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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0 | [문화저널]
펜은 칼보다 강하다. 강하다?강하다!
글/정희섭 민예총 정책실장 (2004-02-03 11:52:58)
언제는 우리 언론이 제 할 일을 제대로 했겠느냐 만 한심한 언론의 현실에 대해 그래도 예전에는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 탓으로 여기고 언론에게 그 책임을 직접 묻지는 않았다. 물론 20년 전의 언론자유선언으로 대량의 해고자들이 신문사에서 쫓겨난 이래(생각해 보니 올해가 74년의 10.24언론 자유선언이 나온 지 꼭 20년 되는 해이다) 언론이ꡐ알아서 기거나ꡑ 아예 적극적으로 어용역을 한 전과가 많았고 특히 ꡐ보도지침ꡑ사건에서 낱낱이 폭로되었듯이 스스로 언론자유를 주장할 만한 자격이 우리언론에게 잇는지 심각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ꡒ민주화가 좀 되면ꡓ 하면서 한 가닥 기대를 해왔었다. 3공에서 6공까지 ꡐ군사독재ꡑ의 시기가 가고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최소한 언론 자유에 관한한 현 정부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과연 언론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지금도 알게 모르게 ꡐ외압ꡑ이 있다는 얘기가 있기는 하지만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의 강도는 이전처럼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알아서 기는 것도 이제는 강요가 아닌 자유의사로 하는 것 같다. 정말 펜은 칼보다 강한 것인가. 이전에는 권력의 압력에 밀려 내뱉던 자조적인 목소리였지만 이제는 실제로 펜이 칼보다 더욱 힘이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펜이 칼더러 ꡐ직무유기ꡑ를 한다고 야단을 칠 정도이니 말이다. 문제는 펜이 칼과 싸워 이긴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펜은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과 민주화투쟁에 편승한 것일 뿐 지금 우리 펜의 어느 구석에도 언론자유를 향한 펜의 투쟁흔적은 없다. 오히려 우리 펜에 묻혀 있는 것은 메카시즘의 붉은 독잉크다. 거기에 무책임한 보도 관행으로 그 펜도 마구 휘둘려지고 있다. 스치기만 해도 빨갛게 물이 드는 독잉크에 의해 우리사회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모른다. 펜은 심지어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전쟁을 결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수백만 독자가 읽은 소설을 새삼 용공으로 몰아붙이는가 하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사단법인 체를 반국가단체인 공산당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싣기도 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펜에 당한 상처는 공안의 칼에 다친 것보다 훨씬 심하다. 대상에 따라서는 거의 치명적인 것일 수도 있다. 미국과 같은 곳에서도 기승을 떨친 메카시즘인데 하물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데다 50년 가까운 분단을 겪으면서 서로에 대한 분신과 증오만을 키워온 우리사회는 메카시즘의 독버섯이 자라기에 얼마나 좋은 토양인가. ꡐ빨갱이ꡑ라고 언론이 떠들어대면 끝장이 나고야마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었기에 똑바로 빨갱이라고 지목하지는 않지만 불그스럽다든가 붉은 기가 돈다든가 하여간 그 비슷하다는 정도만 가지고도 그 위력은 충분히 발휘된다. 그러니 ꡒ자본주의에도 문제점은 있다. 사회주의에서 배울 점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 점을 배제해서는 안 될 것 같다.ꡓ 정도로 말하는 것은 완전한 빨갱이요 ꡒ현실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은 아니다ꡓ고 하면 빠알가스름한 것이고 ꡐ사상의 자유ꡑ운운 하면 사상이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빨간 색안경을 쓴, 무책임한 보도관행에 익숙해진 자가 메카시즘의 붉은 독잉크를 함빡 묻히고 휘두르는 펜이 어찌 아니 무서운가. 칼이 펜과 힘을 겨룰 수 있으므로 진보적 민족예술진영의 큰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 민족 예술인 총연합(민예총)은 월간조선 9월호와 조선일보의 8월 19일자 기사에 의해 큰 상처를 받았다. 당한 우리로서야 ꡒ이까짓 상처쯤-“,하거나 ꡒ어디 한두 번 당했냐ꡓ하면서 자위하기도 하지만 문민시대에 대조선일보에 의해 입은 상처이니만큼 당한 우리자신들보다 주위의 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이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6.29이후 처음으로 부모님께 ꡒ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ꡐ그런 일ꡑ한다ꡓ고 닥달을 당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당한 자의 입장에서 할 말이 많다. 