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1.11 | 연재 [문화가 정보]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의 허구성
김선태 전주대 미술과 강사(2004-01-29 16:23:04)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의 허구성
김선태 전주대 미술과 강사

Ⅰ. 들어가는 말

최근의 미술계의 양적인 확대를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기행적 발전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기이함을 느낀다. 얼마전부터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낯선 용어가 우리의 지식인 문화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도 상당히 확장될 전망이다.
우리 학계와 미술계 일각에 대두한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를 지켜보면 일본제국주의를 통하여 서구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근대화 과정을 겪고 그와 아울러 모더니즘 문화를 수용한 지난 시대의 ‘파행적인 문화수용의 전철’을 떠올리게 한다. 일부에서는 ‘다국적 자본의 문화논리’라고 비판받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느덧 우리사회에 만연될 것이 확실시되는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의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도 이런 상황 인식에 우선적으로 기인한다.
실상,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은 가히유행(증후군)이라고 할 만한 정도로 철학・문학・건축・사회학・미술・음악・영화・연극 등에 R지 걸쳐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제적 현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다양한 차원의 운동에서 부분적인 양식의 측면만을 그것의 현실적 맥락도 고려하지 안ㅎ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모더니즘 미술의 시행착오를 다시금 겪게 될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본 글은 포소트모더니즘의 개념을 살펴보고 한국미술에서의 진정한 ‘모더니즘 이후’는 모던・포스트모던이라는 서구의 패러다임에 지나치게 현혹되지 말고, 최소한 미술은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어서는 안된다는 미술에 대한 인식을 올바르게 갖고자함을 목적으로 쓰여졌다.

Ⅱ 포스트 모더니즘의 역사적 발전

20세기 후반 서구사회에 새로운(혹은 새로워 보이는) 문화 현상을 모더니즘적 시각으로는 더 이상 해명할 수 없다는 자각과 함께 새로운 문화논리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이라할 수 있다.
60년대 미국 문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은 2차 대전 이전에 이미 당대의 모더니즘 문학(T.S 엘리어트 이래의 문예사조)에 점과 관련하여 사요했으며 대전 이후 초기에는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가 ‘포스트 모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1946에 D.C 소머벨에 의해 요약되어 출판된 그의 저서 『역사연구』제3권에서 그는 서구 역사를 암흑기, 중세기 모던 그리고 포스트 모던 등 크게 네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토인빈는 합리주의가 붕괴된 이후의 가장 최근에 서구의 역사적 시기를 가리키기 위해 바로 이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60년대에 들어와 미국의 비평계는 당대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에 주목하면서 당대를 전쟁전 시대와 구분 지으려는 포스트 적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냉전과 핵공포의 위협 사회적으로는 대중화 현상속에 처해있는 소외와 불안속에서 실존적 모색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들은 포스트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지칭(어빙 하우)하는가 하면 음악의 존케이지(John cage) 미술의 마르셀 듀샹(Marcel Duchamp) 팝아트의 엔디 와홀(Andy Warhol) 문학의 바틀미(Donald Barthelme) 등의 모더니즘에 항거하는 새로운 전위운동의 주동자로 간주하였고 히피족(Hippy)의 등장은 사회적 반영으로 인식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하여 새로운 문화논리로써 포스트 모더니즘론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지극히 미국적인 것이었던 그러한 사회 문화적 현상들이 점차 구라파로 전파되었으며, 그 후 다시 구라파에서 전세계로 확산 되어 갔다. 미국의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은 서구보다도 현대와 갈등이 심각하지 낳은 신대륙적인 특수성으로 인하여 융합주의 내지 절층주의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미국에서 발원하여그 곳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는 반면에 그 지적 토내나 비평전략은 대부분 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어쨌든 미국에서의 포스트모도니즘은 상다히 국지적인 성격을 내포한 문화 현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이면에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 유럽식 아바가르드의 미국적 부활 모더니즘 문학의 엘리트식 속성에 대한 반발과 대중문화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 등 복잡한 맥락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Ⅲ.포스트 모더니즘 미술

