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9 | [문화시평]
구체적인 언어, 당대의 연극성 탐색이 필요하다
-동학 백주년을 기념하는 연극한마당 좌담-
글/김정수 연극인 편집위원
(2004-02-03 10:54:31)
지난 7월13일 시내 어느 음식점에서는 조금 색다른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모임을 소개하는 명칭도 제법 긴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을 기념하는 연극한마당을 마무리하기 위한 좌담회]인데, 색다르다는 것이 명칭이나 참석자들에 있는 것이 분명 아니었다. 연극한마당을 치러내는데 실무적인 기획일로 헌신했던 창작극회가 주도한 이 좌담회가 그렇게 비춰졌던 것은 빈번해진 공연에 비해 그 내용이나 성과를 점검하고 비평하는 토론의 장이 드문 풍조를 배경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전북연극이 재도약의 계기를 맞은 80년대 중반부터 근 10년간 이 지역 연극은 양적, 질적 향상을 위해 총력을 다해왔고 그 가시적 성과들이 여러 측면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예술적 작업에 필수불가결한 자기 확인이나 비판적 기능은 상대적으로 없었거나 미미했다. 그것이 연극 관계자들의 서로 도와주기식 때문이었든 충실한 비평 인력의 부재 때문이었든지 간에 연극인들을 위해서도 관객들을 위해서도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위해환경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입장이 바뀐 듯한 모습이지만 공연 주체가 주제한 이 좌담이 달리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좌담회의 참석자는 모두 여섯으로 사회자(필자)를 제외하면 공연학을 전공한 전북대 김연호 교수, 전북노문연 의장으로 활발한 문예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원호씨, 전북일보 문화부 김은정 기자, 연극한마당 총기획이었던 극단 불꽃의 권영술 대표, 그리고 주최 측인 극단 창작극회 곽병창 대표였다.
좌담은 항쟁 백주년 기념사업으로서의 의의와 연극사적 의의를 정리해보는 것을 시작으로 참가 작품의 개별적 비평을 거쳐 민족극 문제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서너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열띠고 진지한 의견 개진이 있어 자리를 옮겨 대화를 계속해야 할 정도였다.
먼저 연극한마당에 관한 평들은 대체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의견이 많았다. 그저 동일 소재의 단순한 모음 정도라면 행사 자체의 의미마저 없지 않았나라는 생각부터, 항쟁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고 공감대를 넓히려는 뜻에서 기획된 행사치고는 동원된 관객이 너무 형편없이 적었다는 기획적 측면의 지적까지 있었다. 또한 대체적으로 전체 참가작품들이 단선적인 리얼리즘에 집착하지 않고 복합적인 이중구조를 갖고 있는 점은 눈에 띄는 부분이었지만 역사를 연극으로 형상화 했을 때 오히려 소재 이상의 예술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기대에는 못 미쳤으며 지나친 장면 위주의 진행과 유형화된 인물들로 일관됨으로써 새로운 인물상을 창조해내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았다. 더불어 동학 역시 친근한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고 또 그런 점에서 긍정적으로 기능해야 할 연극공연이 오히려 인식론적 차원에 머물러 방만한 역사성을 나열하고 있다는 점에 대체로 공감했다.
물론 개개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달랐다. 한 작품이 갖고 있는 역사성과 그 역사의 재현, 오늘의 현실과의 부합 측면에서 [북실 진달래]와 [우리 동네 갑오년]의 시도를 인정하면서 민족극 한마당류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객들과의 제대로 된 열린 마당을 기대했는데 그래도 가장 근접한 공감을 준 것이 [우리 동네 갑오년]이라는 참석자도 있었다.
다른 차원에서 관객들에게 하나의 영감, 혹은 감동적 인상으로 남았던 작품으로 거세 장면이 있는 [궁궁 을을]과 환청을 형상화한 [녹두,녹두,]를 꼽았다. 그러나 [궁궁을을]에서 나타나는 거세 장면이 거세당하는 사람보다 거세를 시키는 사람들의 뼈아픈 한과 아픔을 잘 드러내 주고 있기는 하지만 동기의 심화에 이르지 못하고 단순한 소재로 소멸해버렸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는 반면에 [녹두녹두]는 애초에 던졌던 환청이라는 동기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어 환청이 육체성을 지닌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동백사 사무실 장면의 지나친 강조 등을 통해 그 환청을 자꾸 역사적 현실로 바꾸어 놓으려는 강박이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한편 80년대와 90년대 관객의 차이점과 변화에 따른 적응력의 부재도 지적되었다. 곧, [궁궁 을을]이나 [하늬]등의 작품에서 관객들에게 강요하려 하고 의무감을 주입하려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아서 갑갑했다는 이야기다. 80년대의 시대상황은 관객들의 동조와 의무감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여겨졌고 그만큼 작품은 주제만 좋으면 다른 면에서는 너그러운 이해를 받을 수 있었기에 완성도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지만 90년대의 관객들에게 더 이상 그러한 관용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민족극에 관해서는 집중적인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 개념을 명쾌히 하기에는 이르다는 결론이었다. 전통 연희가 현대연극과 단절되어 잇는 상황에서 그 모자라는 부분을 전통문예로부터 수혈 받고, 극의 미학적 원리를 전통 탈춤으로부터 찾아내겠다는 의지의 산물인 민족극이 아직 현 단계에서 보편화된 개념이나 장르는 아닐 것이라는 진단이다. 기존의 서구 이식 연극과 이념적 차별성에 중점을 두고 출발했지만 그 미학 예술적 활로에서 제대로 된 패러다임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며, 제대로 이론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민족극 이론가들과 실천 당사자들의 진지한 고민이 계속될 것으로 보았다.
또한 기존 관념을 과감히 거부할 새로운 연극 미학의 탄생이 기대되는 시점이라 판단했다. 즉 연극이 갖는 장르적 특수성을 십분 활용하는 미학의 대두가 민족극의 완성을 위해서도 긍정적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소설적 이야기 구조에 연극적 장치를 갖다대는 연극을 탈피하여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옷입히기로 우리 언어가 갖는 감성촉발적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기대이다.
연극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결국 세계적인 흐름이고, 역사 그 자체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그 무엇의 창조가 연극이라고 봤을 때, 전통 연희를 계승하는 일에 앞장섰던 민족극 운동의 1세대들이 구비문학적 특성에 주목하여 접근함으로써 민족극 전체가 주제 혹은 줄거리 위주로 흘러왔다면 이젠 구체적인 춤의 형상과 공연장의 여러 가지 현장적 특성들에 주목하면서 당대의 연극성을 탐색하면서 미래의 연극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이 좌담은 결론지었다.
앞서 강조했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만남처럼 진행된 이 좌담은 전북예술에 있어 가장 비평적 기능이 약해 보였던 연극계에 신선한 바람처럼 느껴졌다. 앞을 향해 달려오기만 했던 전북연극이 이제 자신의 위상을 점검하고 미래의 연극상을 제시해야할 시점에 마련된 이 좌담을 계기로 보다 많은 비평의 자리가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술행위는 이제 독보적인 한 예술가의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을 향유하는 그 시대 사람들과의 교감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