우리나라의 펜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진실여부의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최소한 사실이라도 말해야 할 것이 아닌가 사실이 아닌 것을 자신의 지면에 실으면 독자들은 일단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흔히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ꡒ그거 정말이야?ꡓ. ꡒ그래, 신문에 났어ꡓ 오보든 아니든 일단 언론에 나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일반 사람들, 그들을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거나 언론을 탔더라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지 그것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는 것을 말이 안 된다. 최소한 우리의 언론은 그만큼 국민들의 신회를 받고있다는 것이 아닌가. 행복한 줄 알고 책임을 느껴야지 순진하고 우매한 국민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기야 그런 오만이 오늘의 우리 언론을 망친 셈이지만. 이제 민예총이 언론으로부터 당한 몇 가지 사건(?)들을 예를 들어 살펴보자. 먼저 조선일보 8월19일자 記者수첩에 실린 지난 4월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열리는 민예총주최 [동학농민전쟁 걸개그림展](2천2백만 원의 문예진흥기금지원)에 참가한 그림 중에는 ꡒ쌀수입반대ꡓ ꡒ미국 반대ꡓ등의 구호가 눈에 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반정부 운동에 돈을 대고! 있는 셈이다 라는 내용이다. 민예총은[동학농민전쟁 걸개그림展]이라는 행사를 주최한 적이 없다. 기자가 언급한 문제의 그림들이 출품된 전시회는 민예총과는 무관한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전시 조직위원회]에서 주최, 주관한 전시회 [새야 새야 파랑새야](94년 3.30-4.17,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를 가리키는 듯하며 민예총은 동전시회의 대관료로, 우리가 받은 1억5천만 원의 문예진흥기금 중 2천만원을 지원한 적은 있다. 어쨌든 이 기사는 사실과 다른 잘못된 기사인 셈이며 이로 인해 본 단체가 결과적으로 반정부운동을 주최해다는 인상을 일반 독자에게 줄 우려가 있다. 이는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겠지만 본 단체는 그 실수가 본 단체에 대해 어떤 나쁜 예단을 가진 상태에서 어떻게 든 그 활동에 흠집을 내려는 과잉의욕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하고 의심한다. 그리고 ꡒ결과적으로 정부는 반정부운동에 돈을 댄 셈이다ꡓ라는 표현에도 문제가 있다. 어쨌든 정부가 돈을 댔다고 하는 표현자체는 틀렸다고 할 수 없겠다. 그러나 110여점에 이르는 전체 출품작 중 극히 소수(월간 조선9월호의 기사가 지적한 것은 2점!)에 해당되는 그림을 수용한, 우리사회의 유수한 미술인들이 대거 참가한 전시회를 반정부운동이라고 몰아치는 것은 지나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그림들은 우리사회에서 우루과이라운드를 둘러싸고 쌀수입반대, (쌀 시장 개방을 강요하는) 미국반대의 구호들이 외쳐지던 93년 말과 94년 초의 대대적 시위상황을 반영한 것일 텐데 당시 그러한 시위들과 구호들이 반정부운동으로 규정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예총을 둘러싼 이 같은 흠집 내기의 예는 사실 얼마든지 있다. 민예총이 93년 10월 일본 도쿄와 (중략) 코리아통일미술전에는-(중략)-민예총 기관지[민족예술]94년 봄호는 이 전시회를 ꡒ남한의 삶은 분노-고통-질곡인 반면, 북한화가들은 북한 주민들의 행복에 가득 찬 삶을 그렸고ꡓ고 자평했다 라는 구절은 명백한 허위보도의 실례이다. 민예총 기관지 94년 봄호에는 그러한 글이 실린 적이 없다. 이 같은 허위, 왜곡 보도는 조선일보의 기자자질을 의심케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른바 ꡐ데스크ꡑ도 민예총에 대한 나쁜 예단과 과잉공격 의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이글에서 최기자가 인용부호까지 쳐가면서 요약 인용한 내용을 찾을 수는 없으며 기사의 내용이 글 전체의 내용과 논지에 비추어 타당하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이 글은 비판정신이 결여된 북한 미술과 풍자를 통한 사회비판을 담은 남한미술을 비교한 것으로서 필자가 은연중 남한미술운동의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야 옳다. 결국 자료 확인 소홀, 자의적 인용과 왜곡된 해석, 잡지에 실린 한 필자의 글을 그 잡지를 발행하는 민예총의 자평으로 간주하는 견강 부회, 문법상의 잘못 등의 문제가 문제의 기사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것이다. 