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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9 | [문화저널]
백년 세월을 넘어 꺼지지 않는 영원한 봉화로 동학 백주년 기념전 『새야 새야 파랑새야』출품작「전야」
글/이기홍 화가 (2004-02-03 11:05:00)
최근 몇 해 전부터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자랑스러운 엄청난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100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들의 분노, 함성, 절규가 나의 발목을 광활한 저 들판에 붙들어 매었고, 그 붉은 황토땅을 밟고 섰을 때는 예전에 찾았던 평화로운 들녘이 아니었다. 압박과 착취를 일삼았던 지배 권력과 외세에 대항해 저 너른 들판을 헤집고 다니면서 처절한 투쟁을 해왔던 우리 선조들의 애환서린 역사의 현장이었다. 아시아 최초의 민중봉기이며 격동기 사회변혁운동의 모태가 되어왔던 동학농민혁명. 부패할대로 부패한 조선 말기 탐관오리들의 가중되는 수탈로 농민들의 인내엔 한계가 왔고 수백 년 동안 얽매여 왔던 쇠사슬을 끊고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그들은 드디어 분노의 횃불을 들게 되고 툭 터진 홍수처럼 전국 방방곡곡을 휩쓸게 된다. 그들은 더 이상 무지가 아니다. 적어도 뭐가 옳고 그른가를 무엇을 막아야하고 무엇을 몰아내야 하는가를 오백년 이조 봉건사회 속에서 가슴깊이 느껴왔던 것이다. 백산 이 조그마한 언덕배기에 피어올랐던 황톳불은 온갖 시련을 겪어왔던 광활한 저 대지를 꿈틀거리게 만들었고 이 나라 전 들판의 지각 변동을 알리는 서막이었을 것이다. 이 분노의 빛이요 광명의 빛은 100년이 지나 아직도 제대로의 위치에 서있지 못한 채 존폐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 모두의 모태인 농촌의 대지위에 지금도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들의 피와 살이 베인 이 광활 대지, 한 많은 땅을 밝혀주는 영원한 봉화로 타오를 것이다. 나는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그 진원지였던 역사의 현장위에서 있는 사람으로서, 당대의 진실한 삶을 담아내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삶의 고통과 처절했던 투쟁, 그들의 희망이 무엇이었고 왜 좌절될 수밖에 없었던가를 가슴 깊이 새기면서 감히 화폭에 옮겨 봤다. 어찌 감히 이들의 시련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낼 수 있는가.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자랑스런 역사적 사건, 항상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왔던 진실들을 이 시대 모든 사람과 우리 후손들에게 알리고 그들의 진실한 삶을 반영하여 부족하나마 끊임없이 형상화시켜 낸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한 예술인으로서 당연한 책무인 것이다. 동학농민혁명뿐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 역사는 지배 권력과 외세에 대한 처절한 투쟁을 해온 시련과 아픔을 겪어온 질곡의 역사였다. 이제 우리 미술인은 적어도 역사적 모티브를 수용함에 있어 낡은 사진 한 장이나 피상적 이해속에서의 표현으로 역사성을 확보하려고 안일하고 맹목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추상적 역사표현이 아닌 보다 첨예한 역사관과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더 구체적이 그 시대 삶의 고통, 투쟁, 희망, 좌절들을 우리의 남다른 상상력으로 담보해 내야만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조그만 일익을 담당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바른 역사관을 바탕으로 현재를 직시함으로써 현란한 외세문화에 흔들리지 않고 탄탄하고도 주체적인 우리 미술문화풍토가 조성될 것이다. 다시 한번 한 많은 이 나라 전 들녘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선인들을 생각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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