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 | [서평]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유시춘외 17명, 도서출판 새날, 1992)
지역사회연구모임(2004-02-03 10:18:58)
우리는 그동안 이 서평난을 통해 우리가 무심히 흘려보냈을 여러 사회현상들을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보다 진실되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사회과학도서를 중심으로 소개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가는 동안 무리한 욕심으로 인해 점차 무거운 내용의 책들이 소개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그 내용이란 웬만한 사회과학적 지식을 갖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읽을 수 없는 것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은 아무런 사회과학적 지식을 갖지 않았다 하더라도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 아주 쉽고 재미있는 책이다. 그러나 글이 쉽고 재미있다고 해서 그저 함부로 알고 내팽개쳐두어도 될 그런 내용은 절대 아니다.
우선 이 책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관한 책이다. 우리에게 있어 여성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아낼만 한데 더욱이 아름다움을 논하고 있으니 호기심의 강도는 더욱 증폭된다.
이 책의 기본형태는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그가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명사 17인이 경험했거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구체적인 인물을 들어서 피력하는 짤막한 에세이모음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학술서적이나 논문을 읽을 때에 느끼는 중압감이나 권태로움은 없는 반면 간혹 문학소녀적 취향의 언사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나 덕목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주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문학가나 예술가들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하나의 작품으로 형상화 해내기 위해 그 많은 애를 쓰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를 한번쯤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란 어떤 여성인가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동안 여성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평가되어 왔을까? 그 한가지 해답을 우리는 여성의 상품화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상품으로 인식될 때 상품의 가치를 보증해주는 역할로서 여성의 표피적인 아름다움은 매우 중요한 가치로 등장한다. 우선 속이야 어떻든 겉만이라도 확실하게 예쁘게 꾸며야 시선을 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 편승하여 저자거리에는 여성의 표피적 아름다움을 위한 수많은 상품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고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모든 대중매체는 여성에게 아름답게 꾸며서 남성으로부터 사랑받는 여성이 되라고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다. 더구나 자신을 상품화하는데 크게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인기 연예인의 헤어 스타일이나 옷차림이 무슨 전염병처럼 전국을 휩쓸며 유행하고 심지어는 성형외과가 의사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분야의 하나로 떠오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욱이 우리의 여성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중이 서양 여성이 갖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근거하고 있어 이젠 의식의 서구화라는 수준을 넘어선 신체의 서구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우리 모두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허구적이고 가상적인 이미지에 파묻혀서 보다 지능화되고 교묘해진 또 하나의 남성을 위주로 한 가부장적 권위의 문화를 창출해내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무기이며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우리는 여성의 아름다움조차도 누군가의 소유를 위해 기능하는 것이며 아름다움을 차지하고 누리는 것도 결국 자본주의 원칙에 의해서 거래가 가능해지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본래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대단히 고리타분한 주제이며 무슨 국민학교 바른생활 교과서에서나 다루어질 문제인 듯 보이기도 하나 우리의 현실생활이 유치원 수준도 안되는 유치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도 우리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주제이다.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한 일정한 정도의 해답을 지금 소개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책은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일생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거나 살다 간 여성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짧은 글로 형상화된 각각의 인물들의 생애를 통해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는 것인가, 또 아름다운 여성이란 어떤 여성이며 그러한 여성이 이 사회에 주는 무한한 기쁨은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전해주려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의 면모를 보면 감리교의 목사로 박정희 정권 하에서 민중의 억압을 발견한 후 기존의 종교관과 사회관에서 벗어나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여성근로자들과 한데 어울려 생환한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인도 빈민들의 영원한 어머니로 불리우는 수녀 테레사,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일생을 살지만 우리 모두에게 늘 특별한 존재로 기억되는 어머니,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되고 모든 피해를 한몸에 받아온 농촌에서 묵묵히 자신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는 농촌의 부녀자, 왜곡된 성문화의 한 책임자인 헐리웃 영화에 물들어 있는 우리에게 진실이 배어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중국의 여배우 공리, 아무런 매력이 없다고 여겼으나 어느 날 남편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발견되는 아내, 칠레의 민중적 정서를 현대음악에 접합시켜 칠레민중을 위한 수많은 신명나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하다 살해된 빅토르 하라의 아내인 조안 하라, 비록 작가의 상상속에서 태어난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사회의 정의와 여성에게 주어진 봉건적 잔재의 한계를 벗으며 사회변혁에 앞장서는 소설과 영화속의 여성들, 통일의 꽃 임수경, 세계여성혁명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로사 룩셈부르크 등 그 외에도 우리의 주위에서 흔하게 발견되지만 이 사회를 위해 그들이 맡은 중요한 역할이 쉽게 감지되지 않는 그런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의 모델로 제시되는 인물들과 그들의 삶을 읽어 보면 그들의 행적이 마치 굉장히 힘든 일로만 채워져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 쉬운 일들만을 골라서 해가며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또 위의 인물들은 눈에 보이는 수많은 부당한 일, 그리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일에 피하지 않고 맞섰던데 반해 우리는 나의 도움을 절실히 요구하는 일을 눈앞에 직면하고도 애써 그것을 못본체, 못들은체 하며 살아오지나 않았던가?
아름다운 꽃이 내는 향기는 주위의 공기를 더욱 향기롭게 해주듯 아름답게 살아가는 인간의 주위에는 늘 가슴뿌듯한 기쁨이 있다. 공기와 물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가장 고마운 것들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며 살고 있듯이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의 사회가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표피적 아름다움을 위해서 고민하는 우리의 누이들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를 얘기해 줄 필요가 있다.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화장품 카탈로그 대신 이 책을 들려주고 싶다.
(정리․문윤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