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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8 | [문화와사람]
명창 이 일 주 (5) 슬픔과 너그러움, 깊은 그늘의 구성 있는 목
최동현․군산대교수․판소리 연구가 (2004-02-03 10:44:58)
이일주의 판소리를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드는 것은 그의 목구성이다. 목구성이란 목소리의 예술적 향취를 말한다. 판소리는 성악의 일종이기 때문에 표현매체가 되는 목소리의 질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래서 판소리 창자들은 판소리에서 요구하는 좋은 목소리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살을 깎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백일 공부를 한다든가, 폭포수 밑에서 발성 연습을 한다든가하는 노력들이 모두 좋은 목을 얻기 위한 노력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좋은 목을 얻는 것을 득음(得音)이라고 하거니와, 득음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일찍이 신재효의「광대가」에서도 4대법례(法例)의 하나로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어떤 소리가 좋은 소리인가?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목소리는 크게 수리성과 천구성으로 나눈다. 수리성은 좀 더 탁하고 거친 소리를 말하고, 천구성은 보다 맑고 깨끗한 소리를 말한다. 그러나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소리는 기본적으로 목 쉰 소리, 곧 거칠고 탁한 소리이기 때문에 이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판소리가 기본적으로 목 쉰 소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성악과는 확연히 다른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소리가 기본적으로 거칠고 탁한 소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잇다는 점에서 보면, 판소리는 썩고 병든 소리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썩고 병들었다는 말은 사실은 적합지 않다. 판소리에서 요구하는 것은 썩고 병든 것이 아니라, 썩고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로 인한 독소가 전혀 없는 상태, 곧「발효」와 같은 것이다. 그러한 소리를 판소리에서는「곰삭은 소리」, 곧 충분히 삭은 소리라고 한다. 곰삭은 소리에는 슬픔이 깃들게 된다. 그러나 그 슬픔은 인간을 캄캄한 절망으로 이끌어가는 슬픔도 아니요, 나를 슬프게 만든 상대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그런 분노는 더욱 아니다. 슬픔이면서도 그런 슬픔을 야기한 대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다 가셔진, 그래서 그러한 상대마저도 이제는 용서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껴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이 깃든 슬픔이다. 이러한 슬픔이 배인 소리를 판소리에서는「애원성」이라고 하여,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임방울의「쑥대머리」는 바로 이 애원성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소리에는ꡐ그늘ꡑ이 깃들게 된다.『한과 판소리』에서 이ꡐ그늘ꡑ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ꡐ판소리의 용어에 또ꡐ그늘ꡑ이라는 말이 있다. 시김새가 차원 높게 성취된 경지에서만 기대될 수 있는 바, 그 소리의 바탕에 거느리는 추웅하면서도 웅숭깊은 여유, 혹은 심오한 멋같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씨가 땅에 떨어져 비와 바람을 견디며 끊임없이 자라는 과정을 시김새를 획득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면, 거목으로 자란 나무가 울창한 가지를 드리우며 온갖 새들을 그 품 안에 싸안은 너그러운 운치를 그늘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ꡑ」 그늘을 이렇게 설명하고 보면, 이는 미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윤리적 개념으로 전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예술관, 나아가서는 동양의 예술관이 미학과 윤리를 끊임없이 동일시하는 가운데 형성되었음을 인정한다면, 별로 이상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일주의 목구성이 좋다고 하는 것은, 이일주의 목소리에서 거친 맛과 부드러운 맛, 슬픔과 너그러움, 그리고 깊은 그늘을 느낀다는 말이다. 이일주의 것보다도 더 고운 목소리는 얼마든지 있다. 이일주의 것보다도 더 애원한 목소리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일주의 목보다도 구성 있는 목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일주의 선생이면서 이일주보다도 더 곱고 단단한 목을 지닌 오정숙이 늘 이일주의 목을 탐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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