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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1 | 연재 [문화가 정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동학기생을 다녀와서-
전북국어교사모임(2004-01-29 16:25:48)

세기말,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뭔가 불안한 가운데 새로운 세상, 새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은 새해벽두부터 깨지기 시작하더니 이거 영 답답한 마음 풀기란 막막함 밖에 더 있던가?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하지 않겠다라는 연두기자회견에서의 국가원수 말은 일언 풍선껌이 돼버렸고 북방정책이다 7․7선언이다 해서 그 말 믿고 먼저 날뛴 놈들은 이때다 싶어 일망타진. 하100년 세월 내려오는 동안 민중에 대한 태도 또한 변함 없으니 그 아니 지조 있는 정권 아닌가? 87년 대선 참패, 90년 3당야합, 91년 기초 광역 대패라는 역사의 큰 줄거리 겉에서 많은 사람들이 패패의식과 냉소주의에 빠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코름 세월이 흘러 단기 4324년 개천절을 맞아 떠나는 동학기행은 날씨도 좋았거니와 가는 길마다 코스모스들의 자지러지는 웃음과 손 흔드는 모습에 한결 가벼워지는 마음으로 동학, 아니 갑오 농민전쟁의 흔적들을 찾아 나섰다.
10월 3일 오전 9시 10분. 전주 공설운동장에서 예정보다 10분 늦게 출발한 전북국어교사 모임의 동학기행은 당초 좌석이 텅텅비어가지 않을까 하는 주최측의 조바심을 완전히 뒤집어 차에 가득 찼고 이어 중간 기착지인 정읍과 고창에서 16면의 떼거리들이 더 참가해 앉아가기 좋아하는 중늙은이 참가자들에게 서서가게 하는 불편을 끼쳤다.
청량한 가을바람과 함께 동학혁명(갑오농민전쟁)의 100주년을 2년앞으로 맞이하면서 100년 전 민중들의 함성과 한으로 얼룩진 장소들을 찾을 땐 그 무엇보다도 쓸쓸함이 앞섰다. 보존 돼있지 않는 유적, 왜곡된 역사, 무관심한 역사의식.
먼저 전라도 감영이 있었던 고도 전주의 풍남문과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동학군과 흥계훈의 경군이 치열함 싸움을 벌였던 매화골자기 즉 매곡과 다가산을 지나 도학당이 가장 거세어 고종까지고 걱정했다는 금구․원평에 도착한 것은 아침 10시, 북접 지도부의 우유부단함과 시기 상조론에 맞서 남접과 민중들의 의기를 모았던 1893년의 원평대집회, 그리고 공주 우금재에서 마지막 힘겨루기 싸움에서 대패, 한의 눈물을 뿌리고 전주를 거쳐 마지막 저항을 꾀하던 전봉준군의 집결지 원평, 신흥종교의 메카인 모악산과 금산사가 있는 김제군 금산면의 소재지인 원평시장 부근의 원평천 둑을 따라 5분쯤 들어가니 구미란 마을이라는 치열한 싸움터가 나타났다. 듬성듬성, 일부 추수를 끝낸 논두렁에 덩그러니 서 잇는 허수아비, 아 아직도 이 땅에는 지켜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쫓아내야 할 참새떼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제 배속 채우기에 급급한 자들 어찌 농민들의 피와 땀의 의미를 알 수 있으리? 쌀 개방인지 우루과이라운드인지 뭔지가 들어오면 이제 약기 없네 농약밖엔… 농약 먹고 죽는 수밖엔…
원평에서 도 다시 패한 전봉준이 동학군이 마지막 저항을 꾀하다 해산한 곳은 원평에서 남쪽으로 25리쯤 내려간 태인이었다. 동학혁명의 거두 전봉준과 김개남 그리고 최경선을 배출했던 곳 지금은 정읍군 산외면인 태인현 동곡리 지금실 마을 이곳에서 김개남이 태어났고 전봉준장군 또한 이곳 태생이다.(생가는 불분명함)태인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곳이 보물급인 피향정, 그곳에 역대 현감나부랑이나 관찰사들의 선정비 공덕비 따위가 있는데 우습게도 고부봉기의 원인 중 하나였던 고부군사 조병갑 아버지의 성덕선정 영세불망비가 있었다. 전봉준장군 의거비 하나 제대로 없는 현실에 사는 우리는 열받치는 기분으로 그 옛날 한 때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줄포를 향했다. 지금은 토사가 밀려 항구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일어버린 폐항, 염전만이 드문드문 있을 뿐 뻘이 잔뜩 펼쳐진 줄포항은 조선조말과 일제초기에는 일본인 무역상과 고리대금업자, 객주들이 불가사리처럼 설치면서 전라도 땅 민중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기에 여념이 없었던 곳이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줄포항을 힐끗 쳐다본 후로 줄포에서 동쪽으로 20여리 떨어진 고부관아를 찾았으나 흔적도 없고 고부향교만 덩그렇게 퇴색된 유교이념을 지키고 있었다. 동학혁명의 기폭지, 고부군수 조병갑이 선정(?)을 베풀었던 땅, 그때 고부뿐만 아니라 온나라 백성이 가슴속에서 대나무를 키우고 죽창을 깎고 있었으리라. “새야새야 녹두새야 전주 고부 녹두새야.” 