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철: 안녕하십니까? 문화저널이 주관한 시민강좌가 어제까지 8개의 주제로 나뉘어 진행되었습니다. 그동안 갑오동학농민전쟁의 배경에서부터 성격에 이르기까지 개괄적인 내용이 다루어 졌지요.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지역이 동학농민 전쟁의 진원지로서 앞으로 다가올 백주년기념사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로 네 분 선생님과 함께 토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강좌에 대한 간단한 마무리를 하고 우리지역에서 기념사업을 준비해야하는 이유와 그 의의를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갑오동학농민전쟁의 배경에 대해 살펴보면 크게 두가지점이 지적되었습니다. 그 첫째는 조선왕조의 봉건적체제에서 비롯된 구조적 모순의 심화에 대한 결과라는 것이고 둘째는 농민들의 변화인데 조선의 양반지배체제가 붕괴되면서 백성의 세력이 성장하고 그와 더불어 농민들의 의식이 향상되었으며, 이러한 농민들이 개혁을 부르짖을 정도로 왕조가 너무 구태의연하게 부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의 출현이 농민들의 의식을 정치운동으로 전화시키는 매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종교라기 보다는 성리학에 지배하는 조선조 사외체계에 대해 개혁을 요구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 것으로 시작한 동학은 종교로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교조신원운동과 1892년 삼례․보은 집회등을 통해 정치운동으로 심화되었습니다. 금구(원평부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남접세력은 보은집회와는 별도로 서울에서 외국의 영사관이나 기관을 대상으로 방을 붙이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통해 반외세운동으로 정착, 성장시켰습니다.
그 전개 과정은 사발통문거사 계획에 의한 고부민란에 이르러 농민에 대한 과도한 가학행위에 대한 정치에 나섬으로써 본격적인 농민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승승장구 한지 한 달만에 전주에 입성한 농민군은 전주화약을 맺고 김학진과의 담판으로 집강소 개혁을 추진하게 되지만 중앙에서는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주둔하고 외세의 개입으로 중앙정부의 판도가 바뀌어 일본이 힘을 배경으로 한 개화파가 갑오경장을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되고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농민군들이 삼례를 거쳐 논산 공주 등지에서 10월에 재봉기를 시도하지만 관군과 일본군 등의 정예군에게 패하고 수만명의 농민군이 몰살당하게 되는데 12월말경에는 전봉준마저 체포되어 효수형에 처해지게 되고 농민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농민군의 세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반봉건과 반외세의 기치를 내걸었던 농민군에 대한 평가는 당시 대역죄나 반역죄로 규정되어 갑오동학농민전쟁은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갑오농민전쟁이나 동학농민전쟁이냐에 대한 규정은 동학에 대한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생존해 있던 동학군들이나 그들의 후손들에게 농민군이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면 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제대로 밝혀졌겠지만 패배한 농민군들에게 씌워진 가혹한 굴레에 의해 많은 사실들이 감추어지고 왜곡되는 심지어는 황토현전적지의 위치조차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은 실정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갑오동학농민전쟁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전북지역이 이 분야에는 뒤떨어지고 무관심하다는 것을 지적하곤 합니다. 백주년을 맞이하면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무엇보다 우리지역에서 일어났던 치열했던 역사를 지역이 문제로 또는 지역이 과제로 인식하고 우리의 문제로 껴안는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저널에서 이번 시민강좌의 주제로 내걸고 있는 갑오동학농민전쟁의 현재적 의미의 중요성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의 문제로 남으며 19세기말 동학난에서 혁명으로 그리고 다시 전쟁으로 규정되는 농민전쟁이 백여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왜 그렇게 매몰되었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 정치사의 실패로부터 기인했을 것입니다. 농민전쟁이 봉건적 왕조체제에 항거한 백성들의 정치권력 창출이라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외세에 밀착한 정부에 의해 실패하였고 1945년 해방이후 민중에 의한 권력창출이 가능한 시기에 조차 미제국주의가 주도하는 냉전체제에 의해 좌절되어 농민군의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는 1960년 4․19혁명과 1980년 광주 항쟁 등의 반제․반팟쇼 운동의 정신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3년후에 맞게되는 백주년기념사업의 중요한 과제는 갑오동학농민전쟁을 어떻게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하는지는 진정으로 고민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각 분야(음악, 미술, 문학, 학술)에서는 어떤 작업들을 준비하고 어떤 방법으로 이끌어 나갈지에 관해 네분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합시다.