르네상스 이후 베이컨(F.Bacon)과 데카르트(R.Descartes)에 의해 서구 세계는 구래의 낡은 신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정신적 발걸음을 내디딜 수가 있었다. 죽, 계몽주의가 출현하면서 합리적 이성에 의해 세계와 삶을 인식하면서 미술에서도 자연주의적 사실적 표현이 추구되면서 세계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근대회화의 정신이 추구되었다. 그런데 근대 유럽 정신사에 있어서 이성의 합리적 논증적 깃발에 반기를 든 최초의 비합리적 신비적 정신운동으러서 낭만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정신 상황을 들을 수 있겠다. 낭만주의로부터 서서히 배태되었던 전통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세계의 비젼 및 비합리주의적이고 신비젓인 정신은 노발리스,룬게 고야 등을 거쳐 보들레르랭보, 로트레야몽 등에 의해 고조되었다가 니이체에 이르러 종래의 모든 사유방식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비판 그리고 혐오가 뒤섞인 새로운 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체계를 가지고 태동한 미술운동이 다다(Dada)와 초현실주의(Surrealism)미술이다.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그 뒤에 전개된 모근 현대미술 즉 모더니즘 미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예술운동이다. 그러나 모더니즘미술은 20세기 전반의 모더니즘 작가들이 여러 종류의 화려한 기법실험과 혁신을 거의 다 수행해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기법의 실험 가능성이 거의 고갈되었다는 인식은 따라서 그 소진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모더니즘 미술의 기법을 앞지르고 더욱 과격하게 파격적인 기술의 도입을 요구 하였던 것이다. 또한 미국작가들에게 전통적으로 부과되어온 문화적 요구 즉,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이 된 미국이 그에 걸맞는 미국적 성취에 견줄만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사회문화적 요구에 강박관념을 지적할 수 있다. 미국 미술계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은 이같은 문맥에 낳은 결과라고 하겠다.
여러 비평가들이 두 가지 상반된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을 상업주의 보수주의 경향과 비판적 저항주의로 대별해 볼 수 있겠다. 상업적 보수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은 80년대의 보수정치 및 급격히 팽창한 미국미술시장의 수요와도 관련이 있으며 유럽에 서의 회화 복귀 현상과 깊은관계가 있다. 미국 화랑가에서는 모더니즘 미술계열의 작품이 더 이상 상품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모더니즘 미술에 식상한 수요자(구매자)들의입맛에 맞도록 하기 위하여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들로불리워지는 쥴이랑 슈나벨 로버트 롱고 데빗살리 에릭피슬의 작품을 신상품으로 내놓기 시작한다. 실재로 쥴리앙 슈나벨의 깨진 접시들의 꼴라주한 그림들은 그의 첫 개인전에서 작품 당 2천 달러 하던 것이 세 번째 전시회에서는 20배나 오른 4만달라에 팔렸다. 다수의 화상들이 1980년대에는 어떤 것도(심지어는 낙서까지도)팔 수 있었다 대기업들도 질세라 소장품에 가장 최근의 포스트 모더니즘계열의 미술작품을 포함시켰다. 이렇듯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1980년대의 현대미술이 받은 대가만큼은 포스트모던 미술이 미적 수준과 상관이 있는지 혹은 주로 과대한 것 유행과 허풍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의 기질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예의 주시할 필요 있다.
둘째로 비판적 저항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공식문화에 대해서 뿐 아니라 상업적 보수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고 일어선다. 저항적 포스트 모더니즘은 사이비 또는 대중적인 역사적 형식등릐 도구적인 모방적 재탕(pstiche)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해체(doconstruction)에 대한 개원(origins)에로의 복귀가 아니라 기원에 대한 비판에 관심을 갖는다.. 요약하자면 이들은 문화적 약호들을 소모하기 보다는 그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것이 내제한 사회적 정치적 제휴관계를 은폐하기 보다는 폭로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저항성이라는 것이 실제로 생산적 이며 진보적인 성격을 동반하는 것이나? 하지만 저항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조차도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일정한 범위내에서 연속성을 지니며, 그에 따라 역사적 토대는 상실했지만, 여전히 이데올로기 적 효과를 함축하고 모더니즘의 잠재와 뒤섞인 채 에메모호한 저항속에서 스스로를 해체해갈 운명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정신의 최후의 퇴페적인 개화로 간주된다. 이들의 초기의 성공에 대한 이유들은 매우 간단하다. 이들의 작품은 최근 뉴욕에 있는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의 엄격함과는 아주 달라 보이고 미술이나 적어도 미술사에 속하는 것으로 쉽게 인지되는 이미자와 제작 과정물로 꽉 차 있다. 끊임없이 어울리지 않은 요소들과 취지들을 배합함으로써 모순성을 자아내지만 그 이상은 발전하지 않는다. 뒤떨어진 모방 및 절충주의는 표현주의적인 즉시성이 나타난다. 또한 작품은 개인주의적이고자 주장하지만 다른 작품으로부터 고안과 이미지를 빌어올 뿐이다.

Ⅳ. 맺음말

미국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요 이슈의 하나가 모더니즘 비판이었다고 간주한다면, 한국에서의 포스트 모던 현상은 1980년대 초에 대뒤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실과 발언」전을 계기로 부상한 민중미술은 그 의도와 목적은 다르다 할지라도 쟁점의 표적을 모도니즘이라 자신들이 정의한 1970년대의 미니멀「한국적」작가들이 주도하고 있는 체제미술 제도권 미술로 비롯되었다. 민중문학에서 대두된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민중미술은(예술은 이데올로기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소위 한국의 모더니즘을 유미주의로 간주 이데올로기가 부재한 퇴폐미술로 비판하였다. 더욱이 민중미술은 이 모더니즘에 입각한 당시 한국 현대미술이 정치와 야합하면서 관의 미술 행정 및 제도를 지배 미술에서의 민주화를 억압하는 힘으로 등장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세계를 탈중심화된 것으로 이해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논리라는 것으로 것도 실상 변혁 전망이 막혀버린 서구 자본주의 특유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 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신 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체제 인 우리 현실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그 기반으로 삼는 대중문화 (pop art: 통속적인 오락물 차원)가 반 해방적 성격을 갖기 쉬우며 포스트 모더니즘은 어디까지나 서구 자본주의 세계의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을 뿐 계급모순이 갈수록 심화되고 부의 집중이 극심하며 제대로 된 의회제도를 포함한 기본적인 민주질서조차 실현 되지 못한 우리의 왜곡된 자본주의적 현실에는 걸맞지 않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진실된 미술이란 객관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더불어 한사회의 구조와 관련된 모순을 판별하고 그 본질적인 요인을 통찰해 내고 그것의 극복을 위해 실천하는 것이라 본다. 또한 형상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되묻고자 하는 치열한 작가 정신과 더불어 인간의 구체적 삶과 관여하고 좀더 인간다운 삶의 구조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요구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