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2 | [문화저널]
민족미술운동의 새로운 전망
- 사람중심, 창작 승리 -
권 산 / 민미련 교육창작분과 위원․화가(2004-02-03 11:28:52)
90년대 미술운동의 승리는 바로 창작 승리로 외화 될 것이고,
그것은 미술이, 미술가가 사람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창작했다는
증거 일 것이다. 민미련은 이러한 요구를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했다.
그러나 아직은 선생님으로부터 검사 받지 못한
미래의 청사진이다.
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이하 민미련)이 1월 9-10일 제 6차 총회를 통해 해소를 결정하였다.
1988년 12월 조직을 결성한 이후, 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민미련은 89년 <민족해방운동사>라는 걸개그림을 제작, 남한 전역에서의 순회 전시는 물론이요,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슬라이드로 참가하여 북한의 미술가들에 의해 복원, 전시됨으로써 이 그림은 해방이후 최초로 남과 북을 넘나든 그림이 되었다. 이와 관련되어서 4명의 미술가들이 구속되었다. 91년 민미련 사건으로 14명의 미술가가 구속되면서 끊임없는 탄압과 대응 투쟁을 벌여 나왔다.
민미련읜 노동현장등과 집중적으로 결합된 미술선전 활동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각 지역조직의 전국적 연합체계였다. 80년대의 정치적 상황과 대중운동의 고양속에서 기존의 미술, 미술운동의 틀을 깨고 생활과 생산, 투쟁의 현장으로 미술운동의 중심 축을 이동시킨 조직이다. 화랑이라는 결코 낮지 않은 문턱을 넘어서야 만날 수 있었던 미술이 허리를 굽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술의 대중화와 사회로의 환원을 알리는 미술 제자리 찾기에 다름 아니었다.
87년은 변화된 대중의 모습을 보여준 해였다. 그러나 변화는 대중의 몫이 아니었다. 지배 진영 또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것의 총체적 표현으로 3당 합당이라는 작품이 탄생했다.
5공화국이라는 상식이하의 폭력적인 시대를 경험한 국민들은 89년 이후의 공안 정국을 소름끼치는 공포로 느끼지는 않았다. 그것이 시대의 변화라는 큰 명제의 한단면인 듯 하다. 실질적인 시민민주주의조차 뚜렷하게 실현하지 못하지만 외형은 국민들의 직접적인 비난으로부터 비껴난 형태랄까? 국민들은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어떤 학자보다도 잘알고 있지만 왠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그런 풍경이 계속 되었다. 사회의 이러한 경향들과 소비에트 붕괴로 대표되는 사회주의권의 위기는 미술운동진영이 때아니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을 일으키는 적절한 배경이된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라는 것이 민족미술운동진영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 맞다, 틀리다는 식의 결과로 위치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관심 밖에서 미술가들끼리 난투극을 벌였다는 것에 있다. 대중은 또다시 잡지의 한귀투잉에서 ‘포스터모던 시대의 수용복’ 따위를 ‘감상되어짐’다하고 있을 때 미술은 저멀리 달아난 것이다. 매체의 확산을 통한 대중성의 회복을 혼자말로 주절 거리면서 민미련은 변화를 예감했다. 그 변화라는 거이 위에서 나열한 부정적인 변화가 아니라 그 부정의 늪에서도 꿋꿋이 피어나는 대중의 건강한 변화와 요구를 감지한 것이다. 대중보다 낮은 수준의 미술운동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단한 조직력, 통일된 사상 미학, 현장에서의 활발한 창작과 선전, 드높은 사상 의지, 사람과 사람간의 끈끈한 정, 이런 것을 포기 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공으로 지나간 것은 아니었다. ‘지나친 정치성, 과격성, 이데올로기의 도구’라는 식의 방향 없고 근거 없는 도식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미련의 5년은 미술운동이라는 용어를 당당한 것으로 만들어온 역사였다. 그러나 그것만 부여잡고 남은 세월을 보낼 수 있을까?
80년대는 당위성으로 대중을 길거리로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통치방식이 그것을 가능케 한 주범이었다. 왠지 주춤거리는 듯한 변혁운동진영의 어려움도 사실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중은 심각한 얼굴의 투사에게 더 이상 경이의 눈빛을 보내지 않는다. 부담 없는 웃는 얼굴의 투사를 원한다. 당위의 목적을 큰소리로 외치는 것 보다 사람이 부대끼면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요구가 당위와 일치함을 확인시키는 운동을 원하고 있다. 그것을 가로 지을 알갱이가 바로 ‘사람 중심’이다. 미술은 그것을 사실주의 미술을 통해서 확인 시킨다.
90년대 미술운동의 승리는 바로 이 창작 승리로 외화 될 것이고, 그것은 미술이, 미술가가 사람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창작했다는 증거 일 것이다. 민미련은 이러한 요구를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했다. 그러나 아직은 선생님으로부터 검사받지 못한 미래의 청사진이다. 다른 사람들의 답안지와 함께, 그리고 되도록 보다 많은 답안지가 일치되기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은 바로 대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