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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0 | 특집 [특집]
각 기초단위의 문화예술장에 우선 지원을
김병용(2004-01-29 16:15:04)


문화계에 종사하는 자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내적 질문 중 하나는 이른바 문화의 존립 근거에 있다.
지금은 비록 그러한 질문을 우문이라 단정짓고 있지만, 문화의 대 사회적 효용에 대한 시비만큼이나 문화와 생산력, 생산 수단과의 관계에 대해 한 번쯤은 심각한 의문을 품어보게 마련이다.
상상력과 예술적인 기능을 가시적인 경제 단위만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까닭으로, 사회 속에서 문화 예술이 잉여부산물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면 문화예술인의 이러한 고민은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돈’을 바라고 ‘돈’을 위해 봉사하는 예술인은 이 세상에 없다고 확신하지만 예술행위가 전혀‘돈’과 무관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 글을 쓰게된 동기인 ‘문예진흥기금’이란 것도, 돈과 예술간 관계의 그 교묘한 배치만큼이나 복잡한 문제란 생각이 든다.
다행히 이 나라는 통제적이고 획일적인 제반 사고가 각 분야에 침투한 탓으로 문화예술 역시 그다지 서운한 대접은 받지 않았다. (정권의 핍박을 받았던 그 많은 예술인을 잊고 하는 말은 아니다)
문예진흥기금의 역사가 시작된 때가 유신정권이라는 것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클 수 밖에 없다.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옮기면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거라 믿었던 사람들이므로 문화예술역시 ‘진흥’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면 발전하리라 믿었던 모양이다.
워낙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나라였고, 다른 나라처럼 자발적인 문예후원기금이나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통한 이윤이 보장되지 않았던 까닭을 불가피했다고 떠드는 한심한 사람들을 아직도 주위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주문처럼 외고 다니는 문화예술의 ‘개인 귀속성’이란 말에 위배된 사람이 되고 만다.
이 당시 진흥기금을 받아 발간되었거나 공연된 많은 작품들이 우리나라 문화예술사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떠드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번 뿌린 씨는 몇 해를 두고 종자를 틔우는 법이다.
필자는 단연코 이 나라에서 문예진흥기금이란 용어가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정책적 배려나 경제적 배려로 문화를 양산한다는 발상 자체에 대해 문화인은 단호히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이다.
정부에서 나라의 위신을 위해 문예를 진흥시켜야 한다는 또한 엎질러진 설탕물에 모여드는 개미떼처럼 ‘기금’을 향해 몰려드는 문화인이 있다면 그 역시 볼쌍 사나운 일이다.
일본의 ‘문예춘추’가 세칭 록히드사건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 자본이 형성이 전적으로 독립되어 있었던 연유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새삼스럽게 문화와 권력의 관계를 끄집어낼 것도 없이 현재 자본주의사회가 강요하는 자본과 예술의 논리만으로도 벅찬 판에 권력까지 끌어들인다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가 되리라 본다.
하지만 현재 이 나라에 문예진흥 기금이랑 제도가 있고 그것이 각지방에까지 확산되는 실정이므로, 문화계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효용과 배분에 대해 생각해본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겠다.
말뜻 그대로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쓰는 기금이라면 각 기초단위의 문화예술장에 대한 지원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립국악원의 연수과정이라든지, 초등․중등 과정의 학생 문예활동에 대한 지원으로 쓰여지길 바란다.
그동안 문예진흥기금의 활용방안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보았을 때, 특히 돈이 많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그 지원을 시급히 호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공연을 위주로 하는 분야에서는 그 막대한 시설비 등으로 하여 더욱 다급한 처지에 놓여있다고 보여진다. 이 부분에 대한 시설투자가 있었으면 한다. 말하자면 상설공연장을 설치하여 무료나 염가로 대관을 해준다든지, 아니면 노천극장을 하나 짓든지 하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다.(필자는 연희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긴 하나 지켜보기에 그렇단 이야기다)
극단이 운용비를 보조하는 문제도 시급하고, 각종의 개인 창작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할 수 있으나 이와 같은 문화예술의 근본적 바탕에 대한 투자가 더욱 앞을 내다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속한 문학 분야에서도 문예지로 흘러 들어가던 진흥기금이 차단되면서 대부분의 문예지가 적자경영에 시달리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줄기차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문예지들은 성장하여 발간되지 않던가.
이런 자생력이 문화계에서는 더 중요한 문제라 본다.
문예진흥기금이 가장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쓰인다고 해도 그것은 문화의 자생적 성정을 저해하는 독소가 될 가능성이 있는 판국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모든 질서가 자본주의적 질서를 원칙으로 삼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응원가’나 만들어야 했던 전제시대의 떠돌이 방랑시인이나, ‘○○창작단’의 단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안의 문예진흥기금이 관변행사, 관변인사들이 참여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으로 일관한 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남긴 게 무엇 이든가, 그간의 성과에 대해 새까만 후배가 깡그리 무시한다고 화내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학교 대항식의 백일장이라든지, 사생대회를 실적으로 올리고, 볼품 없고 실속 없는 ‘××문화제’를 폼나게 내세우는 우스꽝스러운 작태를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한다.
지금은 나무를 심는 시기이지, 그 과실을 탐할 시기가 아니라 본다.
문예진흥기금은 각 예술분야의 기초 단위장에 대한 지원과 시설 투자에 전적으로 쓰여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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