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4.8 | [특집]
신공안기류 조성, 우리부터 앞장선다(?) -언론-
박상현 전국 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보』기자 (2004-02-03 10:42:12)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회담을 갖기로 전격적인 합의를 이뤄내 온 국민을 들뜨게 했던 지난 7월초 언론계에선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이례적인 ‘이데올로기 공방’이 벌어져 관심을 끌었다. 조선이 자매지인 월간조선 7월호를 통해 한겨레와 한겨레 21을 ‘북한동포의 인권을 외면하는 신문’으로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면서 시작된 이 논쟁은 한겨레가 7월 7일자 한겨레 21을 통해 조선을 ‘민족의 화해를 거부하는 신문’으로 몰아붙이면서 본격화 됐다. 이번 논쟁은 우리나라 언론의 진보와 보수라는 양 줄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두 신문간의 논쟁이라는 측면에서 나아가 매카시적 대북관과 극우 보수주의적 사회관을 유감없이 보여온 조선에 대한 통일 지향적 언론의 공개적인 문제제기라는 차원에서 상당한 의미를 던져주었다. 이들 두 매체간의 논쟁을 살펴보는 것으로 일부 극우 언론매체의 위험수위에 다다른 파상적인 이데올로기 공세의 맥을 잡아보자. 조선이 월간조선을 통해 한겨레를 ‘북한동포의 인권을 외면하는 신문’으로 매도하면서 문제를 삼은 것은 지난 5월말게 한겨레와 한겨레 21이 공동으로 취재, 보도한 ‘북한 벌목공’에 관한 현지 르포 기사였다. 월간조선은 한겨레의 벌목공 보도가 소위 진보그룹의 위험수위에 다다른 대북관은 적나라하게 대변한 것이었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벌목장 내 범죄자들에게 채우는 족쇄가 수갑을 대신한 것이라는 한겨레의 주장은 남파간첩에 대한 고문까지도 반대하는 한겨레의 높은 인권의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비아냥에서부터 “북한이 남한의 인권을 거론하면 이에 즉각 화답하면서 왜 우리정부가 북한의 인권을 거론하면 반통일적이고 통일의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지 모르겠다”는 원색적인 문제제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공격은 집요했다. 물론 조선 특유의 협박성 충고도 뒤따른다. “또다시 북한의 특수성 운운하면서 북한인권의 본질을 흩트려 놓으면 역사는 그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라는 강도 높은 어투로. 이러한 조선의 논리전개는 스스로가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아두고서 이뤄지는 것이며 그들 스스로가 단죄의 주인공인 ‘역사’를 자처하면서 행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올 봄부터 월간조선이 공들여 쌓아온 ‘벌목공탑’안 한겨레가 현지취재를 통해 허물어뜨리려고 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을 평화적인 조국의 통일을 함께 이뤄나가야 할 파트너로 인식하기보다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극악 부도한 집단으로 몰아감으로써 무엇인가 이득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조선은 그 ‘무엇’을 결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법은 없지만 결국 그 기저엔 “흡수통일”이 깔려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자신만이 언제나 옳다는 독단적인 잣대로 자신의 입장에 비판적인 진보그룹에 대해선 싸잡아 비난하길 서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만큼 조선의 이 같은 노골적인 시비에 대해 한겨레의 반박은 단지 진보적인 언론의 항변이라기보다는 극우적 이데올로기의 전파자임을 자임하고 있는 반통일적인 언론매체에 대한 공개적인 경고장과 다름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7일자 한겨레21은 “조선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진단하고 조선의 보도논리와 기사내용을 해부하는 기획특집을 커버스토리로 올려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한겨레21은 이 특집에서 “조선은 북한에 대해 조금도 화해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입장으로 시종일관하면서 핵문제, 정상회담 등 정치적 현안문제에 대한 극단적인 논지를 펴고 있다”고 비판하고 “특히 조선의 이데올로기 공세의 돌격대를 자임하고 있는 월간 조선은 전쟁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위험천만한 보도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공격했다. 강준만 교수도 이 특집에 기고한 글을 통해 “조선은 혼자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늘 한판 붙자는 식의 화끈한 메시지만 전달하고 있다”면서 “이는 너죽고 나죽자 식의 10대 불량배의 화끈함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강교수는 조선의 이 같은 보도태도를 메카시즘과 견주어 가며 비판하면서 조선을 ‘상업적 극우 반동매체’라고 규정했다. 즉 국가안보를 담보로 신문을 한부라도 더 팔아먹기 위해서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는데 혈안이 돼있다는 것이다. 