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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2 | [서평]
이데올로기의 채색이 없는 민초들의 모습 하늘밥도둑 “심호택” 시집 (창작과비평사, 1992)
이경수 / 원광대 교수․영문학 (2004-02-03 11:50:18)
그가 성년 이후에 몸에 익힌 프랑스 문학에서의 발레리나 말라르메의 여백이 많은 존재론적인 시적 방법을 그가 앞으로 어떻게 소화해낼 것인가 심호택 교수의 첫 시집 “한르밥도둑”은 반 평생이 넘는 기간 동안에도 문학에의 향수를 다스리지 못한 끝에 터져나온 꽃방울이다. 대부분의 문학 청년처럼 대학 시절에 시에 대히 첫사랑을 고배했으면서도 정작 졸업 후에는 프랑스 주재 상사원 혹은 대학 교수의 길을 걷느라고 수십 년 동안이나 시로부터 동떨어졌던 그의 첫 시집을 읽으면서 우선 떠오르는 인상은, 그가 상상 세계 속에 외로운 아이처럼, 남을 위해서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이야기를 지어내 온 것이라는 인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남모를 사연을 어찌 성인이 된 이후의 흔해빠진 사교상의 술자리에서 속속들이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세련된 취미를 배경으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대부분의 시인들의 작품들과는 달리 그의 작품들은 철저히 고독한 상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가 철저히 고독한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이 나라에서 규범과 대화의 덕을 입지 못했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예컨대 그는 그를 성장시킨 군산 근처의 어느 어촌에서의 유년 시절을 재현하는 데 있어서 머리좋은 소설가의 재현에 못지 않은 꼼꼼함을 통해서 진진한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리하여 50년대의 전쟁 직후의 스산하고 황량했던 가난과 결부된 온갖 풍속을 재현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직접 겪었으면서도 의식화되지 못했던 생활의 구석구석을 그는 어느 소설가에도 못지 않은 구체성으로 직핍해 오고 있다. 따라서 “국방색 탄약 주머니로 책가방 삼던 시절” “똥바가지로는 그저 그만”인 미제 철모, 혹은 “울사금 못 낸 애들/죽기보다 더 싫은 고통길”, 혹은 점심 시간을 못기다리고 미리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도시락 냄새 따위들은 심호택 세대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풍속의 구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진진한 재미는 어촌의 풍속과 인물의 재현하는 데 있어서 이 나라의 작가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이데올로기에 의한 채색을 그가 용케도 벗어나는 데서 배가되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지난 20여 년간 이 나라의 문학 풍토의 지배적인 경향은 군화와 탱크로 상징되는 억압적인 정치세력에 맞서기 위한 또 하나의 남성적인 이데올로기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체로 민중 시인 혹은 민족 시인으로 지칭되는 대부분의 젊은 시인들이 묘사하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은 “전라도의 노오란 가난” 혹은 “두주먹을 불끈 쥔”이라는 허구적인 수사학으로 대변되는 농촌풍경이었다. 그러나 건강한 동료 사냥꾼들이 사냥을 나간 사이 사냥에서 팔다리를 잃은 부상 때문에 혹은 타고난 약골체질 때문에 컴컴한 동굴에 남아서 하루종일 공상으로 시간을 보내던 저 원시시대의 시인이 꼼꼼한 관찰과 예민한 감각을 통해서 급작스러운 폭풍우와 궂은 날씨를 두고 “신이 노했다”던가“물결이 우리를 삼키려 하도다”라는 신탁과도 같은 언어를 발화 했을 때 남성적인 동료 사냥꾼들은 얼마나 두려운 전율을 느꼈을 것인가. 그것은 남성적인 무모함과 으시댐이 자칫 간과하기 쉬운 여성적인 예민한 관찰이나 감각이 가져다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학이 이러한 예민함과 꼼꼼함을 성긴 이데올로기에 양보할 때 그것은 토론에 있어서의 문제제기의 시효로 끝나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심호택의 시는, 우리의 의식이 가난을 상징하는 온갖 소도구들과 풍속에 의해 지배될 수는 있어도 그것들이 추억과 기억을 통해서 여과될 때는 원한과 한의 대상이 아니라 오롯한 미적 대상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전범이다. 