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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1 | 연재 [파랑새를 찾아서]
도솔암 마애석불
이상훈․편집위원(2004-01-29 16:42:48)

고창 흥덕으로부터 서로 40리쯤에 듬직하게 자리잡은 선운산. 그 곳에는 구름속에 선(禪)을 닦는다는 선운사라는 대가람 있고 주위에는 도솔천 미륵보살 정토인 도솔암을 비롯한 수많은 암자가 있다. 도솔암 아래 절벽 전면에는 가까이에서 한참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는 커다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소위“도솔암 마애석불”이 이것이다.(지방유형문화재 30호)
선운사로부터 30~40분쯤 걸어 올라가 마주 대하게 된 도솔암 마애석불은 지긋이 눈을 감고 있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조금은 침울하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두손을 모으고 결가부좌한 다리위에 올려져 있는 조화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투박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애석불에는 검단선사가 숨겨두었다는 비결이 관심을 끌게 한다. 마애석불 배꼽에 비결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 마애석불의 배꼽은 가슴 팍 부분에 있으며 구멍이 봉해진 상태로 있다. 지금도 우리는 그것을 똑똑히 볼 수 있다. 그 비결이 나오게 되면 한양이 망하게 된다고 한다. 한양이 망한다는 것은 조선왕조가 망한다는 것을 말함이다. 그런데, 비결과 함께 벼락살이함께 봉해져 있어 어느 누구도 감히 비결 꺼내기를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결을 조선후기 사회가 구조적 모순으로 휩싸인 때 동학도들에 의해 꺼내지게 되었다. 동학도들에 의해 조선왕조가 망한다는 비결이 꺼내지게 된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조선왕조에 대한 도전을 말함이요, 이렇게 하여 정치․경제적 모순으로 인한 백성들의 울분이 가득 차고 폐해가 극심한 조선사회의 붕괴를 기다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앞날에 대한 희망, 염원을 마애석불 배꼽의 비결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서 마애석불은 미륵이기도 한데 미륵신앙 또한 그 당시 백성들에게 비결과 같은 희망과 염원의 대상이며 민중운동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상황인 질병․흉년․기근으로 인한 암담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가져다 주고 하루빨리 극락세계로의 이행을 소망했던 것이 미륵사상이다.
역사발전은 단선적이 아니라, 그것은 때로 혁명과 퇴행, 그리고 진화를 반복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동학혁명(갑오농민전쟁)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대단히 크다고 생각된다. 동학도들은 썩어문드러진 현실을 타개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것이 동학혁명으로 나타났던 깃이고 분명 역사상에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좌절을 안겨준 미완성의 혁명으로 오늘에까지 혁명의 과정으로 인식되어 오고 있다. 오늘에 역사를 되새겨 보는 것은 적어도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대 상황과 별반 다른 게 없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동학도들이 비결을 꺼내고자 했던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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