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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0 | [문화저널]
사람에게 쏟는 관심과 애정
글/이재현 어린이글쓰기 지도교사 (2004-02-03 11:42:35)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깜짝 놀랄 일이지만 요즘 엄마 아빠 나이를 모르는 아이들이 꽤 많다. 아빠의 경우는 좀 나은 편이지만 낮은 학년들은 엄마의 나이뿐만 아니라 이름을 모르는 아이도 더러 있다. 물론 아빠도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야 마찬가지지만 아침저녁으로 아이들 밥해 먹이랴 학교 챙겨서 보내랴 숙제 봐주랴 학원 보내랴 나쁜 버릇 고쳐주랴 잠시도 자기 시간을 가지기 힘든 엄마의 입장에서는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들 것이다. 하기야 해마다 한 살씩 보태지는 사람의 나이를 그 해에 그 숫자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큰일 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열 살이 넘은 국민학교 높은 학년이 되어서도 모든 가족이나 친구, 이웃들이 자기만을 위해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는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이라고 가르치기보다 오로지 그 아이만을 위해 모든 게 있다는 인식이 들도록 길들이지는 않았나 반성해볼 일이다. 아이들이 다 크도록 자기 방 청소는 무론 준비물에서! 숙제 장 일기장 챙기는 일까지 우리 부모들, 특히 엄마들이 너무 지나치게 해주는 경우기 많다. 그래서 그런 일 따위는 당연히 엄마의 몫이고 자신은 오로지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없다. 자기만한 나이에 엄마 아빠는 무엇을 제일 좋아했는지, 무슨 놀이를 하고 놀았는지, 걱정거리는 무엇이었는지, 또 내가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일 년에 몇 차례씩 다녀오는 할머니 댁이나 외갓집이 정확하게 어디인지도 모르고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곧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과의 관계가 자기에게 얼마나 잘 해주느냐 자기에게 무엇을 선물하느냐의 잣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한편으로 어른들을 이해하려고 많이 애쓰기도 한다. 자기가 잘못한 일로 꾸중을 듣고 매를 맞으면 그때는 기분이 안 좋고 대들고 싶다가도 그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기특하게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보기 글 가운데는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고 사투리나 입말들이 그대로 나타난 것도 있는데 글자 하나의 고침 없이 그대로 싣는다. 보기 글1 엄마의 기분(2학년 여) 우리 엄마는 화가 나서 나를 때릴 때가 정말 나는 슬프다. 우리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는 얼굴이 참 예쁘시다. 우리 엄마가 화낼 때는 여우같은 느낌이다. 내가 6살 때 아빠와 엄마가 싸웠는데 엄마의 얼굴을 보기 싫었다. 우리 엄마가 전화할 때에는 기분이 좋으시지만 다른 때는 몹시 좋으시지 않다. 엄마가 몹시 기분이 안 좋으면 우리 식구 모두 마음이 안 좋다(1994년 9월 6일) 보기 글2 우리 아빠(5학년 남) 나는 아빠하면 술과 담배가 떠오른다. 우리 아빠는 술을 자주 드신다. 술을 드시면 우리를 못살게 하는데 밤늦게 들어 오셔서 자고 있는 우리를 깨워서 잔소리를 하신다. 여름방학 때 있었던 일은 정말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자고 있는데 우리 방에 오셔서 ꡒ너 요즘 공부 잘하냐? 오늘 일기 썼어?ꡓ하고 물으셨다. 내가 일기를 썼다고 했는데 아빠가 일기장을 가져오라고 해서 갖다 드렸더니 안 썼는데 썼다고 했다고 귀뺨대기를 세게 세 번 때리셨다(비밀). 나는 잠이 달아나고 아파서 울었더니 엄마가 와서 말리셨다. 그러려면 나가라고 할 때 나가고 싶었고 아빠를 때리고 싶었다. 우리 아빠는 술만 드시면 숙제검사하고 일기검사를 꼭 하신다. 시험 볼 때는 모르는데 시험 점수 나오면 꼭 검사하고 매를 때리신다. 어디 놀러 가거나 장난감을 사줄 때는 좋은데 아빠가 술을 드실 때는 싫다. 열심히 일하는 아빠가 존경스럽지만 제발 귀뺨대기는 안 때렸으면, 또 술을 안 드셨으면 하고 생각한다. 보기글 1, 2 모두 우리 어른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을 아이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어른들은(부모가 됐든, 선생님이 됐든, 이웃의 아저씨 아줌마가 됐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애정을 쏟지만 그 아이가 어떻게 얼만큼 받아들였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내 마음처럼 쏟은 만큼 열매가 나오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 글은 거짓이 없다. 글은 아이들의 마음이다.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아이들 글을 읽고 섭섭해 하고 야단치기보다 앞으로 그 아이에게 어떤 방법으로 애정을 전할지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늘 이해하려는 마음이 깔려있지 않은가? 나는 글쓰기 시간에 빼어나고 세련된 문장을 익히는 일보다 자기와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기를 강조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알리고 싶은 호기심이 일어나게 하는 그것이 본디 아이들이 갖고 있는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마음을 되찾아주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그 글을 쓰면서 단 몇! 십분이라도 그 사람을 생각하고 이것저것 기억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스스로 깨닫는다. 나는 좀 더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으로 아이들의 생각을 자극하기도 한다. 엄마 아빠가 태어난 곳은 어디일까? 나만한 나이 때 어느 국민학교를 다니셨을까? 그 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엄마는 학교를 졸업하시고 어느 직장을 다니셨을까? 아빠의 일터는 어디에 있으며 거기에서 무슨 일을 맡고 계시는가? 그리고 엄마 아빠는 어디에서 처음 만나셨을까? 나를 낳으실 때 나의 부모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 아빠가 자신들을 위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무엇일까? 보무님이 쓸쓸해 보이거나 힘들어하실 때 나는 무슨 생각이 나나? 내가 어떻게 할 때 엄마와 아빠는 가장 기뻐하실까? 따위의 여러 가지 물음을 던진다. 처음에는 그저 가볍게 이야기하다가 점점 진지해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으로 기특하고 고맙기도 하다. 비록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지만 금세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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