먼저 심선생님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심인택: 이번 강좌를 계기로 저도 동학농민전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개항이후 한국음악사에 대해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음악을 시기별로 분류해보면 먼저 제1기는 조선초기에서 영․정조시대까지, 제2기는 임진왜란까지의 기간, 제3기는 임란이후부터 갑오경장의 시기까지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특히 제3기 갑오경장 시기에 공사부역을 할 때 노동요로 아리랑 타령이 불리워 졌는데 ‘속이 아리다’라는 뜻을 지닌 아리랑타령은 당시 관민이 함께 반외세 의식을 공유했었음을 보여줍니다. 1894년 고종황제는 ‘정부의 모든 행사에 속악을 사용하라’ 명하였는데 동학군들이 행진할 때에도 군의 맨 앞에 두레와 풍물이 울렸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미국에서 서양식 음악교육을 받은 악사가 등장하였으며 러시아와 유럽을 둘러보고 돌아 온 민영환은 군인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군악대의 창설을 주창하였고 애국가가 각 기관마다에서 각기 다른 가사로 창작되어 불리어졌습니다. 1910년 이후 학교음악교육에 일본전통가요가 본격적으로 가미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의 음악은 통속민요에서 민요로, 다시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창가로 그 변화를 겪었고 결국 음악분야는 외세의 침입을 가속화하는데 일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동학농민전쟁과 관련된 노래나 형상화한 작품은 없으며 ‘새야 새야 파랑새야’도 이미 있었던 가락에 가사를 바꾼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전쟁을 음악으로 형상화해낸다는 일 자체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계속되어 특히 음악분야에서는 4․19나 기타 민중이 주체가 되어 정권에 항거한 사건에 대한 예술적 형상화 작업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5․16군사 쿠데타만 해도 갖가지 행진곡들을 만들어 기념한 것을 보면 관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역사가 달리 보여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5․18광주항쟁에서도 보여지듯이 이제는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들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백주년기념사업을 펼치는데 음악분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선 음악적 시각을 현재의 상황에 맞추느냐 당시 상황의 시각을 갖느냐 하는 것이며 이것은 작업의 형태에 따라 다르게 선택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업을 해내기 위해서 음악인들이 해내야 할 일은 음악사를 올바르게 연구하고 대중들의 정서에 맞게 조정하는 것입니다.
임옥상: 심선생님께서는 동학농민전쟁시기 즉 갑오경장시기의 음악적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당시에 이루어진 미술활동에 대한 자료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준비한 내용은 동학농민전쟁을 형상화해내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니고, 실제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필요한 자세나 입장 등을 정리한 것입니다. 어떤 한 사건을 미술로 형상화 해내는데 먼저 대전제가 돼어야 할 것은 그 작업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이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역사적인 전환이 시기마다 예술적 형상화 작업이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잘못된 역사의식을 가진 것에서 비롯됩니다.
