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의 문화는 그 지역 사람들의 정서와 삶이 제대로 반영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문화에 있어 지역의 독창적 정서가 강조되는 이유로 시대와 지역과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표출될 수밖에 없는 삶의 구체적 모습이 진실되게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 때문이다.
지난 10월 7일부터 13일까지 이 지역에선 제 72회 전국체전이 열렸다. 해마다 전국체전이 열리는 지역에선 잔치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주최 지역의 특색을 살려내는 각종 행사가 기획되어 열렸듯이 금년에도 예외 없이 다양한 행사들이 체전을 기념하는 마당으로 줄줄이 꿰어 펼쳐졌다. 여느해보다도 더욱 유별난 시책들이 동원 됐던 금년 전주의 전국체전 분위기를 방만하게 벌여 놓는데 한 몫을 한 것은 문화체전이라는 기발한 주제로 치러졌던 각종 문화 예술행사였다. 행정 담당자들이 필요 할때만 허울좋게 앞세우는 「예향」의 면모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단단한 몫을 한 셈인데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총체적으로 발휘해내는 마당을 꾸린다는 당초의 취지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행사들이 겉치레의 요소들만 확연하게 드러냄으로써 의미있는 성과는 이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이다. 그도 그럴것이 문화체전을 앞세우고 치러졌던 각종 문화행사들은 대부분이 졸속으로 꾸며진 무대이거나 일회성 행사 이상의 의미를 담아내지 못한 채 피동적인 동원형식으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이번 체전을 앞뒤로 열렸던 문화행사는 자그만치 50개에 이른다. 전북예술회관과 옛 삼양사 부지에 설치됐던 특설무대를 비롯한 전주시내 각문화 공간에서 연일 이어졌던 이들 행사들은 어찌됐건 전북 문화예술인들의 역량으로 마련된 무대였고 또 이지역의 독창적 정서가 응집된 무대로 평가 받을 수도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번 창작 발표 무대가 진정으로 이 지역 문화예술을 제대로 보여주는 자리로서 의미를 부여했는지에 대해선 실제로 그 무대를 꾸리는 일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조차 자신있게 나서지 못한다.
그들이 빈약할 수 밖에 없었던, 혹은 졸속으로 치러질 수 밖에 없었던 명분으로 가장 앞세우는 것은 빈약한 예산이다. 해마다 문화예술의 열악한 여건을 지속시키는 요소가 바로 어려운 제정여건이었음을 감안할 때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더욱이 이번 국체가 문화체전을 주제로 내세웠으면서도 전체예산중에 문화예술행사에 투자한 예산이 얼마나 되었는가를 안다면 여전히 말로만 앞세우는 문화예술에 대한 행정관서의 형식적인 관심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이번 문화체전을 점검해 볼 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형식적인 문화행정정책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그러한 전시행정을 부추긴 격이 되고만 문화예술계의 입장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문화체전을 중심적으로 이끌었던 전라예술제는 주최자들이 전에 없이 더욱 큰 열정과 노력을 했음에도 이번 무대에서 과연 무엇을 성과로 남겼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겨 해마다 지적되어왔던 전라예술제의 의미와 위상을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 한 번 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전라예술제 역시 무대다운 면모를 꾸밀 수 있을 만큼 예산정책이 이루어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주최측인 예총과 각 예술단체들이 감수해야 할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한 여건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다양한 무대를 마련한 예술인들의 노고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노력과 열정이 바탕 된 무대일지라도 그것이 부여하는 의미가 실질적이지 못하고 겉치레의 요소에 지나지 않거나 형식적 자리에 치우치고 만다면 그 노력은 결국 무의미한 요소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전라예술제는 전국체전의 분위기에 휩쓸려 치러지고 말아서는 안될 자체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금년으로 30회째를 맞이한 전라예술제의 위상을 점검해 보는 일도, 그 현재적 의미를 찾아내는 일도,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일도 문화체전의 의미보다 훨씬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전라 예술제가 어떤 모습으로 이어졌으며 이 행사의 주체자들 또한 이러한 중요한 의미를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선 별로 떳떳하지 못할 거 같다. 양적으로 풍성하고 다양하며 화려한 치레로 대부분의 행사를 꾸리는 일에 급급했었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체전이 시작되기 하루전인 6일 개막된 전라예술제는 각 협회의 회원전과 발표회로 이어져 그 어느해보다도 풍성한 면모를 보이는 듯했으나 정작 무대를 올린 뒤의 내용은 예년과 별 다름없이 연례행사 한 건 치루어내는 그 이상의 성의는 보여지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제30회 전라예술제에서 주최측이 가장 큰 의의를 부여했던 행사는 작년부터 구상했던 전라관찰사 행렬 재현이었다. 체전 개막식을 기념한 시가 행진으로 꾸렸던 이 사업은 이 지역의 역사성을 조명하고 오늘에 전통의 맥을 되살려낸다는 의미를 갖는 작업이긴 했지만 이 생사의 모든 것을 서울의 축제문화진흥회에 위탁함으로써 실제로 그 고증작업이나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닌 1회성 행사 이상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오랫동안 이 작업을 구상해온 예총에서는 고증에서부터 재현까지 해내는데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데다 인력과 시간상의 제약이 너무 많아 부득이 이미 고증을 끝내고 자료를 모두 확보하고 있는 단체에 의뢰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지만 결국 1회용 행사로 그친 격이 되고 만 이 행사의 허실을 곰곰이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이 지역뿐 아니라 다른 시, 도에서도 이와 같은 행사를 우리와 똑같은 형식으로 축제문화진흥회에 의뢰해 재현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자칫 역사를 조명하는 작업까지도 이제는 박제화된 틀에 의해 짜맞춰지는 격은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이번 전라예술제에선 각 예술단체들의 회원들이 참여한 전시나 공연이 이어졌지만 진정으로 이 지역 예술인들의 역량이 집약된 무대나 성의있게 기획된 전시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졸속으로 짜여진 채 타이틀만 거창하게 내세웠던 몇몇 기획 작업이나 해마다 그래왔듯이 구색 맞추기식으로 올려졌던 무대를 대하면서 정작 이 행사를 준비했던 예술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결실(?)들을 지켜볼 것인가가 궁금하다고 적잖은 관객들은 말했다.
예외 없이 빈약한 무대의 구실이 된 예산의 한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전국체전의 전체예산이 1천80억원이었고 이중 1%에도 못미치는 1억 3천2백만원이 전라예술제에 지원된 예산의 전부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로 치루어진 것도 다행스러운 것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그 예산의 문제가 비단 오늘의 일이 아니고 해마다 제기되어온 문제였고 보면 늘상 행사를 치르고 난 뒤에 예산 운운할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거나 없는 예산 나눠 쓰기식으로 허실을 부추기는 일은 진작 그만 두었어야 옳을 일이다.
햇수로는 이미 성장할 대로 해버린 전라예술제가 이번 문화체전을 앞세우고 치러지고 난 이후 그 모양새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위상을 천천히 들여다 보는 자세가 이 시점에선 더욱 절실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