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11 | [특집]
왜 전주공연을 망설이는가
서재봉․전주이데아 기획실장
(2004-01-29 16:19:52)
현대인의 문화에 대한 욕구는 다양하다. 특히 지방에 사는 이들에겐 서울에 비겨 상대적으로 좋은 문화행사를 체험할 기회가 적은 이유로 그 갈증이 더욱 심하다.
오늘날 문화를 공유하는 보편적인 모습은 형식적인 틀을 갖춘 공간에서 타인의 행위를 통해 음미하고 향수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음미하고 그리워하는 일, 즉 특정한 곳을 택하여 행사는 만들어지고 관객들은 자신의 욕구에 맞는 행사를 찾는다. 이러한 행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기획, 예산, 장소, 관객유치 등 이 가운데 가장 실제적인 급선무는 행사를 치러낼 수 있는 곳, 바로 「장소의 선택」이다. 장소의 필요성이 본질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지역의 문화공간은 너무나 협소하고 사용하기에 열악하다. 이 현실은 우리지역 문화인구의 문화적 갈증을 더 심하게 하는 주된 요인중의 하나다.
필자는 작업상 이 문제를 늘 피부로 느끼고 있다. 가령 리서치를 통해 어떤 행사에 대한 도민의 요구가 높다는 결과가 나와 그 행사를 무대 올리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치명적인 문제는 부딪치게 되는 「마땅한 무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보습과는 사뭇 다른 양태로, 관객의 요구에 못미치는 모습의 공연을 선보이기가 일쑤다.
예술인 당사자들도 우리 지역의 무대에선 자기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뒤풀이 자리에서 한결같이 늘어 놓는다.
현재 도내에서 문화행사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는 도(道)와 시(市)에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며 민간단체나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더욱 힘든 것은 그나마 이 시설들을 개인이 빌려 사용하기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점이다. 설령 대관이 되었다 하더라도 관의 행사가 겹쳐지면 개인명의의 대관은 뒤로 밀려나기 일쑤다.
대부분의 행사가 보통 2~3개월 전부터 준비하는 것이 관례이나 행사장 대관마저 불안한 상태에서 행사를 기획한다는 것은 준비하는 측과 직접무대에 서는 측과의 마찰을 빚어내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막이 오르는 그 순간까지 늘 노심초사할 수 밖에 없다.
또 설령 대관이 됐다 하더라도 행사진행 중에 관리측과 맞부닺치게 되는 사소한 문제꺼리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자면 문화공간내에 행사장 상황이나 행사의 준비과정을 잘 알고 중간 매개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규과정을 이수한 전공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며 형식적인 관리수준에 그치는 정도이다. 물론 주기적인 행사가 불규칙한 상태에서 수익이 빈약할터이므로 근무자의 복지문제가 커다란 난점이리라는 점에 일면 수긍이 간다하나, 이 고장이 「예향」임을 늘 수식어로 붙이고 있는 실정이라면 문화공간 하나만이라도 제대로된 전문적 틀을 갖추어 이용자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고, 오히려 미리 알아서 배려 해주는 융통성을 가지고 공간운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가지 또 짚고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교통문제이다. 요즈음 무대예술인들은 시간다툼으로 살아간다.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행사의뢰를 감당해야 하는 그들에게 기동성은 필수요건이다.
이 지역은 공항이 없는 상태여서 자동차나 기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의 교통형편으로는 다른 지역의 무대예술인들로 하여금 전주공연이라면 일단 머뭇거리는 표정을 먼저 앞세우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이 지역을 찾는 예술인 거개가 큰맘 먹고 온다는 식의 묘한 배짱을 부리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이렇듯 누적된 문제를 풀지않고 좋은 행사만 열리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빗나간 여망이 아니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