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 | [문화저널]
내집 강아지 내가 예뻐해야 남도 예뻐한다
김 두 경․서예가․편집위원
(2004-02-03 10:24:13)
지난 11월 28일 일요일에 문화저널 창간 5주년 기념행사로 문화저널에서는 「슬기둥」초청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비록 준비는 좀 어설펐던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흥겨운 한마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장권을 예매하고 공연을 마치기까지 속사정을 알고 보면 슬프고 안타깝다 못해 눈물이 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TV에서는 이제 막 20세를 넘기거나 아직 20세에도 못이른 애들이 말도 안되는 말장난으로 시간을 좀먹고 있는데 사라들은 밥숟가락을 든채 한참씩 그들의 재롱에 넋을 놓고 우리의 국창 박동진선생의 “제비 몰러 나간다”는 새로운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땅의 누구도 이것을 안타까와 하거나 흥보가를 한번쯤 들어보고 싶은 마음을 내는 분 현미경으로 망원경으로 들여다봐도 찾을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뉴키즈 온 더 블록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나 요즈음 유행하는 서양놈들의 공연에서는 입장권을 구하려고 밤새워 줄을 서고 부로들까지 나서서 설치다가 다리뼈도 부러지고 갈비뼈도 몇 개씩 부러진다는데 알만한 사람이라 생각돼서 입장권을 내밀면 구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시간이 ‘없어서……’이고 초대권을 주어도 뭐 이따위 공연에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는 떨떠름한 표정입니다. 물론 슬기둥이 연주하는 음악을 접해 볼 기회가 적어서 슬기둥을 모를지라도 보충 설명을 해주면 『어! 그래 난 몰랐었네 꼭 가봐야지』정도는 돼야 이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을텐데 정말 낯부끄러울 정도로 장황한 설명에도 떨떠름한 표정을 보일 때는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공연장에서는 또 어떠했습니까? 만약 서양의 클래식음악이었다면 공연시작 30분전부터라도 발 뒤꿈치를 들고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자리를 찾아가기도 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미안한 마음으로 앞쪽으로 이동하기도 하는 것이 에티켓이니 어른티켓이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으면 아무리 앞자리에 앉고 싶어도 뒤쪽에 앉았다가 아이가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면 재빨리 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식일진대 맨 앞줄에 앉아 아이를 울리는 분도 계셨습니다.
심지어는 개량 한복을 점잖게 입으신 것을 보니 본인이 우리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시든지 아씨마님께서 서방님 옷을 한복으로 차려드릴 만큼 민족얼이 올바로 박혀 우리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시는지 맨 앞줄에 앉아 음악에 취하여 두 따님이 마라톤 올림픽 재패를 꿈꾸며 공연장을 누비는 데도 삼매경에 빠지신 모습은 실로 한심스러웠습니다. 또 1부 순서가 끝나고 10분간 휴식에는 뭐하셨는지 공연을 시작한 한참 뒤까지 조금도 미안한 마음없이 당당하게 드나드는 것은 어떤 마음에서 일까요.
옛날 우리네 소리판이나 굿판이 관중과 어우러진 한판이었던 전통을 생각하고 그렇게 거침없이 행동하는지 모르겠지만 추임새라든가 맞장구를 치거나 뒷소리를 받아주어야 할 때는 한마디 소리도 못하면서 그렇게 당당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래도 어쩌다가 들어본 사물 가락에는 귀가 트이는지 박수소리가 조금은 커지고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캐롤송이 나타나니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어 흥얼거리는데는 아예 한심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우리 것에 대해 이렇게 무식해도 되는지 눈물이 났습니다. 옛 말씀에 ‘내집 강아지 내가 예뻐해야 남도 예뻐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함부로 발길질할 것은 뻔한 것 아닙니까? 내 부모 내 형제가 못나고 모자란다고 남의 부모 남의 형제를 따르고 우리 부모형제 저버린다면 그 사람의 존재가 바로설 수 있겠습니까. 천만에 말씀이고 만만에 콩떡입니다. 문화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문화 버리고 우선 편리하고 우선 화려하다가 맹목적으로 따라간다면 그것은 곧 자멸입니다. 우리의 뿌리를 알고 외국문물을 새로운 영양분으로 살아 갈 때 우리는 전체가 튼튼해 집니다. 제발 사랑합시다. 우리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