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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2 | [저널초점]
작명가를 찾습니다
작명가를 찾습니다 윤덕향 / 발행인 (2004-02-03 12:04:49)
최근 전주시에 세워져 금년부터 학생을 받아들일기로 된 국민학교의 이름이 신문지상에 보도된 바가 있다. 이런저런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심사숙고하여 학교 이름을 지었을 것으로 믿고 싶지만 보도된 학교 이름은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그런 이름중의 하나로 북국민학교가 있다. 전주시내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북국민학교라고 이름한 것으로 생각된다.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북쪽에 있으면 북초등학교, 서쪽에 있으면 서국민학교, 동남쪽에 있으면, 동남국민학교 하는 식으 작면은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다. 그런데 인구가 계속늘어 국민학교를 동국민학교와 동남초등학교 사이에 다시 짓게 된다면 어찌할까? 동동남 국민학교라고 할까 아니면 동남남 국민학교라고 할까? 그도 아니면 동남이 동동남이나 모두 좋지않으니 동1, 동2, 동3국민학교 하는 식으로 짓겠다는 발상인지 의문이다. 당국자의 시원한 작명 동기라도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지레 짐작이지만 이런저런 너스레로도 북국민학교라는 명칭은 전주시의 북쪽에 있다는 점외에는 변명거리가 신통찮을 것같다. 변명의 천재들이니 또다른 기상천외의 사례를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끌어다댈 것으로 예상되지만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북쪽이란 어떤 지점을 중심으로 했을 때 북쪽이 되는 것이며 중심이 되는 지역이 달라지면 방향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재의 전주시청을 중심으로 북쪽이 되겠지만 동물원을 중심으로 한다면 북쪽이 될 수가 없다. 또 전주시를 직할시로 승격하자는 논의가 있고 직할시가 되고 전주시의 시가지가 북쪽으로 확대된다면 시내의 중심에서 북쪽이 아니라 중앙이 될 수도 있다. 국민학교의 이름을 짓는데 전주시청이나 교육청이 중심이 될 이유는 없다. 역사적으로 고구려의 경우 집단의 부족명을 해체하고 중앙집권을 촉진하고자 부족명을 방향에 따라서 개칭하고 있다. 이는 중앙집권을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인 의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국민학교이름을 짓는 데에서도 그같은 중앙집권적인 발상이 자리한 것이 아닌가 섬뜩한 기분이다. 괜한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간편하게 학교이름을 정하려는 행정 편의적인 발상이 괘씸한 것이다. 입만 열면 미래의 주역이라고 핏대를 올리지만 국민학교의 이름을 처리하는 것에서 교육정책에 대한 기본 인식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명백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본디 북쪽은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북쪽을 기피하는 것은 숱한 외침과도 관련이 없지않으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쪽이라는 방위차제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북쪽은 해가 들지않는 곳이면 해가 들지않는 땅은 어둠의 영역이다. 미신이라고 치부할 일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어둠을 멀리하려는 의식이 바탕한다. 발음이 좋아서 북망산천을 찾아간다는 것이 아니다. 해가 들지않는 곳은 춥고 음산한 곳이며 이 세상과는 다른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도 북쪽에 있으니까 북국민학교인가?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주게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이름을 짓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이름은 우스꽝스러워서 안되고 또다른 이름은 뜻은 좋지만 발음이 어려워서 안되고 하는 식이다. 때로는 답답한 마음에서 또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서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운명철학관이나 성명분석가를 찾아서 적잖은 투자를 하기도 한다. 더구나 항렬을 따져서 돌림자를 넣거나 순수한 한글 이름을 지으려 할 경우 그 어려움은 더한층 심해진다. 돌림자를 넣어서 이름을 지을 경우 웬만큼 좋은 이름은 이미 사용된 다음이라서 작명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렵게 그럭저럭 괜찮은 이름을 짓게 되는 법이다. 한 집안의 어린이를 위하여 그같은 어려움을 감수하는 판에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맡을 어린이들의 배움의 터전, 그것도 더 말할나위 없이 중요한 교육을 담당하는 국민학교의 이름을 허투루이 지어서여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이름을 이처럼 허투루이, 별다른 의식없이 짓는 것은 비단 국민학교의 경우만 있는 일은 아니다. 시내 도처에, 경관이 그럴 듯한 곳마다 들어선 아파트치고 제나름의 이름을 가진 것이 몇군데가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하긴 이름이 없는 아파트는 없다. 다 이름은 지니고 있으나 정확히 따지면 아파트를 지은 회사의 이름이지 아파트 자체의 이름은 아니다. 몇몇 업체에서 지은 아파트에는 이름이 있는 것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건설업체의 이름을 따서 ‘현대’, ‘롯데’ 하는 따위로 끝이다. 현대아파트라 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현대회사의 사원들만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도 회사명칭으로 끝이다. 현대에서 만든 제품에 모두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상품명이 있고 그 상품명의 아래에 제조를 한 회사의 이름이 붙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아파트는 제조회사의 이름이 곧 상품의 이름이다. 혹 제조회사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날림시공을 막고 책임의식을 고취하고자한다는 식의 발상으로 호도하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고도로 계산된 상술과 그 상술과 그 상술에 부화뇌동하는 정책 담당자들의 무사안일함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럭저럭 자리보전이나 하고 골치아프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않으려는 편의주의가 자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주민들이나 아파트 주민들이 다소곳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눈가림으로 하는 조경이나 간편하게 아파트 이름을 짓는 것이나 모두가 같은 발상이다. 그리고 조경한 나무가 죽던 말던 관계가 없는 것이며 아파트 주민이 그 이름에 기분이 나쁘던 좋던 분양이 끝났으니 관계가 없는 일이다. 옛날 우리들의 조상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허투루이 짓지 않았으며 의미를 따져서 이런저런 상서로운 이름을 붙이려 노력하였다. 특히 서원의 경우 공부를 하는 곳이므로 작명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고 현판의 글씨에도 여간 공력을 들인 것이 아니었다. 기계처럼 찍어대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성과 시간, 그리고 재력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지금처럼 편의상 몇몇 사람의 발상만으로 적당히 학교의 이름을 붙이고 이름조차 없이 제조회사명만이 있는 집을 짓는 일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다. 그것이 소위 합리화와 오도된 현대화에 밀려 오늘의 참담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중차대한 학교 이름에 대한 공모 한번 없이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땅의 이름을 적절히 변조한 일본 강제 침략기의 식민정책의 연장선에서만 이해가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이 땅 어디에도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 국민학교, 한 군데 없는 것이 아닌가? 전주에 세워져있으면서도 다른 지역의 이름인 비사벌은 있으되 ‘온다라’나 ‘온고을’ 정도의 아파트 한 채 없는 것이 소위 예술과 문화의 도시인 전주가 아닌가? 이름은 사실 겉옷일지 모르나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없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정 마땅한 이름이 없고 당국자의 체면이 걸려있는 문제라면 어디 용한 운명철학가에게라도 자문을 구해보는 용기가 참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전주에는 아직 고명한 운명철학가, 작명가가 많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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