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가 내년부터 (1992년)문예진흥기금으로 지방문화예술 활동에 재정적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반갑고 기대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문화예술분야의 일을 해오고 있는 많은 시람들과 함께 필자는 개인적으로도 대단히 깊은 관심과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중이 하나이다.
“과연 누구에게 얼마나 지원이 될 것인가?”
“지원대상은 누가 어떤 기준과 방법으로 선정 할 것인가?”
“온다라 미술관도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설레 이는 관심과 부푼 기대의 언저리 한편으로는 씻을 수 없는 우려와 불신의 그림자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관주도 지원의 형태를 어쨌거나 관변의 행사들에 지원된 경우가 대부분이 거나 인맥, 학맥, 관료적 판단에 좌우되어 편향되어 시행되어온 바가 적지 않기 때문에 느껴지는 피해의식, 소외의식, 불신감들이 지금도 고정되어 남아있다.
질곡의 6,70년대를 지나 변혁기의 80년대에 이르러 문화예술계에도 새로운 가치인식의 틀 속에서 참된 문화예술을 실천하려는 구체적이고 민중 민중적인 운동이 펼쳐지고 확산되어 왔지만, 이러한 일에 지원과 격려는 고사하고 오히려 배척과 방해, 감시의 눈초리 만을 받았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이번 문예진흥기금 지원에 기대를 거는 것은 그 동안 온다라 미술관을 운영해 오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절박한 재정 압박으로 인한 어려움을 직접 체험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미리 양해를 얻어야 할 것은 이렇게 지대한 관심거리에도 불구하고 문화저널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서 사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예진흥기금이 운용에 관한 한 나 자신(온다라미술과)이 직접 이해 당사자이고 무엇보다도 좁은 생각으로는, 이러한 기금은 그 동안의 미술관 사업의 양적, 질적 여러 객관적 여건으로 보아 당연히 그리고 많은 지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확신과 주장을 강조 할 수 밖에 없는 심정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은 문화저널로부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미술관 일을 하는 내가 이 기회를 통해 주장을 펼쳐보라는 설명에 응락 하였음을 밝혀 둔다.
도내에는 문화예술에 관련된 일을 하는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있다. 열악한 조건에서 힘겹게 버티다가 중도에 그만 둔 것도 있고, 지금도 힘겹지만 꾸준하게 버텨오는 데도 있다. 온다라 미술관도 그 중의 하나이다. 체험적으로나 심정적으로 잠깐 온다라의 처지를 밝힘으로써 이해를 돕고자 한다.
온다라미술관은 87년 10월 1일 문을 열었다. 근4년여 동안 전시회, 강좌, 강연, 그 외의 기획 행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행사를 치루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미술관의 일년 예산 중 직접경비는 약 5000만원 정도 되는데 자체 수익으로는 대략2000-3000만원 정도가 충당되고 그 부족분은 내 개인적으로 밀어 넣어 왔다. 간접경비(본인월급, 전세금, 감가상각비, 활동비 등)를 포함시키면 적자는 더욱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문닫지 않고 4년을 끌어오니 가끔 주위에서 “참 오래 버텼네! 애 썼어” 인사를 하면 나자신 이렇게 말한다. “온다라가 성공한 것은 딱하나! 문 안 닫고 이제껏 살아남은 것 뿐이야” 씁쓰레한 댓거리지만 이것이 현실인데…. 하며 자위를 하곤 한다.
예를 들면 매년 겨울에 온다라 미술강좌를 열어 왔는데 이 경우엔 수강자 1인당 12,000-15,000원의 참가비를 받아서 약 100여명의 인원이 강좌에 참여하게 되는데 (100여명은 행사가 매우 잘되는 경우의 인원이다) 이렇게 성공적인 경우에도 강사비, 숙박비, 홍보비, 준비비 등 지출예산을 감당하기 어렵고 결국은 행사비 적자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행사가 자체 수익으로 비용 충당이 안되니 적자는 계속 누적되고 운영은 그만큼 더 벅차질 뿐이다.(타 단체의 강좌의 경우도 비슷비슷한 실정이다.)이런 식으로 누적된 행사적자를 메우는데 년 2,000-3,000만원을 출혈해도 운영자체는 늘 어렵다. 이러한 여건으로 4년을 꾸려왔으니 “살아남은 것 자체가 성공”이라는 푸념이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미술관의 재정적 어려움은 획기적 대안 없이 개선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찬 금액을 투자하여도 근본적인 방안이 되지를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 문예진흥기금이 재정지원 소식은 나 자신과 이런 일에 어렵게 일을 해왔던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문예진흥기금은 기금이 효율적이고 공정한 운용을 위하여 문예진흥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지원대산 선정 및 규모등 이와 관련된 업무를 맡을 계획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에 필요한 제반 세부운용 원칙을 결정하고 그것을 기초로 실제 운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무리 좋은 원칙과 제도를 명문화 해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좋은 제도의 실행에는 그 일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위원의 소명의식, 공정성, 균형감각, 객관성유지 등의 여러 요건들이 전제 되어야 올바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지 인맥, 학연, 지연에 따른 이해관계나 판단에 따르는 편협성 등으로 과거와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 한다면 잡음과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조성된 30억원의 재원은 도민 모두의 귀중한 부담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쓰임새가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용도로 쓰이거나 낭비적 요소가 없도록 바람직한 운용이 되어 지역 문화예술발전의 기틀이 되고 그 혜택이 도민 모두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기대하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기금사용과 위원회의 모든 논의는 공개적이어야 한다. 공개적 논의를 통해서 엄정한 선정, 예산의 균형 있는 지원, 이권개입, 관료적 권위주의 등을 없애야 한다.
둘째는, 지원대상 선정기준에 있어 과거 일정기간의 객관적 사업실적의 평가를 토대로 삼아야 한다. 사업실적을 통해서 누가 무엇을 얼마만큼의 재정지원이 필요한 가를 평가함으로서 인맥, 학맥, 이권개입의 야합 등 부정적 요소를 미리 막을 수 있고, 참된 문화예술활동에 적절한 분배가 가능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렵게 묵묵히 일해온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게될 것이다.
셋째는, 관료적시각과 편협된 판단을 근거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80년대에 들어와 넓게 형성된 민족민중예술을 지향하며 참되게 일하는 부분에도 똑같은 지원의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게 될 때에는 결국 관주도의 행정처리의 편파부당성을 지지하는 우를 범하게 된 것이다.
아무쪼록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어렵게 일해온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고 조그만 힘이나마 진흥기금의 도움을 받아 보다 나은 활동을 오래오래 살려나갈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