심호택 시인이 규범의 틀을 벗어남으로써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묘사를 획득하는 것은 어촌의 풍속 묘사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유년시절의 인식의 틀을 형성시키는 가족사의 묘사에서도, 우리의 성장 소설이 자칫 빠지기 쉬운 지나친 미화나 추모의 염을 절제함으로써 더 많은 여운을 남길 줄 아는 전략적인 효과를 터득하고 있다. 그래서 서당의 훈장으로서 전형적인 유생인 할아버지가 근검절약의 가르침으로서 흰 종이의 소비를 놓고 최생원네 손자처럼 “연필로 먼저 쓰고 그 위에/또다시 붓으로 빽빽이 써서/그 종이에 허연데 도무지 아니 보이구서야/두시간으로 보내느리라” 라는 전형적으로 유가적인 권면을(이때 각운으로서 반복되는 “그 위에”라는 구절은 이러한 전형적인 유가적인 가르침에 대한 꼼꼼함인 동시에 풍자로서도 적절하다), “최생원네 손자란 놈/제아무리 잘났어도/똥구멍 새까만 놈일거라 생각했지요”라는 주인공인 화자의 순진 무구한 상상력과 대비시킴으로서 전혀 새로운 폭발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젊어서 청상이된 홀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정도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놓고/봐라/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저렇게 된다/똥지게 진다”는 구체적이면서도 망각되기 쉬운 언행의 재현을 통해 전형적인 모친상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어머니 잃고/백담사 들어가다가/신흥사께 토굴에 산다는/선승 하나 만났습니다//한 여인이 갔으니/ 한 여인이 오리라/장가들 궁리나 허소/그것이 바로 약이여” 라는 대목에서는 우리의 의식을 사로잡는 가장 큰 연분도 실은 영원히 반복되는 하나의 연분일 수도 있다는 불가적인 깨우침과 결부시킴으로써 더 많은 여운과 여백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요절해서 시인으로 하여금 신난을 겪게 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근엄한 콧수염에/료오마에 양복 입고/흑백사진 속으로 들어간/아버지여/낯선 관념이여”라고 정직하게 토로하는 시인이 설날 떼지어 몰려와 며칠이고 밥그릇 축내며 키득거리던 당고모들이 할아버지의 불호령에 줄지어 떠나 갈 때는 “내 즐거움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던 허전함/몰라주는 할아버지가 야속해서/나는 속으로 불경한 노래 불러주었다/영감아 땡감아 죽지를 말어라-/봄보리 개떡 쪄서 꿀발러 주께-”라는 구체성에 더 탐닉함으로써 그가 가난에 대한 한보다는 가난을 그래도 풍족하게 해주는 전래의 가족 간의 애틋함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우리는 온갖 전자장치에 의한 오락물들이 풍요한 시대에 살면서 오락물이라곤 고작해야 유리알 속에서 움직이는 몇 가지의 색종이들을 만화경이랍시고 들여다보던 저 태고적으로 여겨지기만 하는 구시대의 풍속과 인정의 세계를 심호택 시인의 안내를 통해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만화경을 통한 시간의 되돌림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이러한 풍속의 재현이 심호택 시인의 첫 시집의 주제이기에 그의 시들의 행간은 어쩔 수 없이 서술의 행간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이 나라 시단에서 김광규 시인이 길을 열어놓은 이래로 생활 현장에서 이념과 시적인 것을 발굴하려는 많은 젊은 시인들이 답습해 온 방법론적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적 묘사는 서술 이상의 여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한계를 또한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심호택 시인은 그의 유년 체험의 재현에 적절한 이러한 서술적 묘사 이후에, 그의 성년 체험에 걸맞는 또 하나의 방법론적 전략에 몰두해야 할 필연성에 직면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가 성년 이후에 몸에 익힌 프랑스 문학에서의 발레리나 말라르메의 여백이 많은 존재론적인 시적 방법을 그가 앞으로 어떻게 소화해 낼 것인가를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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