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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9 | [문화저널]
구슬픈 새소리, 눈을 감아도 떠나지 않습니다.
글/박남준 시인 편집위원 (2004-02-03 10:51:26)
집 뒷곁에는 올 봄에 씨를 뿌려둔 손바닥만한 파밭이 한 두럭 있습니다. 그동안 날이 가물어서 싹도 제대로 트지 않고 그나마 싹이 올라온 것들도 실처럼 비비 꼬이듯 했는데, 엊그제 비도 좀 오고해서 풀이나마 뽑아주려고 어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곳에 갔습니다. 생각했던 대로 개망초대며 덩굴딸기 등, 수북이 우거진 풀들을 뽑아주며 파밭으로 뻗어온 칡덩굴이며 찔레 덩굴들을 걷어내 주는데 갑자기 그 덩굴위로 작은 새둥지가 딸려 나오는 것입니다. 어미새는 나의 인기척에 놀라 이미 어디로 날아갔는지 아니면 알을 품다가 어디 먹이를 구하러 잡시 둥지를 비운 것인지 보이지 않고 파아란 비취빛깔의 조그만 새알 두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어여쁜 것, 나는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누가 볼세라 그 새둥지가 틀어 있는 넝쿨을 풀 더미 속으로 다시 밀어두며 집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들은 누가 조금이라도 둥지를 건드리면 이내 알아차리며 알을 품지 않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궁금함을 풀기위하여 섣불리 가볼 수도 없어서 아 내가 참 몹쓸 짓을 했구나. 만약 어미새가 다시 돌아와 알을 품어서 새끼들이 깨어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 비취빛 작은 새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 문득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잠자리마저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마음을 먹고 새둥지가 있는 파밭으로 조심스레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제발 제발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하였던 바람은 무너지고 새둥지 안에는 벌써 어떤 짐승이 새알 하나를 훔쳐간 모양입니다. 아! 새,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바람을 타고 자유로울 새 두 마리가 알에서 깨어나지도 못하다니, 지상을 차오르며 힘찬 날개짓을 퍼덕여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다니… 이제 나는 세상의 곳곳에서 새들을 만나면 문득 문득 이 가슴 아픈 기억이 떠오를 것입니다. 잊혀지지 않는 한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것입니다. 날이 저물고 그 저문 하늘의 노을 뒤편으로 새 한 마리 쓸쓸히 날아갑니다. 그대의 창가에도 땅거미 내려앉으며 노래하던 새들 저마다의 둥지를 찾아 떠나가겠지요. 그곳에는 혹여 둥지를 잃고 갈 곳 없이 떠도는 새, 보이지 않겠지요. 오늘 밤엔 구슬픈 새소리, 호랑지빠귀 소리가 눈을 감아도 밤새 떠나지 않습니다.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이만 줄입니다.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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