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오페라단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공연이 1991년 10월 10~13일까지 전북학생회관에서 올려짐으로써 전북음악계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연초부터 음악계에 일어난 암울한 일들이 많은 음악인과 동호인들을 우울케 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의 민간 오페라단이 이만큼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전북지역에서 음악계의 지표를 세워준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호남오페라단(단장 조장남)은 86년 7월에 호남지역 오페라 운동의 활성화와 음악문화창달이라는 기치를 걸고 창단되어 그랜드 오페라공연과 콘서트 오페라 및 자선음악회, 유명음악인 초청음악회 등 연주사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려는 노력과 의욕으로 활동을 해 왔다.
특히 이번 공연을 위해서 연출자(Franco Vacchi)와 테너(Andrea Elena)를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초빙하였고 이지역 오페라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조장남 교수의 공동연출은 그의 오페라에 대한 열정과 의욕을 엿볼 수 있게 하고 호남오페라단의 활동방향에 새로운 출발점이 되리라 확신한다.
먼저 무대전체를 살펴보면 시대와 장소는 19C중반 무렵의 파리와 그 근교를 바탕으로 하는데 무대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연기자와 관객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일차적으로 무대환경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연기자의 연기를 촉진시켜주고 관객에게 이해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시대와 장소, 사회적 배경 연출에 따른 동적감각을 잘 살려주어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 연기 내용이 경직되어 무대 공간이 굳어 있는 감이 있었고 이가극이 갖고 있는 내용을 의식해서 인지 전반적인 조명의 명암차이가 극히 소극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
1막에서는 전주곡인 아다지오 나단조의 극히 짧은 음악이 이가극의 내용을 암시하듯 분위기를 압도하며 도입을 잘하였고 전체적 구성이 조화를 이루며 사교 분위기를 잘 묘사해 주었다. 그러나 일동이 합창으로 가세하는 ≪축배의 노래≫와 함께 흥겨운 파티장이 노래로 인해 경직되고 생동감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막은 파리근교 아담한 시골집으로 잘 정돈된 분위기였으나 조명이 다소 어두웠고, 특히 무도회 장면에서 밝고 생동감 넘치는 장면에 있어서는 더욱 아쉬움을 느꼈다.
제 3막은 비올레타의 우울한 침실 분위기를 아주 잘 살리었으며 짜임새 있는 연출로 극적인 효과를 잘 나타내었다.
분장은 단역들의 역할 분장이 뚜렷하게 분위기를 살리고자 하였으나 주역인 비올레타의 분장은 결핵에 걸린 여자 분위기와는 동떨어져 이질감을 주었다. 좀 더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대담하고 분명하게 나타내 주어야 했으리라 본다.
합창(호남오페라단 합창단 지휘 김성진)은 딕션에 세밀한 연구가 요구되었으나 무도회에서 이국적인 정취가 넘치는 ≪집시의 합창≫과 투우장면을 묘사한 ≪투우사의 합창≫은 극적인 표현의 노래로 무용수들과 잘 어우러져 볼거리와 함께 좋은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오케스트라(전라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고영일)의 반주는 전체적인 음악을 무리없이 잘 이끌어간 협연이었고 지휘자가 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암보하므로 연기자와의 호흡을 예리하게 잘 맞추며 이끌어 나가는 지휘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하겠다.
비올레타역은 배행숙, 임옥경, 최혜란, 방경숙으로 각기 개성에 맞는 연기와 노래로 시종 극의 흐름을 파악하며 진지하게 감정표현을 잘 해 주었다. 비올레타역의 뛰어난 목소리를 들려주는 대목인 ≪아 그이인가~꽃에서 꽃으로≫의 아리아는 가수에게 있어 어려운 기교가 요구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원만하게 잘 처리하였고 마지막 부분의 알프레도와의 유명한 이중창 ≪파리를 떠나≫는 호흡의 일치와 조화를 잘 이루어낸 좋은 앙상블이었다.
알프레도역은 김용진과 A. Elena가 맡았다. 김용진은 유연성있는 연기와 테너의 빛깔을 잘 살리었으며 감정표현이 호흡과 함께 일치하는 노래가 좋았고 때로 낮은소리에 약한감을 주었으나 앙상블을 이루는 부분에서는 특히 좋은 노래를 들려주었다. A. Elena는 깨끗한 톤과 통일된 소리로 감정이 잘 표현되었으며 의외로 상대역과도 호흡이 잘 맞아 시원함을 느껴주었다.
제르몽역은 조시민, 김재창, 김성길이었다. 김성길은 시종 안정감으로 전체적인 통일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좋은 노래와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프로벤자 내고향으로≫는 일품이었다. 조시민은 무대를 채워주는 드라마틱한 소리이나 조금은 거칠고 윤기없는 발성이 아쉬웠고 김재창은 좋은 질감의 소리로 꽉찬 노래를 불러주어 장래를 기대케하는 성악가로 보이나 연기에 있어서 유연성이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제2막 비올레타에게 헤어질 것을 권유하며 설득할 때 고은 선율을 연달아 나타내는데 절제되고 안정된 소리로 감정표현을 잘 해 주었다.
플로라역의 강양이, 김은경은 맡은 역할을 진지하게 잘 연기해 주었다. 강양이는 연기에서 미숙한 점이 엿보였으며 김은경은 음색이 곱고 고르며 연기에서 감정표현이 좋았다.
안니나역은 정윤경․박수진, 가스통역은 이종석․김종민, 마르게제역은 오두영, 듀폴역은 이용승․최정헌, 코밋사리오역은 현광원, 단역으로서 좋은 질감의 소리를 가지고 좋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때로 주역과 중창과 합창을 부를 때 호흡을 잘 이루었으며 대화부분에서도 원활하게 잘 처리해 주었다.
특히 이번 연주에서 돋보이며 칭찬할만한 것은 오페라 전곡을 원어로 불렀는데 오페라의 질과 격을 한층 높이는데 촉매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호남오페라단 공연은 전북오페라의 새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이와함께 더욱 열정과 각고의 노력으로 매진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오페라에 필요한 오케스트라, 연출자, 무대디자이너 등을 양성하여 폭 넓은 인재를 등용시키므로서 호남지역의 명실상부한 연주단체로서 전북음악을 이끌어가고 오페라를 정착시키며 대중화하는데 힘써야 하리라 생각한다.
여러 가지로 환경이 열악하고 음악적 토양이 부족한 지방의 여건을 딛고 “라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린 연주인과 동호인들에게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