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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2 | [시]
살아 남은자의 자화상
김남주 / 시인 (2004-02-03 12:01:42)
십년 전의 일이다. 십년 만에 담 밖의 세상으로 나와 고향에서 날을 새고 아침나절에 나는 조상들의 무덤에 절을 하기 위해 고향 집을 막 나서는 참이었는데 노루 한 마리가 마을 앞의 보리밭으로 껑충껑충 달려가고 있었다. 노루는 무엇을 보고 그랬는지 주춤 제 자리에 서더니 그 긴 고개를 들어 먼 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노루가 산에서 내려와 마을로 들어서는 경우 내 어린 시절에도 가끔 있었다. 그럴 경우 동네 어른들은 노루를 잡기 위해 나서는 쪼무래기 애들이나 청년들에게 야단을 놓고는 했다. 노루는 예사 짐승과는 달리 영물이라서 그것을 해치거나 잡아먹으면 틀림없이 동티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근처에 노루가 들어오면 사람들은 그에 접근하기는 커녕 오히려 피하는 편이었다. 물론 작은 돌멩이를 노루에게 던지는 장난꾸러기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달랐다. 어느새 노루를 보고 이 집 저 집에서 사람들이 떼몰려 나왔다. 그들은 대부분 설을 쇠기 위해 고향에 내려온 젊은이들이었다. 어떤 젊은이는 도시에서 몰고온 트럭의 크락숀을 빵빵 울려대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기세에 질렸는지 노루도 미동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노루를 에워싸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노루에 접근을 제지하는 어른들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들은 고샅에 선 채로 눈앞에서 벌어지고있는 형국을 팔짱을 끼고 관망하고 있었다.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날 인간의 무리에 포위된 채 먼 데를 바라보며 꼼짝않고 서 있었던 노루의 눈을, 그 눈은 맑고 깊은 무구한 거울이었다, 그 눈은 일체의 저항을 포기한 살아남은 자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무구한 거울, 슬픈 자화상, 나는 이광웅시인의 눈에서 이런 것들을 읽었다. 감옥에서 나는, 그를 처음 보았을 때도 그랬고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그를 보았을 때도 그랬다. 긴 모가지를 들고 먼데를 바라보기만 하던 노루의 눈과도 같은 사람, 이제 그 거울은 깨졌고 자화상은 찢어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를 회상하는 글을 쓰고 있다. 이광웅시인, 그는 산노루처럼 먼 데를 꿈꾸면서 한 세상을 살다갔다. 나는 그 꿈을 자본의 세계 저 너머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먹이를 더 많이 움켜쥐려고 아귀다툼하는 남쪽나라의 쇠창살에 같히게 되었고 여기서 그는 북쪽나라의 산과 들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바보처럼 어리숙하고 인간관계에서 도대체 손익계산을 따질 줄 몰랐던 어린애같은 사람, 누가 말을 걸기 전에는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 줄 몰랐던 사람, 그러나 나는 그에게서 노래 하나를 배웠다. 그를 회상하면서 그 노래나 한번 불러보아야 겠다. 봄이면 사과 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가을엔 황금이삭 물결치는 곳 아 - 내 고향 푸른 들 한줌의 흙이 목숨보다 귀한 줄을 나는 나는 알았네 불타는 전호가에 노을이 비껴오면 가슴에 잠겨오는 그리운 얼굴 아 - 내 고향 들꽃 피는 그 언덕이 들도 없는 조국인 줄 나는 나는 알았네 살아도 그 품속에 죽어도 그 품속에 언제나 사무치게 새겨보는 곳 아 - 어머니의 푸르른 나의 조국이 가신 님의 그 품인 줄 나는 나는 알았네 1993년 1월 5일 새벽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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