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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1 | [저널초점]
놀지 않고 일만하면 바보가 된다(?)
윤덕향․발행인 (2004-01-29 16:15:41)
맑고 드높은 하늘, 들국화 내음속에서 가을, 이 산, 저 산 붉게 물든 단풍을 따라 사람의 물결이 일렁인다. 몸과 마음 깊숙히 찌든 이런 저런 공해를 털어 낼 수 있을 법한 하늘이고 바람이다. 벼이삭을 베어내 텅 빈 들녘조차도 한줌 멋을 더해주는 날들이다. 맑은 물에 나비처럼 떠도는 단풍 몇 잎을 보노라면 세상사에 시커멓게 타버린 가슴조차 파란 기운으로 채워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이 가을, 한껏 낭만을 찾고 자연의 품속에서 노니는 여유도 이미 우리에게는 사라진 것 같다. 시간과 경제적인 탓만도 아니다. 그깟 얼마간의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를 못가질 바가 아니다. 너도나도 모두가 ‘나의 탓’이 아니라 ‘너의 탓’이라고 이구동성 외칠 것이 분명하지만 곳곳에서 반자연적인 행태가 자연을 향유하고 자연의 일부이고자 하는 노력을 망가뜨린다. 골짝마다 채워진 쓰레기는 지난 여름날 추억거리이기에는 너무 추하다. 그럭저럭 자리를 잡을 만한 곳 마다에서 들려오는 ‘고’, ‘스톱’ 의 외침은 가히 우리나라의 국기로서 고스톱의 현 주소를 가늠하게 한다. 주변에 누가 있던, 장소가 어떤 곳이던, 하늘이 아무리 맑고 공기가 달콤하건 한잔 술과 고스톱의 위력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 고스톱이 없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일부 집단에서 고스톱에서의 탈출방안으로 등장한 포커가 대신하였을까? 아니면 도박골프나, 경마로 여가를 즐겼을까? 정말 의문이다. 하기는 고스톱이 있기 이전에도 ‘섰다’니, ‘짓고땡’이 있었고 마작도 있었다. 관광버스 안에서 어깨춤을 추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에 눈살을 찌뿌리지만 정작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우리에게 그 외에 또 무슨 놀이가 있는가? 그리고 언제한번 마음놓고 춤추며 노래할 수 있는 기회가 보통사람으로서의 우리에게 주어져 보았는가? 춤추러 가면 제비가 무섭고 춤바람 났다는 주위의 눈총이 무서운 판이다. 음악회다 그림 전람회는 무슨 수준 있는 사람들이나 다니는 곳만 같다. 연극이나 무용은 그저 보통 사람에게는 텔레비젼에서나 보아야 되는 일로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을 단풍을 보기보다는 술 먹고 어깨춤을 출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이든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고 우리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하나? 고스톱이야 적은 돈으로도 즐길 수 있지만―그것도 규모가 얼마든지 커질 수도 있지만―포커나 도박골프, 경마, 마작을 하기에는 주머니가 너무 가볍다. 또 쪼그리고 앉아서 섰다나 짓고땡을 하기에는 너무 젊고 혈기가 방장한 청년들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그렇다고 계 묻고 돈모아서 관광버스를 타고 어깨춤을 출 수는 없지 않은가? 오토바이 타고, 자가용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있는 집 아이들 이야기이지 보통집 아이들이야 언감생심이 아닌가? 그러니 그저 술에 미치고 춤에 취하고 랩음악과 팝송에 젖어서 하루 하루를 보낼 밖에 더 있는가 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에게는 놀이문화가 없다. 특히 낭만을 추구하여야 할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는 놀이 자체가 허용되지 않으며 그저 일하거나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만 있을 뿐이다. 청년들의 낭만은 버릇없는 젊은것들의 시간 낭비로만 치부된다. 청소년들은 오로지 공부하고 일을 하여야 하는 존재일 뿐이며 그들 나름의 고뇌는 못된 집 아이들의 망발로만 여겨진다. 젊은 날의 고뇌를 정말 가슴 깊이 괴로워 할 수 있고 젊음의 멋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나 시간이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단지 규격화된 행사만이 있을 따름이다.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대학가에도 젊음의 낭만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왜곡되고 비좁을 따름이다. 대학가에 숱하게 들어선 가요방이나 술집, 당구장, 만화가게를 두고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곳을 찾을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고뇌는 아랑곳 할 바가 아니다. 이 땅 우리의 젊은이들의 근본적으로 못되고 어리석어서, 게으르고 공부를 하기 싫어해서 놀고 먹자는 판으로만 돌아가는 것인가? 그들은 바로 그들을 비난하고 곱지 않은 눈으로 흘기는 기성세대들의 어제의 모습이다. 생존을 위하여 이런저런 고난을 겪어 오늘의 우리를 만든 기성세대들이 느끼던 고뇌에 어쩌면 보다 심하게 이 땅의 젊은이들은 아파하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에게는 어려움이 있었음에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한 만큼의 성취와 기회가 주어졌다. 오늘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는 보다 고도의 기술과 정치한 지식이 요구되며 성취와 기회는 보다 드물게 얻어진다. 그들 나름의 고뇌를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우리에게는 어디에도 없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시간도 ‘우리가 너희만 했을 때에는’ 하는 기성세대들의 따가운 눈초리속에 숨어들 수밖에 없다. 마음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어디에 있는가? 잔디밭 마다에는 문화인의 양심을 호소한다.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장소가 노래방과 디스코텍 외에 어디 또 있는가? 트롯트와 랩음악 외에 클래식이나 우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그들에게 주어진 적이 있는가? 젊은이들의 가벼운 주머니로 가능할 만큼 연극과 발레 같은 고급문화에 접할 수 있는 배려가 있어 보았는가? 어느 곳에도 참된 놀이문화의 공간이 없다. 이것은 대학생의 경우에서도 그렇다. 학교 안에 그럴듯한 음악당이나 미술관이 있는 곳이 우리 도내 대학 어디에도 없다. 연극을 공연하고 발레를 감상할 수 있는 곳도 없다. 공부에 지친 머리를 쉬며 팝송이나 클래식, 우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럴듯한 공간도 없다. 그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간단한 음료수를 먹을 수 있는 공간조차도 열려진 곳과 강의실외에는 없다. 오로지 공부, 공부 그리고 공부만이 강요될 뿐이다. 그 외의 공간은 있을수도 없고 있을 필요도 없으며 있어서는 안된다는 발상이다. 건전한 놀이를 모르고 성장한 이 땅의 다음 주역들이 고스톱에서 포커로, 섰다와 짓고땡으로, 도박 골프와 경마로 온통 이 땅을 도박장으로 만들지 않을까 두렵다. 가을날의 정취도 도박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도박장이 될 수밖에 없다. 단풍의 낭만도 화투장의 그림으로 변할까 두려운 것이다. 흔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서양 격언에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을 참으로 바보로 만들 작정인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근로 청소년들을 일벌레로 만들고 각급학교 학생들은 공부벌레로 만들어 벌레만의 나라를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놀이공간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젊음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것도 너희들부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부터 마음을 다 잡아야만 된다. 이 가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낭만을 취할 수 있는 시간과 자리가 마련되기를… 시리도록 높푸른 하늘을 우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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