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2 | [문화저널]
잠자다 봉창 뚫는 소리
김두경 / 서예가․편집위원
(2004-02-03 12:00:31)
요즈음 세상살이는 나 같은 사람이 살아가기에 좀 어설적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저라한 이야기를 다 하자면 쓴 웃음 날게 많지만 설날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설과 양력 새해 때문에 벌어지는 재미있다면 재미있고 당황스런 이야기를 해보자
꼭 써야만 하는 명분도, 필요성도 없을 뿐 아니라 음력을 주로 쓰던 습관이 몸에 베인 나이도 아닌데 왠지 음력이 좋아서 혼자만의 기록은 음력을 쓴다. 또 작품을 해놓고 일시를 한글이나 한자 또는 아라비아 숫자로 쓸 경우는 많지 않거니와 쓸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어울리지도 않아서 음력절기나 달과 날에 대한 고유 명칭을 찾아 쓰다보니 습관이 되었는지 양력 새해는 쓰다보니 새해 같지가 않다. 그뿐인가 어디 천시에 시작과 끝이 있으리요마는 새해라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봄과 일년의 시작이 어느 정도 맞아야 실감이 날터인데 양력 새해는 계절의 마지막인 겨울의 중간쯤에 서있으니 어색한 느낌이라면 나만의 것일까? 남이야 어떻게 어떤 느낌으로 살던 내 삶은 이렇게 살아가다 보니 양력 새해에는 도무지 새해인사도 나오지 않고 연하장 한 장 띄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다보니 항상 주변의 어른들이나 친지 벗님네들게 새해 인사를 먼저 받게 되는 당혹함을 피할 수 없게 되는데 내가 철이 들었다고 생각되는 어느 때부터 지금까지 얼버무리며 설날에 새해 인사를 드리고 연하장도 보낸다. 별로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분께도 새해는 지금이며 구정이 아니라고 설날이라고, 연하장은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보내는 서양 풍습이기 이전에 동양에서 설날에 주고 받던 풍습이었음을 얘기하고 싶어 오기 비슷한 신념으로 보낸다. 그러면 받으시는 분들의 표정은 어떠한가. 양력 새해에 새해인사를 받는 내 표정을 당혹스러움이라면 내 새해 인사나 연하장을 받으시는 분들의 표정은 황당한 즉 왠 잠자다 봉창 뚫는 소리냐는 표정이시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요즈음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께서는 “자다 봉창 뚫는 소리”라는 옛말씀이 무슨 말인지 상상도 안되는 말씀일 것이다. 지금은 산골에서도 보기가 힘든 집이 되었지만 불과 10여년 전에만 하더라도 조금만 시골로 가면 토담집이나 토담집비슷한 한옥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집들은 전문 목수나 그밖에 기술자가 지은 것이 아니라 민초들이 돌과 흙을 버무리거나 메주덩이처럼 흙벽돌을 만들어 쌓아서 벽을 만들고 얼기설기 지붕을 엮었으니 창호가 제대로 뚫렸을리도, 공간이 넓었을리도 없었다. 다만 드나드는 문 하나와 불발기창 즉 햇빛창 하나 부엌과 방 사이에 등잔창이 모두 여닫을 수 없이 봉해진 창문이라 해서 봉창이라 했다. 집의 형상이 이러하니 방인들 얼마나 크겠는가 조그만 방에 식구들이 함께 잠을 자다보면 이불 또한 넉넉지 못하여 밀치고 당기다가 어떤 놈 발이 봉창 밖으로 삐져나가고 찬바람이 배고픈 아이 빈 남비 긁는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데 이것이 바로 잠자다 봉창 뚫는 소리다. 이 정도면 잠자다 봉창 뚫는 황당한 표정 아실만할테지만 내 신념은 변치않을 것이다. 세상이 모두 양력 새해를 설 어쩌고하며 때때옷 입고 재롱을 떨어도 음력 새해를 구정이라면 구정물 취급하여도 나는 설날은 다 설날이지 구정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방 팔방 어디를 둘러보나 우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덩치 크고 힘세고 코까지 큰놈들의 멀쩡한 허우대에 반하여 그들의 손짓, 발짓, 입성과 먹거리까지 흉내내고 마침내는 명절까지도 흉내내는 우리만 보이는데 그 좋은 이름 설날을 못없애서 안달하는 TV나라는 도대체 어떤 상놈의 나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구정 구정 하는 우리 국민은 또한 누구란 말인가. 설날이 며칠 지나지 않은 새해 아침에 소원하나 빌어 봅시다. 우리가 있어야 세상 모든 것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위하여 나의 설날에 대한 신념이 더 이상 자다 봉창 뚫는 소리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