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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1 | 연재 [문화저널]
창간 4주년을 맞아2운조루의 쌀쥐주-정치 십년, 교육 백년, 문화 천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동엽 운영위원(2004-01-29 16:50:08)

몇해전 방송국에 근무하는 친구의 취재여행에 동행하여 운조루에 가 볼 기회가 있었다.
구례에서 하동쪽으로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가다보면 지리산 자락 끝에 얹혀 있는 운조루가 있다. 수백 년동안 유시(유성룡의 집안)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곳이라서, 특이한 가옥구조나 누대에 걸친 묵은 살림살이가 깊은 인산을 주는 곳이었지만 그날 운조루 주인의 여러 설명중에서 안채 문곁에 있는 쌀뒤주의 얘기는 두고두고 그 인상이 짙게 남아 있다.
쌀한섬은 족히 들어갈 그 큰 나무 뒤주는 운조루를 찾아오는 어려운 사람들(여행객, 장사꾼, 걸인 등)을 위해 쌀을 가득채워 놓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시어머니는 뒤주속에 남아있는 쌀의 양(量)을 보고서 덕(德) 쌓음에 소홀히 말 것을 큰며느리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산자락의 외딴지역에서, 수십대(代) 수백년에 걸쳐 겪었을 그 많은 난리속에서도 어떻게 아무런 이상없이 집안을 보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처음부터의 의문을 운조루의 쌀뒤주는 쉽게 풀어주는 것이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까지도 치료해주고 먹여주면서, 언제든지 길을 떠나고저 할때는 깨끗한 옷까지 해 입혀 보냈다는 운조루의 사람들.
화평(和平)이라는 말뜻이 「마음이 기쁘고 평안함」이라 할때 운조루의 쌀뒤주는 우리에게 화평의 의미를 다시 가르쳐 주는 것 같다. 평(平)이라는 글자가 고른 저울의 상태 즉 시비를 낳지 않는 적정분배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고, 화(禾+口)의 뜻이 수확된 나락을 입(口)에 넣어서 즉 밥을 먹어서 라기 보다는 입(口)의 수(數)에 맞게 나누어서 라고 해석해 보면 「마음이 기쁘고 평안」한 이상적인 상태의 삶은 잘 거두어들이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잘 나눔의 결과라고 쉽고도 지극히 어려운 교훈을 주는 것이다.
수십만원짜리 옷을 걸치고서 콩나물값 시비를 하는 짓이나 주체못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뜻있는 곳에 쓰지 못하고 유흥퇴폐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짓이나, 끊임없는 탐욕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허리를 더 옥죄하는 짓들이 아무런 부끄럼없이 행해지는 요즈음이 더 더욱 큰 의미를 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모재벌 총수가 피땀흘려 쌓은(?) 재산의 많은 부분을 문화사업에 쓰겠다고 하였다.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였던 간에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사대주의적인 역사왜곡이 자존의식(自存意識)을 망가뜨리고, 하여 무조건 제것을 천시하는 망국적인 정신병이 만연해 있는 현실에서, 그것의 쓰임이 자기 것을 되찾아 올바로 알고 자존의 뿌리를 튼튼히 하려 하는 진정한 문화사업에 투자하려는지 그저 분별 없는 사대주의적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는 보다 많은 힘들이 올바른 문화의 계승 발전에 쓰여져야 할 때다.
정치 10년 교육 100년 일 때 문화는 1000년이라 하지 않던가. 선조들이 수 천년에 걸쳐 이루어낸 문화유산을 손쉽게 제것으로 누리면서도, 후손들을 위한 문화사업투자에 인색한 것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짓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올곧은 비판의 마당을 펼쳐온 문화저널이 창간 4주년을 맞는다. 잡지의 발간 작업과 병행하여, 여러 차례의 문화행사를 치루면서 겪어온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고집스러운 의무감으로 이겨내는 그것은 진정한 장인(匠人)의 정신이다.
강물 속에 향나무를 박아두어 수 천년 후 알지도 보지도 못할 후손들에게 침향(沈香)을 쓸 수 있게 해준 조상들이나, 곳곳에 정자나무를 심어 지금의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신 마음으로 문화저널을 후원해 주시는 기업체와 후원회원님들 그리고 정기구독 회원들에게 감사한다.
운조루의 쌀뒤주를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43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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