우선 총체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의 바위에 왜 형상화 시켜야 하는지 그 의지가 굳건해야 하겠습니다. 그 역사의에는 변혁적 전망이 가미되어 있어야 하며 왜 어떻게 그릴 것이냐가 변증법적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형식주의와 내용주의로 양분화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6․25이후 밀려온 서양미술의 조류 속에서 형식주의에 식상한 나머지 모더니즘이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형식과 내용이 변증법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그릴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제 생각으로는 리얼리즘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사실의 서술방식으로 형상화가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특히 역사화에서는 리얼리즘의 방법이 적당합니다. 어떤 계급적 입장에서 과정을 이끌어내는 것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미술이 가장 기본적으로 담보해내야 하는 전문성에 관한 합의도출 과정도 중요한데 그 과정에서 시각과 지각에 대한 전문적인 고도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먹구구식의 방법은 도태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형상화 된 작품을 어디서 어떻게 사용할 ,인가도 중요합니다. 그것은 형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감상화냐, 행사화냐, 걸게 그림이냐, 만화냐, 영상화 된 것이냐의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그렇다면 이러한 작업들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는 것입니다. 개인이냐, 단체냐, 전문가에 의해서냐, 비전문가에 의해서냐, 아니면 음악가과 함께할 것이냐, 사회학자나 경제학자와 또는 공학도와 함께할 것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자본주의의 예술방식은 함사람의 위대한 작가의 천재성이 밀실에서 혼자만의 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기를 요구하지만 이런 방식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이 주를 이루어야 합니다. 한사람의 상상력과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은 의미가 없습니다. 모두 같이 참여하여 축제를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순철: 두 분 말씀을 들어보았습니다. 음악과 미술을 전공하고 직접창작을 하는 분들이라 대체적으로 문제의식은 같은 입장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개괄적인 내용들이 언급된 것 같은데 다음 두 분으로부터는 구체적인 작업의 내용들을 듣고 싶군요. 정도상 선생님이 먼저 말씀해 주시죠.
정도상: 몇 년 전부터 동학농민전쟁 백주년기념축전에 대해 나름대로 혼자 고민해 보았습니다. 백주년기념축전에 임하는 자세는 문학이나 기타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성과보다는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주년기념축전이라는 확실한 동기가 주어졌으니 이 기회를 빌어 지역문화의 역량을 좀더 진일보시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몇 사람에 의해서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김용택 시인이 있다고 해서 전북시단이 모두 풍부해지지는 않습니다. 모두 김용택이 되어야 비로소 시단은 풍부해질 것입니다. 문화역량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학연이나 지연 이데올로기에 의해 서로를 도외시하는 일들이 없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슨 현상모집 등의 방식으로 기념사업을 하는 것에도 반대합니다. 그런 통로를 통해 우수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문학역량을 반전시키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백주년기념축전을 위해 문학부문은 시창작단이나 소설창작단을 건설하여 공동작업 할 것은 제안합니다.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같은 것을 시창작단에서 공동작업으로 창작해 내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서사시나 서정시 또는 대하소설 등을 공동으로 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지향하는 노선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참여하는 폭을 줄이는 일이 없도록 문인협회나 민족문학인협의회 또는 창작물의 성과가 미약해서 성공적이지는 못하지만 조직창작의 경험을 가진 전북지역 대학생 문학조직등이 함께 작업을 함으로써, 지역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 창작의 내용에 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동학농민전쟁을 형상화해내기 위해서는 당대의 상황을 서정시나 서사시를 통해 그대로 담아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니다. 우선 나와 동학농민전쟁과의 관계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현 상황을 보더라도 약 백여년전에 농민군들이 외쳤던 반봉건 반외세가 지금도 극복되지 않은 채 봉건과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민족해방투쟁은 백여년에 걸쳐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장기간에 걸쳐 민족해방투쟁을 해온민족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의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예술적 형상화 작업이 그만큼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은 보여줍니다. 갑오농민전쟁을 통해 이익을 본 세력은 누구이고 피해를 본 세력은 누구인가? 김형수 시인이 말한 호남평야의 아름다운 무지개는 과연민중들의 피와 땀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그 옛날 지배계급에서 놀았다는 완월정이나 농원정의 풍류를 위해 농민들을 착취하지는 않았는가의 문제들을 외짚어 보는 것도 줄요한 일입니다. 