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12 | [문화저널]
파리도 여윈 마소에 더 덤빈다.
김두경․서예가
(2004-01-29 16:36:25)
요즈음은 뜸해졌지만 한 때는 세계는 하나 어쩌고 하면서 이디오피아와 소말리아 대 기근에 쌀 보내기, 의약품 보내기 운동을 제법 요란하게 벌였다. TV도 연일 굶주린 이디오피아인의 처참한 몰골을 가진자의 당당함이나 여유 그런것과 함께 보여 주었고 신문과 잡지도다투어 그랬다. 그때 그 화면을 보았던 모든 사람들은 불쌍한 생각에 한줌의 쌀이라도 보내주고 싶었고 또 보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쌀 한주먹이라도 보낸 사람이나 마음만 그랬던 사람이거나 누구도 이디오피아나 소말리아를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지금 이 순간 그 기근을 구호하자고 보낸 물품들로 치부를 하는 그 나라 놈도 있을 것이고 구호물품을 보내는 나라 어떤 놈들도 그것으로 배를 불리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이렇다. 아무리 깨끗한 사회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완전한 정의의 실현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비관적일까? 아닐 것이다. 절대로 비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옛 말씀에 딸네집에 흉사가 있어 굿을 하러 가는데도 전대를 세 개씩이나 차고 간다 했거니와 없는 살림에 떡국을 끓여도 떡국 뜨는 사람 몫은 남기고 뜬다는 뜻으로 “떡국 끓여 떡 다 건지는 며느리 없다”는 말씀도 있듯이 혈육지간 이라도 자기 이익은 남긴다 했을진데 하물며 남남을 넘어 국가간에야 어떠하겠는가? 냉혹한 현실만 존재하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자식놈이 시골 부모님 뵈러 갈 때도 제자식 먹기도 귀한 것은 부모님께 가져갈 엄두도 못내는 것이 요즈음 현실일진데 있는 나라라 해서 먹고 입고 쓰고 남는 것 아니고 제 살 깍아줄리 만무하지 않은가? 먹고 남아 주체할 수 없는 밀가루나 고기조각 던져주는 무상원조(?)이 허울 좋은 사탕 발림에 그들은 우리의 문화, 역사, 전통 뿐 아니라 삶 자체를 자기 것으로 하려든다는 사실을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듣자하니 우리나라 최고의 수재가 모인다는 서울대학교에 어떤 나라에서 대형 컴퓨터를 무상으로 기증한다 하니 감지덕지하고 받았는데 알고보니 그 컴퓨터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그나라 그 회사에서 구입하지 않으면 안되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 서울대 하나에서 어쩌다 실수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산업현장은 물론 군사 무기들도 처치 곤란한 한물 간 것을 우리에게 팔아 먹거나 무상원조라는 이름아래 던져주고 그 것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물품을 팔아 먹어 남길 이익은 다 남기고 거들먹거리기는 최대한 거들먹거리는 일이 이나라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헤비메탈과 랩 뮤직에 놀아나고 있을 때, 햄버거와 코카콜라에 길들이고 밥상에 칼과 삼지창을 올려놓고 분위기 어쩌고 하며 와인을 홀짝이고 있을 때 그들의 쓰레기는 도려 낼 수 없는 깊이로 스며드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눈감기고 귀 막혀서 살 것인가? 우리들의 형제 윤금이씨가 이 땅에 주둔한 군인들의 놀이개가 되었다가 이제 찢겨진 인형이 되어 쓰레기처럼 버려졌는데도 헤비메탈과 랩에 젖어 박자를 맞출 것인가? 그것은 못나고 타락한 한 여인의 종말일 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옛 말씀에 파리도 여윈 마소에 더 덤빈다 했거니 힘을 기르자. 누구 누구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각자 민족적 자존심을 세워서 우리의 문화, 역사, 전통을 되살리고 우리의 삶을 찾자. 우리가 건강하며 웬만한 병균쯤 발 붙이지 못하고 발붙였던 병균도 물러 난다. 지금까지는 방법을 잘 몰라 서툴기도 했지만 이제 방법을 익혔으니 금권 관권에 물들지 말고 좋은 지도자 뽑아 놓고 모여들었던 파리들 쫓아내자.
파리도 여원 마소에 더 덤빈다는 옛말씀 잊지 말고 더 이상 병들고 여위지 말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