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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3 | [한상봉의 시골살이]
빈집을 헐며
김 유 석 / 시인 (2004-02-03 13:53:14)
몇 년 전 가을이었을 게다. 갯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원평천변에 엎드려 있는 언덕배기 채전, 마을을 놓으려고 부지런히 뒤집는 삽끝에서 싸그락 싸그락 시리게 이빨을 무는 것이 있었다. 안팎의 허드렝두엄을 넣는 밭엔 으레 이물질이 끼어들게 마련이어서, 밭일엔 영 맘같지 않는 나는 파야할 등 뒤에 밭이랑에 쫒기며 건성으로 나아갔지만 꿈뜬 나의 삽질을 뒤채는 어머니의 가쁜 괜이지른 닭처럼 흙을 헤쳐가며 연신 무엇인가를 두렁 밖으로 찍어내었다.억지 춘향으로 발을 다 파고 어머니의 괜이자루를 받아들고 보니 사금과리 조각이었다. 절반은 흙빛깔이 되어 성가시에 끌려나온 어느집 가계, 멍석만한 밭뙈기가 전엔 사람의 집터였다는 어머니의 혼잣말에 웬만한 고추장단지 하나 무게를 져다부리며 나는 가을 볕에 발갛게 익어가는 뉘집 올망졸망한 장독대를 떠올리곤 씁쓰레 입가를 훔쳐야 했다. 그러한 밭에서 꾸부정한 들길이 한참이나 펴보이는, 우리동네는 원래 단촐한 집성촌이었다. 채 스무 가호도 되지 않던 마을이 삼십여 채를 웃도는 오늘의 마을로 된 것은 대처로 떠난 고향 사람들이 되돌아 온 것도 뜨네기들이 모여들어 새집을 세울 것도 아니다. 삼당야합하듯, 어느날 갑자기 고만고만하던 인근 삼개 부락이 하나로 합병된 까닭이었다. 이농으로 말미암아 세가 기운 마을들은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책적으로 합병되었는데 우리 마을이 그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우리동네는 비교적 이농을 덜 타서 안동네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다른 두 마을은 고유의 이름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우리동네의 사랑채와 별채 노릇을 하여야 했다. 하여 두서너 필지길이를 뜸으로 내외하듯 떨어져 앉은 마을은 오십여가호의 제법 큰 부락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한동안은 가로등 설치나 안길포장 따위의 우선권을 따지며 옥신각신거리는 등 이웃이라기엔 좀 뭐했지만 결국은 다수결 원칙아래 한사람의 이장 통치를 받게 되었다. 오십여 가구가 다시 삼십여 가구로 줄게된 것은 불과 십년 안팎의 일이다. 두서자 중 별채에 기거하던 자식은 일찍이 버림받았다. 합병 당시 십여가호 남짓되던 별채 주민들은 이웃마을로, 아니 그 보다는 대처로 줄을 대어 옮겨앉았다. 친구따라 강남간다 일렀던가, 이웃이 떠나자 어깨가 시려운 그 이웃도 곧 세간을 구렸다. 사람의 체온이 식어지면 집의 넋도 나가는 법, 멀쩡하던 집들이 하나둘 풍을 맞는가 싶더니 어느날 문득 흔적도 없이 헐려나갔다. 여간해선 거래가 이루어지는 일이 드물뿐 아니라 팔린다 해도 사람이 사기 위한 집으로서가 아닌, 밭이나 논을 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제 단 한 채의 외딴집으로 남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세월이 필요치 않았다. 들판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있는 저 집도 봄부터 비었다. 홀로 남아 외롭던 주인이 안동네로 이사한 후로 들새들과 도둑고양이의 거처가 되어버린 집, 무심히 세월을 앓으며 헐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집. 집을 헌다. 잠시 울안을 돌며 회상에 잠기는 주인의 되새김질이 끝나면 사다리를 놓고 지붕위로 올라간다. 용마름을 깨고 한자한장 기왓장을 걷어낸다. 겉보기와는 달리 기와는 버짐처럼 피어있는 거뭇한 이끼만 닦아낸다면 다시 쓸수 있을 만큼 성하다. 그럴것이 본디 초가였더 지붕을 뜯어내고 기와를 얹은 것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중반의 일이었으니 몸체와 지붕의 수명은 전혀 다르다. 돌이켜 보면 빚을 내고 올렸던 기와, 등뼈가 뒤틀리고 갈빗대가 부러진 까닭은 다 시대의 무게가 무리하게 얹힌 탓이리라. 지붕을 걷어내고 나면 나머지는 포크레인 몫이다. 육중한 팔이 사정없이 내리찍을 대마다 집의 영혼이 먼지처럼 날아간다. 궂은 날이면 매운 눈물 삼키던 아궁이도 붙여두었다간 생각나면 다시 떼어 십던 껌붙이 문간벽도 무너져내리고 이따금 사람의 무늬같은 것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오다 벽돌보다 단단한 흙덩이에 깔린다. 어디로 갔을까, 잠 안 오는 밤이면 유난히 천장을 달음박질하던 쥐새끼 한 마리 없고, 처마밑의 빈 제비 집만이 안쓰러이 문지방을 붙잡고 쓰러지는 모습을 본다. 얼마후, 바람에 뒤집힌 비닐우산 같은 집, 깔목이나 불쏘시개로 쓸만한 연자가락을 추려내다 보면 갑자를 넘어선 상량글씨가 주인의 낯빛을 새삼숙연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구들을 놓았던 방독을 헤쳐낸 다음 죽죽 밀어붙이면 집은 간데 없고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늙은 감나무 하나가 집터를 물끄러미 굽어볼 뿐이다. 마을에는 그외에도 빈 것이나 다름없는 집들이 몇 채 더 있다. 홀몸으로 살던 노인이 죽었거나 거동이 불편하게 되자 대처의 자식들이 후레자식소리 면하려고 말년에 거두어 간 집들이다. 세간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굳게 닫힌 방문의 자물쇠는 녹이 슬었다. 과거 살아먹은 조합장맛 탓인지 아니면 진실로 돌아와 다시 농사지으며 살 것인지 주소만 남겨두고 떠난 그 사람은 올봄도 가뭇없다. 당국에서는 이같은 빈집들이 안전사고 발생과 주거환경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아래 정비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모양이다. 철거되는 빈집은 택지르 효율율적으로 이용토록 지도하고 쓸만한 집은 인접농가에서 농기구 등의 창고로 고쳐 쓰도록 하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집은 주인과 협의해 노인정 등으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라는데 어쨌든, 집을 헐어내는 것보다 말끔히 단장하여 남은 자들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편이 나으리라. 실패한 무혈혁명처럼 또다시 봄은 오고, 도시에서는 집없는 사람들이 집을 찾아 한창 이사중 이라는데 우리는 오늘 한 채의 집을 헐었다. 한 마을을 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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