삼양사 김성수 일가에 대한 고창지역 소작농민들의 투쟁이나 우루과이라운드 반대투쟁, 수세거부운동 등 숱한 삶의 이야기를 모아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일이 감오농민전쟁의 정신을 이어 내는 진정 의미 있는 작업이 되고 좋은 작품을 낳게 하는 원초적인 힘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문작가들의 사명감있는 창작작업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거창한 일에서 부터가 아니라 나 자신, 우리 이웃의 이야기로부터 점차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작업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진영: 갑오동학농민전쟁 백주년 기념사업의 의미는 민중적, 대중적 관점이라는 올바른 관점이 견지된다는 대전제 아래 기존 연구성과를 심화, 대중화시키고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규명한다는 데에서 우선 찾을 수 있겠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저는 학술적으로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동학농민전쟁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토로하는 사실은 자료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일 소재의 연구 실적의 양으로는 방대한 논문이 발표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시 단일 소재로 연구실적이 많다고 할 수 있는 다산의 실학사상에 비해서는 내용이 진부한 편입니다. 지금의 연구수준은 소장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연구활동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긴 하지만 거의가 기존의 논물들에 반론을 제기하고 새로운 내용들이 보태어지는 단계로 관점의 차이와 한께 반증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기에 현존자료가 지극히 부족한 상황이라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학술분야에서는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예술적 형상화 작업에 앞서 올바르게 평가와 자리 매김을 하는 일을 수행해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작업을 보면 먼저 자료를 수집하는 일인데 이를 위해서 감추어진 문헌들 즉 1차 자료들을 발굴해 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미 발견된 자료에 대해 해제의 가시화 작업과 농민군들의 후손이나 그때의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체록 하여 사료화 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작업은 이미 동학농민전쟁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강좌활동 등을 계속적으로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동학농민전쟁이 우리지역에서 일어난 치열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이것을 연구한 전문가들이 우리지역에서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이러한 작업들을 밑바탕으로 민중적 대중적 관점을 견지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연구해 나가는 것이 학술분야에서 가지는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신순철: 적어도 올해 안으로 민간 차원의 사업을 위한 준비위원회가 꾸려져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더 진전시켜 보면 방금 말씀하신 ‘누가 이 사업을 추진할 것이냐, 주체는 누구인가’가 문제인데 누가 과연 생업을 포기하고 이 일에 매달릴 것이냐, 그리고 재정은 어떻게 할 것이냐, 기부금을 받을 것이냐, 작년 봄 호남사회연구회에서 대략적인 예산을 잡았는데 2억정도 였습니다. 그것을 한사람 또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모금한다해도 그 인력이 또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한다는 것도 물론 예산을 쓸만한 업이기는 하지만 그런 방식을 우리가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 얘기를 더 구체화시키자는 의미에서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죠.
기념사업의 구체화가 있기 전에 우선 전라북도 차원에서 홍보 가되고, 우리도 에서 해야한다는 전제가 되어야겠죠. 하지만 그것도 역시 누가 할 것인가의 문제와 함께 고민을 해야겠습니다. 3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3년 내내 대중에게 언론매체를 이용해서 알리고 팜플렛등을 제작하거나 또는 강연회를 해서 전라북도내 에서라도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어려운 과제라 생각합니다.
청중질문: 이번과 같은 시민강좌도 중요하지만 연극 등의 종합예술을 통해 홍보하고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중적 인식이 전혀 안돼 있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요.
정도산: 이 자리에서 고민하는 것만으로는 해답이 없거든요. 여기 앉아있으면서도 사실 절망 같은 것을 느끼곤 하는데 또 희망이 없는 절망은 없거든요.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책임주체가 될 것입니다. 어느 개인, 어느 단체가 책임 주체가 되느냐 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이 일을 맡을 것인가, 말 것 인가입니다. 내가 창작단을 꾸릴 것이냐 말 것이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의미 있는 얘기입니다.
소가죽으로 밥 해먹는 얘기. 왜 소가죽으로 밥을 해먹었느냐를 흥보에 사용할 수도 있죠. 마마전지 오토콤으로 밥을 해먹는 시대에 소가죽으로 밥해먹는 이야기는 지금 신기하죠. 그방법을 설명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일의 책임주체가 문제입니다. 모두 모여 맞대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재정 역시 주머니 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지역에서 현재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고 이 조건들 속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책임주체로 나서는 것,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발자국의 띠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어떻게 관심 갖고 이끌 것인지를 계속 만나서 얘기했으면 합니다.
