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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8 | [문화저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더라 - 덕유산, 무주구천동의 비경을 찾아 -
원도연 문화저널 편집장 (2004-02-03 10:36:25)
한바탕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가히 ‘타는 목마름’의 그 심정이다. 더위에 녹아 질펀거리는 포도와, 후끈거리는 자동차의 열기와, 시멘트 건물의 성능 좋은 보온이 도시를 온통 타들어가게 하고 있다. 도시는 지쳤고, 그래도 비는 오지 않으며, 도시는 잠깐 쉬지도 않는다. 단 하루만이라도 이 도시를 떠나 있을 수 있다면․․․. 마침내 기회가 왔다. 전라북도 동북단 무주구천동. 그 이름만으로도 시원하지 않은가. 무주. 서울에서 241km, 대전에서 65km, 전주에서 96km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서로 다른 나라에 속해 있었고 1414년에 이르러 무풍현과 주계현이 통합되어 비로소 무주현이 되었다. 무주구천동과 ‘97 동계유니버시아드 그리고 이조실록을 보관했다는 적상산의 사고지’로 이름난 곳이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물론 구천동 삼산유곡이다. 전주에서는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떠나 2시간 50분을 달리며, 동대전에서는 15분마다 버스가 있고 2시간 20분가량을 달려야 한다. 꾸불꾸불 어지러이 곰티재를 넘었던 차가 한참을 더 가서 무주를 지나고 저기 ‘무주구천동 36Km’ 지점을 알리는 이정표를 스치듯 지나친다. 떠나는 마음은 바빴지만 산천은 한가롭다. 구천동 계곡을 코앞에 둔 채 구천동 33경의 제1경이라는 나제통문이 나타난다. 구천동은 바로 이곳으로부터 시작하여 덕유산 산록에 있는 백련사까지 30Km의 굽어진 계곡일대를 부르는 이름이다. 나제통문에 서서 잠시 그 암벽을 뚫어 만든 통문(通門)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러나 여전히 뜨겁다. 암벽을 뚫어 만든 10여 미터의 통문 아래 한가로이 앉아 노니는 신선(?)들이 한 말씀 하신다. “아니 왜 나제통문이여, 제나통문이어야지” 천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역사는 유구하며 사람살이는 여전한 것인가? 계곡을 따라 등산ㄹ로 접어들면서 우리가 택한 목적지는 백련사다. 관광단지를 거쳐 백련사를 지나고 정상을 넘본 뒤 칠연폭포로 나와 안성면으로 내려오는 등산로이다. 백련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속세를 멀리하고 가능하다면 칠연폭포에서 선녀와 나무꾼 놀이라도 한바탕 하리라. 모두가 폭포의 환상에 빠져 한참을 설레인다. 등줄기로 하염없이 흐르는 땀방울에 온몸을 적셔가며 이제나 저제나 올라가니 저기 인월담이 보인다. 지금 우리가 쫓아 올라가는 계곡의 이름을 월하탄이라고 부른단다. 달빛 아래 은빛 찬란한 광경이 사람의 넋을 빼앗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 긴긴 가뭄에 계곡도 말라들어 가는 표정이 역력하다. 월하탄은 이미 옛 자취를 찾을 길 없고 계곡은 그저 따숩기만 하다. 인월담은 구천동의 일사대, 파회와 함께 어깨를 겨루는 명소라고 한다. 인월담에 잠시 멈춰 달을 끌어당겼다는 그 물에 발을 담그니 더 나아간다는 것에 어떤 의미도 없다. 한참을 땀을 식히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사자담을 지나고 청류동을 만난다. 청류동, 가을에 단풍이 짙으면 그 물이 붉게 변하며 주변일대가 별천지가 된다는 그곳, 그러나 이곳 별천지도 가뭄에는 장사가 없어 물이 바짝 말라 들어간다. 계곡마다 바위마다 그럴싸한 이름들이 붙여져 있고, 그 이름들에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몇 개의 폭포가 만나 큰 소를 이루어 비파형을 하고 있다고 해서 비파담이라고 이름 붙여진 계곡 여울을 지나 이제 다연대에 이른다. 이 곳에 이르러서는 물을 받아 차를 다리고 목을 축여 피로를 풀으라고 한다. 한껏 모양을 내어 차를 만들고 있는 때에 이미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연신 계곡물을 퍼마신다. 구월담, 금포단을 지나며 호탄암에 이르르니 우거진 밀림 사이로 쏟아지는 물소리를 만난다. 구천동이 개발되고 무주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이곳 계곡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듯 우거진 삼림과 계곡을 바라보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법어가 절로 나온다. 산이 산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한껏 뜨거워진 지구와 도대체 이 심상치 않은 무더위와 가뭄의 재난을 떠올리면서 자연과 인간과의 끝없는 긴장을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삶의 자그만 안락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는 그저 하나의 흐름이 된다. 계곡의 흐름과 바람의 흐름과 하늘거리는 수풀의 흐름 속에, 나도 그 안에 있을 뿐이다. 명경담을 끝으로 이제 백련사로 향하는 오르막이다. 백련사에 앞서서 이속대가 나타난다. 이속대의 안내문에 한마디. ‘백련사 종소리가 들립니다. 속세가 이미 멀어진 듯 합니다’ 백련사는 그 중턱에 자리 잡은 구천동 골짜기에 유일한 사찰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숨어살던 곳인데 이곳에 백련이 피어났다 하여 절을 지었다 한다. 입구의 백련교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 한참 걸어가면 백팔번뇌를 상징한 석조로 된 108개의 계단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저 백팔계단은 얼마나 많은 번뇌를 싸안고 섰을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갖은 번뇌를 털어내고 소망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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