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과 갑오경장 이후 두 번째 갑오년이다. 기울어가던 조선의 전통질서를 무너뜨린 갑오동학농민혁명과 그것을 기반으로 근대의 문을 연 갑오경장은 우리의 뇌리에 갑오년을 변화의 해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120년 전 갑오년과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의식주부터 사람들의 의식까지, 나라의 위상부터 국제질서까지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 같은 것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언제나 매 시기 다시 생성되는 ‘변화의 요구’다. 환경과 배경은 변했더라도, 주체와 조직은 달라졌더라도 1894년의 선조들과 2014년의 우리는 똑같이 변화를 바라고 있다.
<문화저널>은 갑오년 2주갑을 맞아 정체된 지역문화의 변화를 가져올 다양한 의견들을 그 모아 연중기획으로 풀어본다. 갑오년의 선조들은 뜻을 함께할 이들을 모으기 위해 사발통문을 돌렸다. <문화저널>은 매월 한 가지씩 주제를 선정해 진지한 고찰과 비판부터,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전북 문화를 바꾸고 가꿀 다양한 기획들을 받는다. 계층과 분야를 막론하고 의견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2014년의 사발통문이다.
첫 번째 연재인 3월호에는 ‘내가 그리는 시민문화도시’라는 주제로 시민들의 더 나은, 더 많은 문화 향유를 위한 제안들을 받았다. 문화향유의 개념은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공연‧전시 관람을 비롯해 동호회활동을 통해 함께 나누기도 하고, 교육을 통해 스스로가 창작자로 나서기도 한다. 결국 모든 문화생산과 문화정책은 시민들이 더 나은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각자의 일상에서, 또는 자신이 대변하는 계층이나 분야에서 제도나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거나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픈 아이디어들이 모였다. 때론 원론적이고, 때론 모호할지라도 이렇게 모은 생각들과 이로부터 퍼져나갈 관심이 전북문화의 내일을 만들어 갈 것이다.
함께 즐기기 위한 작은 변화 <김병용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들에게 문화향유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문화향유라고 할 수 있는 영화관람만해도 그렇습니다. 물론 예전에 비해 상영관 편의시설들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설치가 안 된 극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를 보게 되더라도 대개는 스크린 바로 앞이나 맨 뒷좌석에서 봐야하는 게 현실입니다. 비장애인들은 음료와 먹을거리를 즐기며 영화를 즐깁니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들은 관람 중 용변처리가 걱정되어 물과 음식섭취에도 신경 쓴다는 사실은 모르실겁니다. 무리한 요구를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저 작은 변화를 바랍니다. 상영관마다 휠체어석 위치와 장애인화장실, 엘리베이터 설치유무 및 위치 등을 미리 안내리플릿이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장 민간시설인 영화관의 변화를 바랄 수 없다면, 공적으로 치러지는 축제에서부터 바꿔나갈 수는 없을까요? 전주의 대표적인 축제인 전주국제영화제만해도 개·폐막식이나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수화통역사가 배치되지 않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공공기관 등의 행사에서는 수화통역사 등을 의무적으로 배치해야함에도 말입니다. 극장과 영화제에서 장애인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영화에 관심이 없기 때문 만일까요.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고, 향유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함께 즐기는 문화를 위해서 말입니다.