사회 : 우선 누가 해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각자가 시작하자는 말씀 인 것 같습니다. 소가죽 얘기 들으니 그것을 실험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웃음) 또 뭔가 꾸준히 일을 해야겠다는 의견입니다.
심인택: 음악 쪽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학자가 관주도와 민간주도의 얘기를 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같이해도 하기 힘든 마당에관 따로, 민간 따로를 찾는 것은 가슴아픈 부분입니다. 국가의 재정은 우리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 국민이고 나도 국민이니까 같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작업을 해서 남는 음악작품이 전통음악으로 남을 것인가가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될 수 있습니다. 자료를 남겨두는 일 역시 중요한데 이런 것들의 보존을 위한 관․민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예술 창작자 들에게 격려의 채찍을 가하는 일일 것입니다. 행사용 축제에 그치지 말고 뭔가 남기로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임옥상: 저는 조금 다른 입장입니다. 관과의 협조문제는 매우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에서 만든 기념관을 한번 가보시면 알 것입니다. 관이 주도한 것들은 대부분 전시효과를 얻기위한 입시방편의 것들입니다. 황토현 기념관이 그 표본인데 특히 그곳에 있는 기록화를 보면 그건 정말 돈만 들였을뿐 예술적 가치는 전무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말하는데 이런 것들을 그곳 주민들이 반대하고 거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대중성 확보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곳 주민이, 또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바로 대중이고 민중입니다. 아까 정도상선생도 말했지만 남에게 어떻게 하겠느냐 묻기전에 나는 무엇을 할것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은 무엇이고,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걸 스스로 극복해야지 누가 그것을 해 주겠습니까. 다같이 해야죠. 백주년 행사도 좋고 백일 주년 행사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주도의 사업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정도상: 아까 어떤 선생님께서 인식이 이루어진 바탕위에서 일을 하자고 말씀하셨는데 인식을 결과로 주어지는게 아니라 인간들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행사를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인식을 공유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관․민이 합동으로 일을 꾸러 나가자고 하는데 지금까지의 일들로 비춰볼 때 관에서 하는 일은 일단 수준이 떨어집니다. 물론 관에서 할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건 재정적 지원이나 홍보등을 맡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에 관여하는 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선 나부터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지만은 내일은 손안에 쥐어지는 게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진흙창일지라도 일단 발을 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중질문: 사실저는 이번강좌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이제까지 농민전쟁을 동학난이라 파악하고 있었으며 또 그렇게 학생들을 교육시켰습니다. 그래서 이런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해준 문화저널과 여러 강사 선생님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런 훌륭한 시민강좌가 홍보부족으로 몇몇 사람들끼리의 모임으로 끝나고 만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는대로 농민전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백주년 기념사업이 제대로 이루어 지려면 올바른 인식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그 인식이 이 지역주민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강좌와 같은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마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중질문: 저도 이번 강좌를 통해 저의 잘못된 시각을 교정할 수 있게 되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만 반가웠습니다. 유감스러운 점을 한가지 지적한다면 강좌시간을 너무 집중적으로 배정하여 보통사람들이 수강을 결심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또 한창 피서철에 시간을 잡은것도 의식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서는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강좌를 또 마련하기는 어렵겠지만 문화저널이 백주년 기념사업에 일정하게 문제를 제기했으니까 무엇인가 지속적인 작업의 해나가야 할텐데 구체적 계획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순철: 문화저널을 대표해서 누가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저도 기획을 하는 데에 조금은 참여를 했습니다만 방금 지적해 주신 사항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윤덕향 : 구체적으로 저의 문화저널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저희의 역량이 워낙 미약 합니다만 함께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무엇인가는 해야겠지요. 한가지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희 잡지를 통해 이 사업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일깨울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적어도 하나 이상의 꼭지를 이 주제와 관련하여 마련해 나가겠습니다.