조병갑이 기생끼고 날았다는, 지금은 경노당이 된 군자정을 뒤로하며 고부를 떠나 노래부르길 10여분 남짓, 베들평야 가운데에 있는 조소리 전봉준선생 고가를 찾았다. 아담한 초가집 두어채로 짚이엉을 얹은 모양새에 옆마당에 남새밭대신 잔디가 깔려있었고 전봉준 장군이라는 호칭대신 전봉준 선생 고가라는 어설픈 명패가 붙어 있어 아직도 왜곡된 역사의 현장에 우리가 살고 있구나 하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고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끝내고 차에 오를 때는 오후 1시 10분, 배고파 못살겠다는 원성에 도망가는 조병갑처럼 바삐 서둘러 출발, 황토재-그 위대한 역사의 이름에 발을 디디고 입맞춘 것은 해가 짱짱한 오후 1시 30분이었다. 바삐 오느라 제대로 썰지 않는 김밥을 보기보다 별미었다. 팔뚝만한 김밥을 옆구리 터지는 소리가 안나도록 두손으로 잡고 두어개 먹고, 막걸리 배 따로 있다고 두부와 김치, 그리고 음료수와 사과까지 더 걸치면서 그동안 안내자의 독재에서 해방된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식사후 배를 두드리며 기념관을 참관하였지만 너무나 볼품이 없었고 더더구나 기록화라고 두어점 있는 것이 살찐 민중과 갓쓰고 살찐 전봉준장군이었으니 과연 배부른 자가 혁명과 무장봉기를 꿈꿀 수 있겠는가? 의심스러웠다.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의 대의명분이, “반외세 반봉건”의 혁명 사상이 아직도 이땅에는 필요한 현실, 우리들은 60명이 한뜻이 되어 황토재 앞마당에서 고함도 지르고 강강수월래 대동놀이도 하며 땀흘리기를 한시간 남짓, 이미 해가 기울어지고 있는 판이었다.
대동놀이로 들어가기 전에 안내를 맡은 문상붕선생은 주최측의 일원으로서 안내자를 구하지 못해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때운다고 설치더만 어느새 동학전공자 시늉을 내며 강의에 들어갔다. 20분만하겠다는 강연이 45분을 넘겨서야 겨우 끝나 45분 혹은 50분 강의에 익숙한 선생티를 아직도 못 벗었다고 주위에서 키득거리는 것을 뒤로 아쉬운 황토재를 떠나 만석보를 향했다.
“만석보 유지비”쓸데없이 새보를 막아 수세를 뜯어먹으려던 조병갑이는 이미 죽었다. 그러나 아직 이땅의 농민들에게는 농지개량조합에서 뜯는 수세가 남아 있다. 어디 뜯어먹는 게 수세뿐이고 농지개량조합뿐이랴! 아! 고난받는 민중이여! 땅이여!
갈대와 억새풀이 너풀거리는 만석보뚝 따라 길게 흐르는 태인천, 우리는 납작한 다리를 건너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으로 유명한 백산을 향했다. 만석보에서 뉘엿거리던 해가 백산에서는 흔적도 없고 땅거미가 밀물지고 있었다.
야트막한 50미터 정도의 산이라고 할 수 없는 작은 언덕위에 올랐을 때 아! 의외의 진개맹경(김제만경-금만평야)너른 들이 일망무제로 펄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동학군이 대진을 설치할만한 곳이었다. “호남창의 대장소”-‘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르름은 그 본의가 결단코 다르데 있지 아니 하고 창생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위에다 두고자 함이면, 안으로 참학한 관리의 머리를 버리고 밖으로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하고자 함이다. 양반과 부호앞에서 굴욕받는 소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혁명을 꿈꾸는, 백의민족, 민중들의 소망, 핏발선 녹두장군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김제를 지나 일부는 졸고 일부는 노래부르는 가운데 전주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 50분 아쉬운 마음에 몇은 빵과 생맥주 몇 잔으로 뒷풀이에 가름했다.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해도 늦으리라 지금 이시각으로 일어서리” 기회주의자로 가득찬 이 세상, 속에 죽창 한자루씩 안고 갔다. ‘애기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폐허가 된 농촌’ 농촌의 어려움이야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거늘 이제 이 땅은 외세에 분단의 모순이 첩첩 산중이라 미․일․중․소 4개 강국과 EC, 다시금 새로움을 꿈꾸는 것이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고 바로 우리들의 손에 의해 20세기 말에 통일과 보국안민, 제폭구민의 뜻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알량한 정권유지를 위해 외국군대를 끌어다 제 백성 제 동포를 죽이고 어육을 만드는 놈들이 어디 비단 구한말 조선조의 집권자들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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