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9 | [문화저널]
정직한 글, 자신과 생활을 아낀다
글 / 이재현 어린이 글쓰기 지도교사
(2004-02-03 11:03:09)
아이들은 말하기를 좋아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뭔가 자기가 본 일, 들은 일, 생각한 일을 한꺼번에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부터 현실에 대한 불만, 무슨 일인가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를 대기도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듯 글도 그렇게 쓴다. 자기 자신을 들어내 보이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어른들이 어린이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이해해 주기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본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쉽고 재미있는 일인지 깨닫게 하는 것은 꼭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그동안 만들어진 글,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자신의 삶을 글로 담아 낼 수 있는 교육보다는 자기가 직접 느끼지 않은 것을 쓰라고 강요하는 교육이 더 많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아이들은 쓰고 싶지 않은 것을 쓰라고 하면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거짓으로 만들어서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이 쓰고 싶은 것 곧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쓰게 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깨끗해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과 생활에 대해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용기와 자신감을 얻는다.
만들어진 글과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글을 견주어 보면 누구나 금세 그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 보기글 1
나의 하루(5학년 여)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매우 상쾌하다. ꡐ오늘도 보람찬 하루가 시작되는구나ꡑ하고 생각한다. 학교준비를 끝내고 아침식탁에 앉으면 항상 즐겁다. 어머니가 정성들여서 만들어 주시는 음식을 우리는 맛있게 먹는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와서 배움의 교실, 학교로 힘차게 걸어간다. 학교에 도착하면 우리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열심히 공부한다. 언제나 우리들을 위해 노력하시는 고마우신 선생님. 공부는 나의 마음을 살찌워 준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으로 간다. 나는 피아노학원, 서예학원, 영어학원을 다닌다. 학원은 학교에서 다 못 배우는 것을 배우는 곳이고 서예학원은 재미있다. 피아노는 손가락이 아프지만 어머니가 참고 끝까지 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열심히 친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면 바쁘다. 저녁을 먹고 숙제하고 문제집 풀면 밤 10시가 넘는다. 어떤 날은 12시가 넘어서 일기를 쓸 때도 있다. 일기를 쓰고 나면 포근한 침대에서 꿈나라로 간다. 오늘도 무사히 보람 있는 날이었다. (1994년 5월10일)
● 보기글 2
눈떠서부터 학교까지(1학년 여)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더 자고 싶다. 화장실에 세수하러 갈 때 눈을 감고 간다. 그래서 부딪칠 때도 있다. 밥을 먹기도 싫다. 옷을 입을 때는 잠이 와서 침대에 앉았다 누웠다하며 옷을 입는다. 학교에도 가기 싫고 잠만 잤으면 좋겠다.
책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간다. 학교에 가는 길에 문방구도 보인다.
오늘도 교통질서는 하고 조금 더 가면 오늘도 주변은 2명, 3명들이 서 있다. 주변이 헛짓하는 틈을 타서 나는 앞질러 간다. 교문까지 오면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나도 놀고 싶다.
교실까지 오면 오늘도 자습은 무척 많다. 자습 좀 많이 안내주었으면 좋겠다.(1993년9월20일)
● 보기글 3
눈떠서부터 학교까지(5학년 남)
나는 매일 6시 30분에 일어난다. 매일 화장실에 가면서 존다. 그 대마다 엄마가 분무기로 얼굴을 향해 뿌린다.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면 얼굴이 꼭 괴물 같다. 화장실에서 나와 옷을 입는다. 옷을 입고 이불을 갤 때 ꡐ일불 개는 기계는 없나?ꡑ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오늘도 엄마의 잔소리 ꡒ밥 먹어라ꡓ라는 소리가 난다. 짜증을 내며 밥을 안 먹고 책가방을 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경비실 아저씨에게 꼭 인사를 한다.
오늘은 교통주번이 없어서 일찍 갔다. 교문 쪽을 보니 주번이 있다.
오늘도 한 줄로 가라고 한다. 그 때마다 ꡐ없어져라 주번, 이얏!ꡑ하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오늘도 그 지겨운 공부방 우리 반이 보인다(1993년 9월 20일)
보기글1은 잘 쓰려고 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어떤 일을 겪을 때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나타내지 못하고 어른들이 늘 아이들에게 하는 말처럼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좋게만 쓰려고 한 글이다.
보기글 2와 보기글3은 하루 가운데 아침시간에 일어나는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썼다. 그냥 말하듯이 느낀 그대로 쓴 글이다. 물론 이 글을 쓴 두 어린이도 아침에 왜 일찍 일어나야 하는지, 왜 아침자습을 하는지, 교통주번이나 주번이 왜 있어야 하는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겪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낸 것이다.
어린이 글은 그 아이가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교육적 환경에 따라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린이들이 정직하게 글을 쓸 수 잇게 하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의 글을 획일적인 기준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 글속에 나타나 잇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어린이는 정직한 글을 쓰면서 자신과 주변 생활에 대해 좀더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작은 일에도 애정을 가진다. 그래서 살아있는 감성(느낌)을 되찾고 바른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이는 원래부터 깨끗하고 바른 마음을 가지지 않았던가. 소심하고 삐뚤어졌다고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가슴 속에 갇혀 있는 마음을 되찾아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린이 글을 자꾸만 멋있고 완벽한 글로서 요구할 때 아이들은 자신감을 잃게 되고 어른의 입맛에 맞는 글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꾸며서, 만들어서 쓰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