이는 본 단체가 북한과 재일동포 예술인들과 함께 어렵게 성사시킨 남북문화교류 행사를 민족통일의 관점에서 평가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빌미로 본 단체의 사상적 성향을 문제 삼으려는 악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문제는 이기사가 단지 한기자의 미숙함을 넘어서서 그 악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8월 20일 건국애국단체명의의 성명서, 8월 26일 박용만 민자당 고문의 발언 등은 직접적으로 이 기사의 영향이라 생각된다. 이 기사는 본 민예총과 소속회원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사상공세에 시달리게 했고 모처럼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마련한 민간차원의 남북문화교류 행사를 비방하여 결과적으로 민족화합과 통일을 위한 노력에 지장을 가져올 수도 있다. 조선일보 8월27일자 聞外聞에서의 기사를 보자. 이 기사는 박용만 민자당 고문이 ꡒ이북이 낙원이고 한국이 지옥인 것처럼 묘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소속된 민예총과 같은 공산당에 정부가 2억6천만원이나 지원한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며, 이 단체가 청와대 김정남 교문사회수석 밑에 있는 것 아니냐ꡓ고 비난했다는 내용을 그대로 싣고 있다. 이와 비슷한 기사는 다른 신문에도 실렸으나 우선 조선일보에 먼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조선 일보측은 월간조선 9월호의 기사위해 민예총에 대해 철저히 연구하였으며 적어도 민예총을 공산당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또한 박 고문은 아마도 조선일보 8월19일자나 월간 조선 9월호의 기사를 잘못 읽고 민예총 회원들이 그런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 것 같은데 잘못 읽은 것은 박 고문 자신의 책임이겠지만 위 기사들이 코리아통일미술전에 대한 원동석씨의 글을 자의적으로 편집, 인용하고 해석한 데서 그러한 오독이 가능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월간조선 9월호 기사논조도 본 민예총의 화가들이 그러한 그림을 그린다기 보다는 민예총이 참가한 코리아통일미술전에 출품된 남북 화가들의 그림이 그러한 경향을 띠고 있다는 내용이니만큼 박용만씨의 잘못된 발언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대로 보도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러한 일방적인 보도관행은 고쳐져야만 한다. 월간조선 9월호는 결국 그림 [모내기]에서 읽을 수 있는 작가 신씨의 통일관은 미군 철수와 자본가들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논리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라는 기사를 쓰고 있다. ꡒ신씨는 이 그림은 통일의 장해요소로서의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 평화통일을 이루어 평화로운 공동체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 통일의 염원을 표현했다고 주장했다ꡓ에 바로 이어진다. 이렇게 친절하게 인용해 놓은 작가의 말에서 어떻게 기사와 같은 기술이 가능하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또한 기자는 그 근거로 쓰기 위해 검찰의 공소장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미 동기사에서 언급하고 있고 재판부의 판결문도 인용하고 있다시피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사실상 효력을 상실한 검찰의 공소장을 근거로 삼고 있는 것으로 부당하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책 247쪽에서는 이 같은 조선일보의 보도태도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보다 명백하게 드러난다. 신씨는 8월15일부터 3일 동안 열리는 동학백주년 기념공연인 가극[금강]의 미술을 담당하고 있다. ꡐ시인 신경림씨의 서사시를 원작으로 한 이 공연은ꡑ라는 기사를 앞의 맥락과 연결지어 보면 ꡐ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 신씨가 참여하는 공연ꡑ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로 [금강]공연과 신씨를 굳이 결부 짓는 듯한데 그것을 그렇다 치더라도 유명한 서사시 [금강]의 원작자가 신동엽이 아닌 신경림으로 잘못 기술되어 있다. 이를 최기자나 혹은 교정담당자의 무지나 단순 실수의 소! 치라 보면 그만이지만 생각컨대는 민예총에 대한 공격에 몰두한 나머지 신경림씨가 민예총의 전의장이므로 민예총이 주최하는 [금강]공연의 원작자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데서 나온 실수라고 생각된다. 그 같은 내용은 다시 같은 글 251쪽에서도 이어진다. 