실, 전교조, 학원문제 등 소재의 전면 개방이 이뤄진다면 우리영화의 활성화는 시간 문제임을 「하얀전쟁」의 25만명 관객동원은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다시 한 번 「하얀전쟁」의 세계제패를 축하하고, 아직 못 본 사람들에게 볼 것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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