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2 | [서평]
이 지역의 진솔한 삶의 기록
남민 제4집
(서해문집 , 1992)
박명규 / 전북대교수․사회학(2004-02-03 11:42:32)
한국사회 전반을 보아도 진솔한 삶의 기록들이 적은
터에 이 지역을 바탕으로 이런 책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전북종합문화지'를 표방하고 발간되는 "남민" 제4집이 서해문집에서 출간되었다. 이 지역을 터전으로 진실한 삶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현실적 고통들을 서술한 자전적인 글들과 전북지역현실에 대한 조사연구논문, 그리고 몇편의 시를 함께 묶은 이 책은 우리 삶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을 새삼 불러 일으킨다.
발행인인 최준석교수의 글“혼돈과 분열을 넘어”는 해방이후, 특히 80년대 상황에서 지식인이 겪을 수밖에 내면적 갈등을 정리한 글이다. 그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이 폭력이 가하는 ‘영혼과 심리의 파열’에 주목하였다. 폭력은 비정상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질서를 전도시키며 억압과 통제를 일상화하였다. 그 결과 이 시대의 인간들은 정신적 황폐화에 사로잡혀 있다. 필자는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 뿐만 아니라 그 폭력에 희생당하고 그에 대항하여 싸우는 자들에게도 내면적인 상흔이 심대함을 지적하고 이TEk. 그는 80년대 시대정신과도 같았던 진보, 급진의 정신적 기반 역시 ‘증오와 원한의 응어리’와 같은 삭막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본다. 이 글은 필자의 자전적 고백과 같은 것이지만 80년대 지식인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중신의 “전주 성은여고의 교육민주화 운동”은 교사로서 필자가 겪었던 우리 교육현장의 모순을 잔잔히 고발하고 있다. 교사를 돈으로 산 고용인으로 밖에 대우하지 않는 재단, 교사들의 인격을 짓밟는 관료적 통제, 비인간적인 교육현장을 오히려 옹호하는 교육행정 등 글자 그대로 ‘총체적인 위기’가 우리 교육현장에 만연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각종 비리나 불합리한 관행, 그것을 문제시하는 교사가 겪어야 하는 수난을 새삼 확인한다. 더구나 종교와 예절이라는 것이 교사를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점을 발견하면서 독자들은 가슴이 갑갑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선전자 노동조합이 작성한 선전자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에 관한 체험도 같은 의미에서 우리 가슴에 와닿는다. 노동현장에서 인간다운 존재로 대접받기 위하여 노동자들이 치루어야 하는 희생이 참으로 가혹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노동부와 회사측의 비인간적이고 조직적인 탄압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끄떡없는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눈앞의 이익에 허덕이는 오늘, 건강한 땅의 생명력을 신앙처럼 믿고 유기농업의 정착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임승기, 정경식의 글도 유기농업이 농업의 한 형태가 아니라 진실한 농민적 삶의 원형임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상품가치에 의해 지배되는 냉엄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벌레먹은 곡물을 붙들고 밤새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사랑은 진정 ‘생명의 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자들이라 할 만하다.
이들의 글은 모두 진실한 삶을 추구하려는 자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장에서 겪는 아픔과 고통을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새로운 희망과 각오들을 보여준다. 최준석은 ‘척결과 응징의 의지 못지 않게 분란의 도가니를 싸안을 긍정의 힘’의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박중신은 힘든 교육현장에서도 참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와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튼실하고 건강하게 확대되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선전자 노동조합이나 임승기, 정경식의 글 역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 그 속에 빛나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정신이야 말로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인 셈이다.
정철성의 글 “전북 시문학의 변화를 위하여”는 이 지역의 젊은 시인 7명의 시를 통해 ‘하나의 사건’이 되고 만〔전라도〕의 문제를 밝히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제를 구조적, 제도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차원에서 수행하려한다. 이광웅, 김용택, 정인섭, 김익두, 박남준, 백학기, 안도현 등의 시작(時作)을 통해 전라도 시인들이 지니고 있는 의식을 점검하고 있다. 농촌의 문제, 분단의 현실, 교육의 모순 등이 이들 시인의 주제가 되면서도 시인의 정신적 대응은 서정과 풍자, 넉넉한 여유, 초월, 길찾기, 때로는 처절한 절망 등으로 나뉘어진다. 필자는 전라도의 시인들은 크든 작든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그 상실감에 대한 반응이 대부분 논리적 근거가 빈약한 정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비판한다.
한편 이 책에는 전북지역의 실태에 대한 조사연구도 수록되어 있다. 김진소 신부의 “천주교 교우촌의 생태”는 전북지역에 산재하는 천주교 교우촌의 실태를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는 조선왕조의 가혹한 금압 속에서도 신앙의 정조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집단적 삶의 역사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 신도들-힘도 없고 가난한-이 추구했던 이상국가의 희구, 통치권에 대한 당당한 대응,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의 소박한 실현 등을 지적하고 있다.
정학섭, 류성렬의 “전북지역 경제와 노동자 계급”은 이 지역의 산업구조가 여전히 농업과 자영업을 기초로 하여 기업규모도 영세한 것이 많이 근대적 노동자계급의 형성이 상대적으로 더딜 수 밖에 없음을 확인시켜 준다. 동시에 전북지역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하청관계의 사회경제적 의미를 지적하고 있다.
안후상의 “일제화 보천교 운동의 성격”은 이 지역에서 발생한 신흥종교현상의 하나로 보천교를 점검하고 있다. 지역민의 종교적 에토스를 밝혀주는 한 작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국사회 전반을 보아도 진솔한 삶의 기록들이 적은 터에 이 지역을 바탕으로 이런 책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분명 몇몇 사람들의 질긴 애정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적지 않다. 내용상의 문제는 논의로 하더라도 89년의 3집 축간 이후 3년이 넘어서야4집을 간행하게 되었다는 점은 큰 문제라 할 것이다.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 진실한 기록이 얻어질때까지 기다린다는 것 등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몇 사람의 동인지가 아니고 ‘전북종합문화지’를 표방하고나선 이상 편집자의 느긋함으로 모든 것이 양해되긴 어렵다. 또하나 짚고 싶은 문제는 최소한 해를 건너서야 다음 호가 발간되는 책에서 반쪽만 실린 글이 두편이나 된다는 점이다. 차라리 한 편의 논문만이라도 오나전히 실려야 옳았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3년의 산고를 통해 태어난 책이라면 보다 기획적인 글들, 짜임새있는 편집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 역시 지우기 어렵다.
어쨌든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진실한 삶의 목소리들을 정리하고 남들에게 알려주는 작업은 중요하다. “남민”이 만들어져 나오는 전과정이 이 작업의 한 모퉁이 역할을 담당할 것을 기대하며 “남민” 4집의 출간을 함께 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