이 지상논쟁이 던져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최근 한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노동쟁의, 급변하는 남북정세 속에서도 이들 우익매체들의 파상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는 수그러들지를 모르며 오히려 더욱 노골화 되는 경향마저 모이고 있다. 조선을 선봉장격으로 하여 퍼부어지고 있는 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또 하나의 민감한 정치현안인 노동쟁의 관련 보도에서도 이미 확인되고 있으며, 이는 지난달 23일 시작된 철도와 지하철 파업에 대한 보도에서 극명하게 표출됐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이날의 파업이 근무시간이 끝난 뒤 농성 중이던 전기협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제연행 하면서 유발됐다는 지적을 뒷전에 미룬 채 마치 철도노동자들이 갑자기 일으켜 일어난 것처럼 보도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시민들을 볼모로 잡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국민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조차 왜곡해서 전달하는 언론의 공격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곧이어 터져 나온 “국가대동맥을 마비시켜 국민경제를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경제볼모론을 거쳐 “이번 파업이 해방 직후에 활동한 좌익계열 노동자 조직인 전평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전노대에 의해 사주되고 있다”는 이데올로기 공세로 이어졌다. 민감한 정치현안들을 잠재우는데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돼온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매도가 문민을 자처하는 시대에서도 언론들의 ‘충직한’활약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어느 해의 노동쟁의 보도에선 보기 힘들었던 언론의 고압적인 훈계가 눈길을 끈다. “국민 무서운 것 보이자”(서울 6.25) “시민의 힘으로 이번엔 바로잡자”(중앙 6.25), “불편 참아 버릇 고치자”(조선 6.25) 결과적으로 이번 철도파업에 대한 보도는 대다수 보수언론이 노사문제에 대한 법과 형평의 문제를 넘어서서 권력과 자본의 입장에 서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준 것이었다. 철도파업 보도가 언론이 자본의 편에 서서 필봉을 휘두르며 자본주의체제 사수를 지상 명령으로 삼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작금의 김일성주석 사망에 대한 보도는 그들이 반통일적 수구세력과 얼마나 철저하게 결탁돼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가시화되면서 언론들은 이전까지 보여 왔던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대한 진단들은 오간데 없고 정상회담의 역사성을 나름대로 짚느라 허둥댔다. 그러던 차에 터진 김주석 사망소식은 다시 한번 언론에게 목청을 가다듬을 기회를 줬고 그 목소리는 정상회담 성사 이전의 상태로 재빨리 회귀하는 움직임 속에서 터져 나왔다. “왜 김주석인가?”(조선 7.11)로 시작된 호칭시비는 야당의원들이 정부의 조문여부를 묻는 발언이 나오자 “정신 빠진 소리를 하고 있으니 유권자들이 심판하자”(조선 7.13) “김일성 조문가라고”(경향 7.13) “비상경계령까지 탓하다니”(세계 7.13) 등으로 이어졌다. 보수언론들의 호칭시비나 조문시비는 우리 언론이 갖고 있는 대북관의 졸렬함과 이념적 편협성을 여지없이 드러내준 것이었다. 김주석 사망 직후인 지난 9일 조선이 보여준 보도태도는 그간 조선의 북한관련보도의 ‘정점’이라고 할 만하다. 사회면 머리기사 제목을 ‘김일성 죽었다 시민들 환호’라고 뽑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기사내용에 들어 있는 시민들의 반응은 주로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못해 안타깝다”거나 “혼란보다는 통일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반응이 주조를 이뤘다. 조선의 환성인지 시민의 환성인지 의아할 뿐이다. 조선은 초판 신문에 내보냈던 이 제목을 결국 다음 판부터는 “김일성 죽었다 - 흥분, 불안”으로 바꿔 스스로가 문제 있는 보도였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보수 우익매체들의 노골적인 이데올로기 공세가 남과 북의 대치상태를 유지하려는 특정세력과 야합함으로써 ‘일정한 이익’을 챙기려는 언론사주와 일부 언론인들의 능동적이고 교활한 계산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같은 보수언론의 뒷받침에 힘입어 정부는 이제까지의 실정 - 우루과이라운드에서의 부실한 협상, 개혁총리 이회창씨의 중도퇴진, 식수파동 등 - 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역대 군사정권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공안정국’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노동관련 보도에서 ‘불순세력의 개입’을 의도적으로 개입시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대북관련 보도에서 극우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우리 언론, 문민을 자처하는 시대에도 ‘정권이 일을 저질러 놓으면 언론이 수습해준다’는 구태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