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3 | [문화시평]
멀지않은 연극의 봄
김 정 수 / 연극평론가. 편집위원(2004-02-03 13:55:59)
예년에 비해 전북 연극의 봄은 일찍 찾아온 듯 싶다. 2월 전반만도 다섯 작품이 앞다투어 부대에 올려져 올 한해 동안의 뜨거운 무대 열기를 예감케 했다.
1월 말부터 공연에 들어간 [황토]의 <초분>이 7일까지 창작소극장에서 계속되었고, 9일 10일은 [예원]의 <들소>가 공연되었으며 [백제후예]의 창단공연 <욕>이 12일부터 15일까지 그 뒤를 이었다.
물론 이 중 공무원 교육용으로 제작된 <친절 좀 합시다>와 무료로 일반에 공개된 <끝없는 아리아>는 조금 특수한 경우로 예외로 친다 해도 비슷한 시기에 3개의 전주 소재 극단이 공연을 가진 것은 아마 최초의 일이 아닌가 싶다. 뿐만아니라 1월 [디딤예술단]의 <상자속의 사랑이야기>와 작년 도내 순회공연에 이어 21일부터 25일까지 무주 리조트 초청공연을 가졌던 [창작극회]의 <레미제라블>까지 감안한다면 불과 한달여 사이에 6개 극단 모두가 작푸믈 선 보여 그야말로 공연의 홍수를 절감케 했다.
이처럼 많은 연극무대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단 연극 애호가들에게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전북 연극이 극단을 통한 지속적인 공연 작업을 30여년 동안 단 하나의 극단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거나 그나마 공연 사이에 공백이 너무 커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로 지내온 시기들을 생각해 보면 괄목할 만한 변화를 넘어서 가히 혁명적 변화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연극에 대한 인식의 폭이 확대되면서 관객의 층이 두터워 졌음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여러 어려운 여건속에서 자신을 내던지는 투지로 전북 연극의 입지와 인식의 확대를 위해 노력했던 많은 연극인들의 공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의 연극을 가쁜 호흡을 가라앉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흔히 물량이 늘어나면 앞뒤없이 그 질을 걱정해 보는 단순한 기우의 감정은 아니다. 종합예술의 하나로써 인정받는 연극이 한시대, 한지역에서 어떤 의미로 존재하며 행위되어지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자리매김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 때문이다.
90년대를 사는 이 땅의 사람들은 여러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경험하며 살고 있다. 자본의 인성의 우위에 서고 배신의 윤리가 정당화 되며 능력의 평가 기준도 그 도덕성을 잃은지 오래이다. 제발 사람답게 사는 세상 만들어 보자던 외침도 이젠 달밤에 홀로 우는 개 취급하기 일쑤다. 냉철할 이성을 적당히 흐려 놓지 않고서는 적응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여기에 연극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많은 극단의 공연에 풍성한 호응으로 동참하고 있는 관객 자체가 아이러니 일수 있다. 그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극단들이 고민 해야 될 첫 번째 과제이다.
사실 연극이 태초부터 교양적 사업을 담당해 왔던건 아니다. 구태여 말하자면 에능의 공동향유를 통한 사회적 인식의 연대 정도가 그것이라면 그렇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장르가 대부분 그렇듯이 연극도 행위자와 관람자가 확연한 구분을 갖고 예술이 제 나름의 미적 완성을 위한 치달아 오면서 행위자 입장에서의 심적 기준과 사회적 기능 인식은 또 다른 문제거리가 제공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세분화된 예술 장르마다 관람자의 기대심리가 각기 다른 각도로 드러난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중, 이는 분명 연극이 아니면 안될 편안한 즐김 이상의 것을 찾기 위해 관극을 선택했다고 생각되어지고 그러기에 행위자가 제공하는 문제거리와 그 표현방식은 더 없이 신중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구태의연한 의식과 표현으로 관객을 오도하는 경우를 본다. 분명한 것은 연극 행위 자체의 명맥을 유지함으로써 선각자적 칭송과 격려를 들을 수 있던 시대는 갔다는 사실이다.
이제 전북 연극은 발전을 향한 나름의 중대한 실험대에 섰다. 작년 집행부 개편을 겪은 전북 연극협회와 6개극단이 어떤 활동을 어떻게 펴나가느냐 하는데 전라북도 연극문화가 활짝 꽃피는 관건이 달렸다 하겠다. 그 어느때보다 성숙한 여건과 열기는 더욱 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극단의 유대강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연극협회를 중심으로 한 횡적연대는 아직까지 빈약함을 면치 못하는 연극인을 발굴 육성하고 전문인의 양성과 교루에 큰 몫을 할 수 있을뿐더러 얘술관을 비롯한 서로의 인식의 폭을 확대하고 전북연극의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분업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 극단 대표들의 협으체 형태의 협회운영 방향을 더욱 활성화 시켜 정례적인 대표 모임을 통해 극단 끼리의 마찰을 극소화 시키고 나아가 연합워크샵이나 배우 교류를 추진해 나갔으면 한다. 또 공동의 주제나 소재별,작가 별로 연극제를 갖는 등 각종 기획 행사도 여기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극단의 전문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창작극 위주 굥연을 고수하고 있는〔창작극회〕와 뮤지컬 전문 극단을 기치로 내 걸고 작년도에 출범한 〔디딤예술단〕과 같이 각 극단 마다의 고유한 색깔과 향기를 지니는 작업은 극단 독자적으로도 그 의미가 있으며 관객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이제는 한 극단 안에서 관객에 봉사한다는 입장으로 능력에 부치는 다양한 연극을 제작하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연출,연기,제작 등 각 분야에서의 자기 선을 뚜렷히 하는 일 들이 필요하다.
지난 극단 〔〕예원의 공연 <들소>에서 전북의 연극 애호가들은 나이든 배우 한명의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전북연극협회 회장 김기홍씨가 50에 다다른 나이로 조연 역할을 충실히 하는 모습이었다. 그 연기와 작품 수준의 고하는 뒤로하고라도 협회와 극단 운영에 있어 아마츄어리즘을 벗어나야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여 흐뭇하게 비쳐졌다. 이와같은 일이 일회성 전시 효과에 그치지 않고 연극에 대한 애정과 집념을 각 극단에 파급시키는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했으면 한다.
연극인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연극의 봄,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