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8 | [특집]
더욱 늠름하고 더욱 넓게
청년문학회의 창립 두 돌을 기념하며
이광재 소설가, 새길 청년회 회장
(2004-02-03 10:39:10)
청년문학회가 결코 호사스럽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고 조용히 창립되더니 커다란 잡음이나 허장성세도 없이 지금처럼 묵묵히 성장을 해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단지 2년에 불과하단다. 2년이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지만 또한 단체에게는 그리 긴 기간이랄 수도 없을 것이다. 몇 차례 큰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다보면 한 해가 훌쩍 지나버리는 것을 나 또한 단체생활에서 겪음한 바가 있다. 그런데도 청년 문학회의 지난 2년을 돌아보면 가히 그 활동이 장쾌하고도 활달하기 이를 데 없다.
나에게 이러한 청년문학회 두 돌에 대한 글을 써 달라 할 때 가장 아찔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간의 말 많은 청년문학회의 사연과 활동들을 평가하고 고무할만한 자격이 우선 내게는 없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나는 청년문학회를 도대체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지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나와 청년문학회 개개 회원들을 구분해주는 변별점이 과연 무엇인가?
내가 청년문학회 회원들보다 나이를 더 먹은 것도 아니다. 문병학 회장과는 토끼띠 동갑이요, 그는 나보다 먼저 일가를 이룬 사람이 아닌가. 권영덕 회원이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것 또한 그러하다. 그렇다면 내가 공식적으로 책을 두어 권 펴냈다는 것은 마땅한 이유가 되는 것일까. 그 또한 아니다. 최은희는 이미 나보다 훨씬 먼저 모양도 곱고 알맹이도 그럴듯한 시집을 펴낸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거해 놓고 보니 더군다나 나는 청년문학회 실구들과 구분되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더욱 절실히 확인하게 된다. 한 가지 이유라면 나는 그저 청년문학회 회원으로 공적인 통로를 밟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에 살고 있고 문학에 뜻을 두고 있으며 도한 청년이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부터인지 나 스스로를 청년문학회 화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 글은 청년문학회 창립 두 돌을 기념하거나 축하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자축하기 위한 글인 셈이다.
무릇 문화 일반이 그렇듯이 문학 또한 한 사회의 더듬이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하도록 위치 지워져 있다. 사회가 열병을 앓기 직전에 문학이 먼저 열병을 앓게 되고, 사회의 질병에 대한 처방전 역시 문학이 앞장서 내려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집권자 이외에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말하지 못하던 저 박정희시대에 민주주의 만세를 외쳐 관제화되고 썩어 고름이 흐르는 민주주의를 본래의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역시 문학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학의 본래적 사명을 무시한 채 문학을 무슨 유학계층의 심심풀이 놀음쯤으로 여기는 창작자나 감상자가 있어왔고, 근자에는 제세상을 만난 것처럼 더욱 활개를 치는 경향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너그럽게 보아 넘기기에 그러한 경향은 그 전염성이 너무 강력하고 피해 또한 막대한 것이다. 사람을 병들게 하고 나아가 사회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청년문학회가 나서서 문학다운 문학을 차분하지만 열정적으로 설파하고자 자신의 깃발을 치켜들었던 것이다. 청년문학회 회원 모두가 문학의 이러한 순기능을 사수하기 위해 고민하는 모양들을 한번이라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고투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상처투성이로 남을지라도 문학만은 끝내 지켜내겠다는 그들의 야심과 열정은 진정으로 눈물겨운 것이다. 문학은 다른 예술장르와 달리 창작자와 감상자간의 거리가 꽤나 먼 편이다. 음악이나 연극들은 그것을 수행하는 많은 사람과 감상자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집단적으로 정서의 교감을 이루어내지만 문학만은 창작자와 감상자의 교감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집단적으로 감동을 상승시키는 과정 또한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대신 거의 완벽한 단절이 존재할 뿐이다.
