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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9 | [저널초점]
참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안을 수 있는「우리」가 필요하다
윤덕향/발행인 (2004-02-03 11:06:10)
끝없이 이어질 듯 기세등등하던 더위도 입추, 말복을 지나 처서에 접어들며 그 위세가 적잖게 꺾여버렸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덥고도 더운 날들이었다. 그리고 그 더위와 더불어 있었던 가뭄은 차라리 태풍을 기다리기조차 하였다.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 바닥이며 농부의 마음처럼 바싹 타들어간 밭작물을 보며 그저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50년대, 60년대의 농부들처럼. 때를 맞추어 정부에서 보여준 가뭄 극복을 위한 노력은 정녕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최고위 지도자까지 나서고 여도 없고 야도 없이 이루어졌던 가뭄극복을 위한 노력은 가히 전 세계 농민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이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야 각종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소식 하나 하나에 목이 메이고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벼 한포기를 살리기 위하여 숱한 사람들이 나서고 포크레인으로 말라버린 개천과 저수지 바닥을 파헤치고도 모자라 소방차가 동원되고 급기야는 헬리콥터까지 등장하여 가히 이 나라가 농자천하지대본의 땅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감이라면 물동이를 나르는 분들의 옷깃이 말짱하다는 것이었지만 그 정도야 고마운 마음에 묻어두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모처럼 TV에 나온다니 물에 흠뻑 젖을 옷을 촬영 전에 갈아입었을 것이니 말이다. 도시에서, 특히 고지대 주민들이 겪었던 물 부족이야 우선 타들어가는 농작물이 우선이니 새삼 불평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처럼 벼 한 포기가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판에 타들어가는 자식에게 물 한 모금을 주는 일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이런 저런 미담과 농민을 위하는 조치들을 보며 이제 참으로 이 땅 농민들은 살판이 난 것만 같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기후 상 가뭄을 겪지 않을 방법이 없는 나라가 아님은 분명한 일이다. 또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며 가뭄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익히 잘 알 수가 있는 일이다. 식량자급을 외쳐대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처하여 발표된 그 많은 농업진흥책에는 가뭄에 대비한 수리대책을 없었는지 모를 일이다. 바닥을 드러낸 다음에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저수지 바닥을 파헤쳐야할 일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동원된 포크레인이 있는 것을 보면 미리 저수지 바닥을 팔 장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가뭄이 비단 금년에만 몇 십 년 만에 한번 찾아온 일도 아니고 보면 미리 대책을 세울 수도 있었지 않았겠는가? 하물며 복지농촌을 주창하는 현금의 정부에는 농업진흥을 위한 막대한 자금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굳이 높으신 분들께서 논에 나가 물통을 나를 필요가 없다. 홍보효과로는 어떨지 모르는 일이나 물동이를 들고 있거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언론 보도와 같은 것은 문제의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긴 그런 모습이 진정 농민을 위하는 척 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니 한두 번쯤 연출할 필요도 없지는 않겠지만, 진정 필요한 것은 가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여 농업용수만이 아니라 고지대 서민의 급수를 제한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다.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자칫 이번 일로 그처럼 힘들여 농사를 짓느니 차라리 수입해서 먹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말이 나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런저런 빌미로 소위 신공안정국이란 말이 나도는 판이니 말이다. 그리고 왜 그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웬만한 눈치라면 알아챌 법하니 말이다. 근본적으로 이 정부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하신 말마따나 아무래도 새벽에 있는가 보다.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시리 안개 자욱한 새벽의 한 가운데, 그 새벽의 어스름 속에 잠들어 있는 이 현실 아래서 한낮의 밝음을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주문이겠다. 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금년도 이럭저럭 내년으로 넘어갈 판이다. 그리고 내년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강탈되었던 국권이 회복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맞아 문민정부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한반도 통치의 상징적인 잔재인 중앙청 건물을 철거하는 작업에 들어섰다고 한다. 그로 하여 내년이면 일본 제국주의의 찌꺼기들이 말끔하게 청산된 경복궁을 볼 수 있을 법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반일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시대에 뒤진 배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당장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선출되기로 약속된 내년을 코앞에 두고 우리 지역의 문제를 다잡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굳이 거창한 정치, 그것도 중앙에서 이루어지는 정치판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주변의 하찮은 잡사가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멋과 맛을 자랑하는 우리 지역이 과연 말 그대로 멋과 맛이 있는 고향인지 더듬어 생각 할 일이다. 그리고 사라진 멋과 맛을 우리 외적인 곳에서만 이유를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바로우리 자신으로부터 그 이유를 찾으려 해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말로서만 끝나는 우리가 아니라 참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하고 그리운 것이다. 참으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뿌리를 굳게 디디고 선 우리를 통하여 우리자신을 살찌울 수 있는 것이다. 이번호를 끝으로 발행인으로서의 역할이 마감된다. [저널이 본다]를 통해 독자여러분과의 만남도 따라서 이번호로 접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간은 비관적, 부정적이고 얼마간은 치우친 시각으로 우리 주변을 살펴보려 하였다. 그러나 타고난 어리석음과 무딘 글로 여러분들에게 드린 짜증이 도를 넘지 않았는지 매양 불안하기만 하였다. 이제 그런 불안을 떨쳐내며 편안한 마음으로 문화저널에 대한 사랑을 부탁드리고 싶다. 아니 보다 새로워질 문화저널에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을 당당하게 부탁드리고 싶다. 왜냐하면 문화저널은 바로 여러분들이 만드는 것이고 여러분들 속에서 자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 동안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관심과 격려에 짧은 지면을 빌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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