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 | [문화저널]
민족시인 이광웅시인을 추모하며
문화저널(2004-02-03 10:28:16)
고 이광웅 시인 연보
․1945년 이리에서 태어남.
․이리 남성고를 졸업했으며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공부를 시작, 해방직후 전위시인이었던 유진오에게 깊은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
․고등학교 졸업후 좋아하는 선배가 다니던 외대 불문과에 입학 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은데 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그만 두었다. 그 당시에 시를 왕성하게 썼으며 그때 신석 정 선생을 알게 됐고 선생의 도움으로 문학적 깊이를 채워 나가는 한편 전북대 국문과에 다시 들어갔으나 졸업은 하지 못했다.
․이후 원광대에 문예장학생 제도가 생겨 입학, 71년 졸업장을 받았다. 외대에 입학한 해로 부터 12년만이었다.
․원광여고에 첫발령을 받아 재직했으며 76년 군산제일고로 자리를 옮겼다.
․74년 「현대문학」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으며 첫시집 『대밭』을 75년 풀빛에서 펴냈 다.
․82년 「오송회」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을 받고 7년형을 받았으나, 6․29특별 사면으로 87년 6월 석방됐다.
․복직투쟁을 해 88년 8월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되었으나 다시 전교조 해직교사가 되어 교단에서 밀려났다.
․두번째 시집 『목숨을 걸고』를 89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교육문예창작회 회장으로 일했다.
․해직 이후 전주 한샘학원에서 강사로 잠시 일했으며 92년 봄에 서울로 올라가 창작에만 전념했다.
․지난 10월 위암 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해왔으며 12월 초 세 번째 시집 『수선화』를 두리에서 펴냈다.
․12월 22일 오후 4시경 여동생 집에서 운명했다.
․그의 장례는 민족문학작가회의․전국교직원노동조합합동장으로 치뤄졌다.
추모시․그 사람 있습니다
김영춘
정다운 물소리 저벅저벅 따라가면
그 사람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같이
분노는 분노같이
가지런히 챙겨 넣어 둔 보퉁이를 들고서
내 옷을 누가 가져 갔냐고
낭낭한 노래 부르며
맑은 소년이 작은 나무같이 서 있습니다.
군산 째보 선창 막걸리집에서는
이 사람 부안 사는데 참 좋아
이 사람 이리 사는데 참 좋아
늦은 시간 우리를 기다리며
끝내 좋아하며
맑은 광웅이 형님이 서 있습니다.
끌려가던 소나무마다 교무실마다
4월도 안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정신차려야 한다고
서릿발로 서릿발로 선생님이 서 있습니다.
반쪼가리 문학의 반쪼가리 역사의 헛됨
견딜 수 없다
전기고문에 뒤틀린 몸으로 서 있습니다.
왜 사람의 마음이 별이 못되냐고 서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누님들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치라고
그 사람 안 쫓겨나는 학교에 서 있습니다.
*시인 김영춘은 1957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했으며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부안여고에 근무중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