청년문학회는 이러한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의 거리를 한층 좁혀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청년문학회의 많은 활동 가운데 가장 박수를 많이 받아야 할 대목이 바로 이 내용이다. 청년문학회는 그간 피동적이던 많은 익명의 감상자들을 보다 적극적인 감상자로, 더 나아가서는 그들이 창작자가 되게끔 배려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문학적 세례를 입혀 주었다. 비록 그들만의 힘으로 해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여러 차례의 문학교실이나 시화전에 절대적인 힘을 보탠 것이 청년문학회였음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년문학회는 지금까지 11회에 걸쳐 자신들의 성과인 창작물을 엮어 『청년문학』을 발간해왔다. 혹시 무슨 무슨 단체의 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시기마다 거르지 않고 회보를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자신들의 창작물로 채워지는 것일 때 11차례나 끊이지 않고 『청년문학』이 발간되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욱 기적적인 것은 이 『청년문학』의 내용들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어서 상당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청년문학』의 첫 장을 장식하는 회장의 여는 말은 청년문학회가 지금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적절하게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해 신선하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과 해결책들이 단순히 청년문학회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우리 문학 전반, 우리 사회 전반에 연동된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두고 보게 된다. 영덕칼럼(지금은 병초칼럼이다)도 그 어느 유수의 일간지 사설보다도 더욱 날카롭고 폭넓게 견해를 밝혀주어 항시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유수경, 최은희, 정동철, 장필선들의 시는 고투의 흔적이 역력하고 가끔씩 발표되는 최순영의 동화들은 신선하기조차 하다. 역시 끊이지 않고 불쑥 뛰쳐나오는 김선경의 소설도 『청년문학』의 균형을 유지시켜준다. 이러한 『청년문학』에 고무 받아 더욱 창작의 고삐를 쥐는 창작자가 얼마나 많으며, 또한 단순한 감상자각 아닌 적극적인 문학행위자가 되고픈 유혹을 느끼는 자가 얼마나 많은 줄을 아는가, 모르는가.
우리 사회가 절름발이라는 단적인 예가 될 터인데 서울 이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문화보부터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지경이다. 모든 문화시설이 서울에 집중돼 있고, 모든 문화는 서울사람들을 겨냥해 연희되거나 유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이요, 너도나도 서울로 몰려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청년문학회는 바로 이렇게 척박한 지역문화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소중한 단체이다. 아직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머리를 갸웃거리는 청년문학회 회원들도 있는 모양인데 이 기회에 자신들이 실은 얼마나 큰일을 하고 있는지 일깨워주고 싶다. 현재 청년문학회는 지역문화의 건설에 커다란 몫을 보태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 청년문학회가 이루어야 할 것은 보다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이 어떤 틀의 포로가 될 때 그 사회의 발전은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문학은 그래서 그 사회의 모든 영역을 붙들고 같이 아파해야 하는 것이다. 흔히 청년들은 새것에 민감하고 한번 신뢰를 두면 끝까지 그에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특성을 가졌다고들 말한다. 이것이 물론 나쁠 것은 없지만, 그러나, 그로부터 마땅히 청취해야 할 어떤 것들마저 자신의 틀에 비추어 구미에 맞지 않는다 하여 옆으로 밀어내버린다면 이는 회원들이 추해야 할 문학적 성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며 그 단체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닌 것이다. 청년문학회는 당연히 모든 것으로부터 열려 있어야 하며 그럴 때만이 활력과 희망을 두루 잃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 개인적으로 나에게 한 가지 커다란 경사가 있었다. 딸이 태어나고 이제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과연 2년 후에는 나의 딸도 청년문학회처럼 그리도 늠름하고 장쾌한 아이가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2년 만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낸 청년문학회가 2년 뒤에는 더욱 안정되고 늠름해질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진심으로 청년문학회의 창립 두 돌을 축하하며, 또한 자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