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11 | [특집]
작은 공간에서 진정한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김광순․소극장 예루 대표
(2004-01-29 16:21:36)
예루가 무대를 꾸며 문을 열고 관객들을 처음으로 초대한 그 날을 기억한다. 1987년 7월 18일 더운 여름날이었다. 허름한 지하 다방이었던 자리에 가정용 그랜드 피아노와 약간의 음악에 필요한 잡기를 배치한 턱이 없는 무대를 마련하였다. 작으나마 진정 하고 싶은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은 예술 기획자에게 필요불가결한 일이었다. 비록 여러 가지 부족함이 많았으나 가능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무대라는 제일 중요한 조건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정한 문화 공간은 무대(장소)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이 만족되어야만 하였다.
진정한 예술가가 없이는 문화, 예술을 공급하는 공간이 될 수 없었다. 자아 도취되어 청중에게 군림하려하거나, 기교만을 뽐내는, 또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도무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최선만을 다한다는 예술가는 오히려 문화의 흐름을 방해하고 우리를 괴롭힐 뿐이다. 자신의 고상한 정서를 예술적 감흥을 통하여 청중에게 심혈을 기울여 전달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예술가가 그리 많지 않기에 우리 문화가 침체해 있는 것이 아닐까?
청중들의 가슴을 열게 할 진정한 연주자를 섭외하는 일이 더 큰일임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렇게 어려운 일일줄이야! 그러나 세월이 지나 많은 연주가들이 예루를 다녀갔고, 때로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열을 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했다. 이제는 1년이면 1000여명 이상의 연주자가 예루와 함께 음악을 만들고 있다. 오래전 무더운 여름날 제1회 예루 음악회에 출연한 최세종씨와 이미현씨를 비롯하여 초창기 예루 무대를 지킨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문화의 투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제 5년 반의 세월이 간단히 흘러 270회가 넘는 기획공연을 아직은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하며 어려울수록 더 큰 보람을 얻겠지라고 자위하며 이일이 오래오래 버텨지길 바란다.
특정한 문화공간에서의 예술행위 보다는 우리의 생활양식이 항상 예술과 함께 하여 향기를 품은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