저희도 기획을 하면서 지적하신 점들을 대충은 예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장시간에 걸쳐 하기에는 저희들의 힘이 너무 모자란다는 생각을 했고 ‘피서냐 시민강좌냐’하는 오기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어차피 관심 있는 분들이 참여하게 될 테니까 시간은 별문제가 아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거죠. 중대한 판단착오였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청중질문: 얼마 전 전주문화방송에서 제작한 농민전쟁 관련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앞서 토론자 선생님들께서 지적하신 대로 우리 지역에는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너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사회자선생님만 잠깐 나올 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지역의 교수님들이어서 조금은 의아해 했습니다 또 끝 부분에 지적하기를 이 지역에는 백주년을 맞이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던데 실제 이 지역의 상황이 어떤지 알고 싶습니다. 아까 호사연 얘기도 있던데...
이진영: 저도 그 프로그램을 봤습니다만 조금은 섭섭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으니 없다고 할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전혀 없지는 않았거든요. 저희 호남사회연구소에서는 이미 89년 동계수련회 때 이 문제에 관한 공개토론회를 내장산에서 개최했었습니다. 여기 토론에 나온신 분 중 정도상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때 토론과 사회를 보았던 분들입니다. 그 때 문화방송과 KBS에서도 많은 분들이 참여하였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더군요. 또 저희 호사연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 역사분과가 구성되어 지금까지 1년 이상에 걸쳐 세미나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제 연구사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고 구체적인 성과가 없이 무어라 말씀드리기가 부끄럽습니다만 앞으로 이를 위해 특별기획위원회를 띄울 예정입니다. 사실 저의 호사연의 역량도 너무 부족하여 독자적으로 사업을 구상할 수가 도저히 없습니다. 몇몇 뜻 있는 단체들이 하루 빨리 이 문제를 위해 연합을 하여 준비 위원회를 구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중질문: 내일 전적지답사기행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만 분위기를 좀더 확산시키기 위해 좀더 큰 규모의 전적지 순례를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농민군의 흉내를 내어 백산에서 황토현까지 행군도 하고 이번 강좌와같은 것을 그곳에서 야영하면서 진행하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은데요.
신순철: 매우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백주년 기념사업 때에 전국 각지역 대학생들로 ‘농민군’을 조직하여 풍물을 앞세우고 행군을 하는 등 당시를 재현해보자는 의견에 호상연 동계수련회 때에도 제안된 적이 있습니다만, 그것의 준비작업으로 또 이 기념사업의 의미를 확산시킨다는 차원에서도 의의 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문화저널의 백제 기행을 그런 식으로 기획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청중질문: 의식의 확산과 홍보를 위해서는 언론의 적극적임 참여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문화방송의 「동학농민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의 제작은 획기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는데 다른 언론사에서도 무슨 움직임이 없는지요?
청중질문: 요즘 언론의 속성상 자발적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하거나 일을 꾸려 나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갖습니다. 백주년 때에는 언론에서도 ‘방방뜨겠지만’ 그때까지는 성과물이나 따먹으려 하지 자발적으로 제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80년 민주화의 붐을 맞이하면서 분위기에 편승 정읍에서 있은「동학제」에 참여했다 큰코다친 사람들을 잘 기억하고 있거든요. 중요한 것은 실제 언론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제대로 일을 벌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언론 내부에도 건강한 의식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 이들과 개인적으로 연대하여 언론의 힘을 이용하자는 것이 현실성이 있어 보입니다..
신순철: 감사합니다. 오늘 얘기가 대단히 산만한 것 같으면서도 공통된 입장들이 거의 나온 것 같습니다. 백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입장에서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몇 가지 점들이 제시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특히 관민의 얘기를 듣고 보니 지자제가 실시되었으니 적어도 전라북도 의회로 하여금 돈만 대주는 역할을 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그래서 3년후의 백주년기념사업이 과연 오늘 이 자리를 계기로 해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기를 바라고 또한 그 과정이 전라북도 지연전체의 문화적인 성숙을 맺게 할 수 있도록 각자가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