마을에서 창작하고 마을에서 향유하는 ‘동네작가’ <김준우 공공미술활동가>
미술이란 분야에서 향유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전시 관람이 있고, 작품을 소장할 수도 있고, 직접 배워 창작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지역 내에는 여러 전시관이 있고, 미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도 많습니다. 누구든 쉽게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최근에는 매체의 발달과 이미지의 홍수로 클릭 한번이면 집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에서 지역의 젊은 작가들은 배제돼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역의 창작자들이 더 이상 재생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앞날을 생각하지 않는 소비로 그치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동네 작가’입니다. ‘동네 작가’란 지역과 커뮤니티 기반을 가지고 창작활동에 임하는 작가입니다. 예를 들자면 마을미술협동조합과 같은 형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는 마을 공동체에 거주하면서 마을의 미적인 환경개선부터 조건별 오픈스튜디오, 마을 미술관, 미술 교육 등을 통해 공동체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동네 작가를 후원하고 지원해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마을이 키운 작가가 되는 셈입니다. 작가와 주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미술 향유의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동호회를 위한 공연장이 없다 <오성균 아카펠라 동호인>
2006년부터 전주지역에서 아카펠라 동호회 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2008년에는 자그마한 자체 연습실도 마련하고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온 결과 현재는 전북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실력과 열정을 알아주는 모임으로 발전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서 동호회를 활동을 펼치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습니다. 공연을 한번 하려 해도 그렇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음향장비나 조명, 냉난방을 한꺼번에 제공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상설 공연장들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지역에는 적지 않은 대관료를 지불하고도 대관이 가능한 공연장이 매우 한정된 돼있습니다. 게다가 공연마다 직접 장비를 옮기고 세팅하느라 정작 본 공연보다 더한 공력을 들이기도 일쑤입니다. 야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한옥마을과 전북대 구정문 등에 상설무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금전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단지 좋아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동호인들에겐 시민들과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실내외 상설공연장이 절실합니다. 또 한 가지는 연습공간의 부족입니다. 시민놀이터가 운영되면서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접근성과 주차공간 부족 등의 문제는 여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동호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합니다. 아카펠라를 즐기고 싶은 시민들이 있어도 동호회나 모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습니다. 다른 장르, 분야의 동호회도 대개는 비슷한 상황일 거라 생각합니다. 홈페이지나 게시판 등을 통해 시민들이 동호회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동호회 활동이 가능할 것입니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공동체미디어를 위하여 <장주원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공동체미디어팀>
미디어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평등성에 가치를 두고 있어야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특정 계층의 이야기가 밑으로 내려가는 일방적인 메시지의 이동만이 있습니다. 밑으로 내려갔으면 위로 자유롭게 올라가야 하는데 그것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성을 가진 다양한 이야기들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공동체미디어는 힘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 활동이 개인만의 힘으로, 저절로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시민들의 공동체미디어 활동을 지원하고 교육하는 미디어센터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수요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공동체미디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는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이용자 수는 많지 않고, 생산된 컨텐츠는 많은 이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 지면에서는 시민들의 가치기준과 인식의 개선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공동체미디어 활동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미디어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가 속한 공동체를 변화시켜가는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변화는 참여를 통해 일어납니다. 만드는 것만이 참여가 아닙니다. 생산된 콘텐츠를 소비하고 피드백하는 활동 또한 참여입니다. 문화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 모두에게 시민미디어센터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새로운 경험과 의식의 변화 <조창배 성악가>
우리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항상 꿈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꿈을 이루고, 그걸 자신의 삶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입니다. 그 꿈을 노년에 이룰 수는 없을까요? 어르신들과 함께 성악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보통 젊은 사람들에게 열정을 수식어를 쓰지만 열정이란 단어를 가장 좋아하는 분들은 어르신들입니다. 이분들에게 문화는 단순히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설레게 하고 더 살아갈 힘을 주는 존재입니다. 반면 여전히 우리사회, 우리지역에서는 이 분들의 열정을 충족시킬 여건이 많이 부족합니다. 노년층 대상 프로그램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형태는 천편일률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단순히 소일거리가 아닌 더 큰 꿈을 꾸게 하고, 더 큰 의욕을 갖게 하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프로그램들이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 어르신이라고 어르신들끼리만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틀에 박힌 발상입니다. 어르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분들끼리만 모아놓는 것입니다. 단순히 나이로만 구분지어서 활동을 만들기보다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문화는 그 모두를 자연스럽게 묶어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매개체입니다.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합창단, 아름답지 않습니까? 노인들을 위한 별개의 문화, 별도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문화향유의 기반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세대를 넘어 문화로 어우러지자 <정상현 레드제플린 대표>
어느 장르든 마찬가지겠지만, 지역에서 대중음악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위기 속에 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항상 ‘지역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뭐가 있어야 뭔가를 할 수 있고, 뭐가 없어서 뭔가를 할 수 없는 그런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인디밴드와 스쿨밴드, 퓨전국악공연단의 앨범을 내고 공연을 기획하며 느낀 점은 이런 활동의 가치를 경험한 분들은 지속적인 향유자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더 많은 예술가들이 성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의식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변화를 더 많이 이끌어내기 위해 제가 생각하는 방법은 음악캠프입니다. 교외의 마을에 자리 잡은, 다양한 악기를 체험할 수 있고, 세계의 뮤지션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아담한 박물관, 그리고 항상 라이브 음악이 있는 곳. 방학이면 청소년들이 연습도 하고 앨범제작과 공연도 펼칩니다. 자연과 함께 캠핑을 하면서 열정을 쏟아 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말에는 가족단위로 찾아와 다양한 음악을 즐기며 감동을 느끼고 돌아가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음악마을도 꿈꿔봅니다. 분야별, 장르별 음악들이 마을과 마을로 퍼져나가 자리 잡는 겁니다. 어떤 마을에는 비틀즈에 대한 모든 것이 있고 어떤 마을에는 클래식이 가득한 그런 마을들 말입니다. 항상 준비된 음악의 마을들이 시민들을 기다리는 그런 상상, 생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찾으라, 구하라 그러면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장인욱 클래식애호가>
개인적으로 클래식음악을 좋아해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음악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공연장에서 듣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역에서 애호가들이 바라는 공연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수도권이나 타 지역으로 공연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다른 장르의 애호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도시의 규모나 인구수에서, 예산 등에서 공연을 유치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까운 곳에서 좋은 공연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모든 애호가들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끔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과감한 투자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1년에 한번 정도 집중해서 최고 수준의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면 애호가들 뿐 아니라 지역민 전체에게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공연감상 외에도 클래식을 즐길 방법은 많습니다. 동호인들이 모여 좋은 음반을 감상할 수도 있고, 직접 악기를 배워 연주를 할 수도 있습니다. 클래식에 빠져 악기를 배우면서 감상보다 연주가 더 즐겁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어떤 분야든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낸다면 그만큼 문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그 즐거움을 찾아 나서길, 그리고 그만큼 문화와 여유가 넘치는 도시가 되길 바랍니다.