이민섭 장관은 민예총의 이념성향을 파악하지 못한 채 사단법인 신청을 수락하고, 문예진흥기금을 지원하도록 했거나, 민예총의 사상성향을 파악하고도 그들을 합법화했다고 하라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든 이장관은 중대한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라는 기사의 요지는 결국 恝뮨記?사단법인으로 합법화되어서는 안 될 이념, 사상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되는데 이는 한기자의 의견을 넘어서는 대단히 위험한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민예총의 이념사상은 임의단체 수준에서는 별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민예총은 사단법인으로서든 임의단체로서든 이념 사상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러한 본 단체에 대해 이념사상이 문제라는 기사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사단법인으로 합법화도어서는 안되고 임의단체 수준에서는 괜찮은 사상이념이 따로이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민예총의 사상이념성향은 임의단체 수준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인지. 그리고 기자가 일방적으로 이민섭 문체부장관이 직무유기를 했다고 몰아치는 것도 비판을 넘어선 비방에 가깝다. 이민섭 문체부장관은 민예총의 사단법인화를 작년 4월 대통령보고까지 하면서 결정했고 관할부서에서는 우리가 제출한 서류를 충분히 검토하여 승인하였다. 이러한 문체부의 업무수행을 장관의 직무유기라 단정하는 것은 억지이며 결국 이기사가 처음부터 민예총을 빌미로 정부를 공격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이러한 실수성 고의 또는 고의성 실수는 실수라고 여기기로 하자. 그런데 특히 문화저널 독자들과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월간조선이 기사는 올해 동학 백주년을 맞아 벌어진 행사에 대해서도 은연중 빨간물을 들이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ꡐ반제반봉건ꡑ의 이념 ꡐ폭력투쟁ꡑ의 양상 등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올해 민예총이 백주년 행사 관계로 13개 행사에 문예진흥기금 1억 5천만원을 지원받았다는 것을 빌미로 ꡒ사실상 백주년 행사를 민예총이 주도하는 것 같다ꡓ고 언급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전주에 계시는 기념사업회 분들에게는 죄송스럽지만 민예총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다. 백년만의 사업을 민예총이 열심히 한다고 홍보해 주니 말이다. 그런데 기본 발상이 문제다. 마치 동학농민혁명(전쟁)/갑오농민전쟁이 상당히 문제가 많은 역사적 사건인데 민예총이 그 기념행사를 열심히 하니까 결과적으로 민예총은 문제가 많다 하는 식이다. 자 그렇다면 이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민예총으로서는 더욱 열심히 해야 함에도 그렇게 못한 것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울 뿐 백주년 행사를 열심히 하려고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잘못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전주의 기념사업회를 비롯하여 지역의 많은 분들을 더 잘 도와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울 뿐. 민예총을 위한 구구한 변론은 그만 두기로 하자. 그리고 조선일보라는 당장의 상대에 대해서는 이제 언론중재위에서 쌍방의 주장이 맞서 끝내 분성립처리가 되었고 결국 법정에서의 판결을 구하게 되었으니 양식 있는 판단에 맡기기로 하자. 그러나 이제는 같이 말해야 한다. 펜은 칼보다 강해야 한다고, 언론자유는 언론사의 자유가 아니라고. 아직은 무망한 기대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말하고자 한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칼과의 피투성이 싸움을 겪은 후에라야 가능한 것이라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부끄럽기로 하자. 우리 언론의 그런 것이 모두다 신문을 팔아먹기 위한 것일진대 왜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우익보수여야만 하냐고. 이런 글을 실을 수 있는 문화저널이 월간조선보다 더 많이 팔릴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내가 말한 모든 것도 결국 공허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결국 사론(?論)을 압도할 수 있도록 정론(正論)의 경쟁력을 우리가 키워야 求?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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