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권하는 책
「생명의 농업」
-현대의 노자가 말하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이태영․목사, 순창농민상담소장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다 보면 ‘함께 사는 삶’, ‘공동체’,‘유기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아마도 요즘 심각하게 제기되는 각종 범죄나 환경 문제 등을 대하면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가치관이라고 하는 상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단지 인간 관계만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이제까지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하며 살아왔지만, 그 결과 인류의 미래는 매우 위태롭게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인류의 고민 앞에 한가닥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중요한 암시를 후구오카라는 일본의 한 노인이 하고 있어 누구나 한번쯤은 관심을 갖고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나는 그의 책을 내가 존경하는 선배의 집 서가에서 발견하였다. 참으로 우연한 기회였다. 「생명의 농업~」이라는 말에 무심코 책을 뽑아보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충격을 받고는 한동안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논밭에 온갖 벌레가 다 있어야 벌레의 피해가 없다….
‘땅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김을 매지 않고도 얼마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원래 해충이란 없는 것이다….’
대단한 역설들이었다. 그러나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의 이치를 깊이 관찰, 연구하면 그 원리대로 살아가는 후구오카의 삶의 철학은 기존의 잘못된 우리 인식에 일대 수술을 가하는 것이었다. ‘자연농법’이라고도 하는 그의 농법은 소위 ‘유기농법’하고는 또 다른 점이 있었다. 유기농업이 화학비료와 농약 없이 짓는 농사라면 그의 자연농법은 여기에 무경(無耕)과 무제초(無除草)를 추가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한없는 관찰과 그 원리에 대한 순응을 요구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땅은 각종 미생물과 잔뿌리들로 인해 스스로를 부드럽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땅을 경운기나 쟁기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산의 흙은 몇 백 년 동안을 한번도 갈아주진 않지만 부드러운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한다.
또 풀은 풀로써 제압을 해야지 뽑거나 약을 쳐서 죽이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볍씨가 싹틀 무렵 논에 클로버를 무성하게 해주면 다른 풀이 나지 않으며, 벼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 클로바를 없애려면 논에 물을 넣어주면 된다는 식이다. 그는 땅을 갈지 않고, 풀을 뽑지도 않으며, 퇴비를 만들지도 않고, 벌레를 잡지도 않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200평 한마지기 당 쌀 5가마 정도를 수확하고 있다.
이처럼 전통적 농법의 상식을 뒤집은 그는 ‘과학’과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과학이고 무엇이 문명인가? 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것,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 그리고 사람이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위기에 처해있는 인류의 갈길은 이 길 뿐이라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세계 도처에서 광범위하게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실제로 그는 1988년에 막사이사이 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 당장 우리 농촌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그의 철학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단지 농사짓는 이들 뿐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미래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염려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