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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0 | [문화저널]
그 산에 살았던 생명들은 또 어디로 떠나갔는지
박남준(2004-02-03 11:30:00)
그 산에 갔습니다. 아낌없이 수맥을 열어 변함없는 샘물 내게 주었습니다. 새들은 깃들어 둥지를 틀고 푸르릉 날아오르며 노래 소리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산, 그늘 깊은 소나무 숲 속 맑은 강물소리 부려놓는 푸른 바람의 춤, 꿈결처럼 아늑했습니다. 그 숲에 들면 비로소 나 젖을 물던 먼 어린 날의 품으로 돌아가 고요했습니다. 오랜 날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없는 그 산, 아파트 숲이 들어선 저기 바로 이 자리에서 들리던 어젯밤 꿈 속 청산의 신음성, 그 까마득한 비명. 어느 날 문득 가서 보면 숲이 우거져 있던 산에는 포크레인과 큰 트럭들이 먼지를 풀풀 날리며 온통 벌겋게 산을 파헤쳐 놓고 있는 것을 봅니다. 무슨 무슨 지구 택지 조성이다, 전원적인 생활을 만끽할 꿈의 아파트 단지 건립 예정지이다. 하고 말입니다. 내 집 마련의 기회라며 마치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처럼 운운하는 선전도 하는데 그 평수로 보면 삼십 몇 평 짜리 등은 고사하고 오십 몇 평 심지어 육십 몇 평을 더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 집이 없이 남의 집 눈치 보며 세를 들어 살아온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넓은 평수의 집을 마련할 수 있는지 저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 세상에는 참 너무도 많습니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다람쥐와 산새들과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 아니라 이제 높다란 시멘트 건물의 아파트 숲이 가득 들어설 황량한 들판과도 같이 깎여져 내린 그 산에 살았던 생명들은 또 어느 낯선 곳으로 모두들 보금자리를 잃고 떠나갔는지. 지구의 생태계가 무참히도 파괴되어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발생하고 사막의 지대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합니다. 공해 산업으로 인해 먹을 물마저 돈을 주고 사먹게 된 요즈음이고 보면 앞으로 이 땅에서 아니 이 지구상에서 살아갈 생명들이 자못 걱정이 됩니다. 외국에서는 도로를 낼 때에도 큰 나무가 있으면 그 나무를 비켜서 길을 낸다고 합니다. 굳이 외국을 이야기 할 것도 없습니다. 바로 우리의 선조들은 집 한 채를 지어도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일조량을 생각하고 주변의 자연에 모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지었다고 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그 나무가 이 다음에 크게 자라나서 그늘을 만들 자리까지, 또 한 집이나 다른 그 옆의 나무들이 뻗어나갈 가지들의 길이까지 미리 예측하고 심었다니 얼마나 환경을 중요시 했었겠습니까 외국의 그것에 비할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조상들의 슬기로움을 너무도 모른 채 환경문제를 다루는 학자들마저도 외국에서 그 이론을 배워 온다니 너무도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쯤이면 사람들이 정신을 올바로 차리고 돈이 좀 없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이, 이 세상이 풍요롭고 좋아질까요. 어서 이런 소식들이 귀가 따갑도록 들려오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기를, 내내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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