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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1 | [특집]
문화저널과 추억더듬기
진호․운영의원 (2004-01-29 16:17:36)
『문화저널』이 다섯번째 생일을 맞습니다. 지금은 「운영의원」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은 한 켠으로 비껴 서 있습니다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 널리 양해해 주신다면 좀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개인적 감회가 곁들인 추억 더듬기로 주어진 지면을 채워볼까 합니다. 『문화저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제는 저 자신의 게으름으로 안부조차 묻지 못하고 지내는 많은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유휴열, 최용부, 송희금, 백학기, 박병도, 김대곤, 그리고 백의선 등…. 1987년 겨울, 우리들 몇몇은 지금의 예루 소극장(당시엔 찻집을 겸했음) 한쪽 귀퉁이에 모여 앉아 각 분야별로 편집의원들의 틀을 짜고 그달의 내용을 기획하고, 원고를 정리하느라 시간을 죽였으며 신아출판사 조개탄 난로 곁에 쭈그리고 앉아 교정을 보고 대지작업을 했습니다. 한 편집위원의 도움으로 고사동에 사글세 방을 얻어 들어가기까지 우리는 참 많은 다방과 남의 집 사무실을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행복한(?) 생활을 한지 한 1년이 지날 때 쯤인가 -그렇습니다. 그때는 그런 열정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작업을 뒤돌아 보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에 대한 따뜻한 인식과 사랑”에 뚜렷한 의미를 부여해야할 계기가 혼자만의 자족으로 폼 잡는 작업에, 현실인식을 접목시키려 했으며 너무나 보수적인 문화형태에 약간은 진보적 시각으로 균형을 맞추려 한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음 지향하면서…. 많은 사람이 함께 행복하기 위하여…. 그러나 그 같은 작업도 한쪽에서는 여전히 기회주의적(?)이라고 꼬집었고, 또 한쪽에서는 너무 급진적 논리(운동권 시각을 포함한)라 함께 할 수 없다고 토라진 듯 했습니다. 우리가 노력했던 “시각”의 균형은 아직도 조화롭지 못한 듯 한데. 지금도 그런 소리를 자주 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비판들은 모두가 자연스럽게 대두된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우리의 작업에 특정한 이념이나 색깔 입히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이지역 문화풍토에 또 하나의 “분파”를 우려했기도 했지만 한 시대의 “이념의 푯대”란 그 장구한 문화적 안목에서 보면 얼마나 허망한 깃발 입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그때쯤 일정한 지향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향점이란 그 동안의 뒤틀리고 왜곡된 문화형태에 균형감을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문화행위를 우리의 구체적 삶에서 찾지 않고 저 높고 고고한 『문화저널』에 대한 애정에서 였음을 믿고 있습니다. 『문화저널』의 그동안 작업은 저 개인에게 많은 자긍심을 갖게 하기도 했습니다. 돈 때문에 느끼는 통증만 없다면 “우리의 소리 우리의 문화”를 접하면서 함께 춤추고 어우러지는 행사를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치루어낼 때, 생전 처음 접하는 듯 감격해 하는 바로 “우리의 문화”를 제시 했을 때 등등. 이제 중앙동 옥상(현 사무실 위치) 시절도 2년이 넘어가는 듯 합니다. 이제는 『문화저널』이 우리의 국적없는 문화형태에 대해, 문화의 뿌리없음에 대해 한탄하는 차원이 아닌 작지만 소중한 대안(代案)으로 이야기 할 때 인 듯 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만 나무라지 말고 우리 청소년들의 정서를 파악하고 그들에 맞는 “우리의 가락”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거들어야하고 툭하면 텔레비전만 무슨 동네 강아지마냥 두둘기고 지성인 인양 거들먹거리는 무책임이 아닌 작지만 소중한 대안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힘을 합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핍박에서 벗어나 인쇄소에 빚 안지고 살아갈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하면서 써 놓고 보니 별 의미도 없는 추억더듬기를 마칩니다. 망발이나 아닌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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