전주 ‘문학의 길’을 걷고 싶다 <이휘현 전주KBS PD>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전주와 문학은 떼려야 뗄 수없는 관계입니다. 굳이 최명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작가들이 전주에서 성장했고, 흔적을 남겼으며, 또 그 작품에 전주를 등장시켰습니다. 은희경의 소설에는 첫 키스의 배경으로 덕진공원이 등장하고, 기형도의 산문집에는 시내의 오래된 카페 빈센트 반 고흐가 나옵니다. 양귀자의 유년의 공간인 한벽루 옆 마을과 한옥마을 일대는 그의 여러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교동에 외가집이 있던 고종석은 가출해서 전주에 머물던 시절을 기억하고, 박범신과 신동엽, 윤흥길은 지금의 전주교대인 전주사범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은 잊힌 전주의 가림출판사도 문단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의 동인지 산문시대를 무료로 발간해줬는데 이 산문시대 동인이 문학과지성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김승옥의 에세이에는 새벽에 기차를 기다려 책을 받아오던 이야기가 잘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문학적으로 전주라는 공간을 하나의 길로 엮는다면 어떨까요?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사색하고 상상할 수 있는 길 말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에는 자그만 안내판에 그 문장을 새겨두는 것도 좋겠습니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거리에서 그 문장을 만나고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도 생길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이 사랑하는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가 일상인 도시를 꿈꾸며 <백승우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운영담당>
전주는 영화의 도시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영화제가 열리고 있고, 한때 1인당 최다스크린수를 자랑했으며,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의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듭니다. 이곳에 사는 우리는 머뭇거리지 않고 전주를 영화의 도시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요? 영화제가 열린다고, 영화촬영을 많이 한다고, 영화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마 고개를 갸웃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전주시민들의 일상에까지 영화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니까요. 1년에 한번 영화제 때만 영화의 도시가 아니라 1년 내내 영화가 일상인 도시는 불가능할까요? 단순히 영화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고, 감상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진짜 영화향유의 도시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감독이 되고, 배우가 되어 자신만의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환경, 원한다면 영화와 관련된 교육과 강좌를 언제든 들을 수 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영화자료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아카이브를 갖춘 도시를 말입니다. 어쩌면 전주는 이런 상상에 상당히 가까이 다가가 있는 도시일 수도 있습니다. 그 때라면 시민들이 일상이 곧 영화가 될 수도 있을겁니다. “영화 만들려고 사는 거 아니잖아. 사는 거 보여주려고 영화 만드는 거지”라는 양익준 감독의 말처럼 말입니다.
다양한 문화를 만날 창구가 필요하다 <심혜련 전주시민>
지극히 평범한 전주시민인 제게 문화생활이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소극장 연극을 접한 후 종종 소극장을 찾아 연극을 보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 화려할 것 없는 무대지만 코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을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전에는 문화생활은 여유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경험할 수 있는 계기만 있다면,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극단이나 극장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공연정보를 찾아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길에서 우연히 포스터나 현수막을 보기 전까지는 공연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전북지역의 공연·전시 정보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이 있다는 이야기도 얼마 전에야 들었습니다. 잘 정리된 정보를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또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홈페이지나 더 쉬운 방법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주신다면 저처럼 자발적으로 정보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