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3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잘나가는 두 톱스타와 색깔있는 영화
“그대안의 불루”
장 세 진 / 영화평론가
(2004-02-03 14:12:44)
영화가 최대의 대목이랄 수 있는 연말연시 극장가에 이 땅의 두 톱스타인 안성기, 강수연 주연의 [그대안의 블루] (이현승 감독)를 제외하곤 철저하게 외화 간판들이 내걸렸다. 작품성 면에서 볼 만한 외화들이 더러 있어 보이지만 해마다 계속되는 고질적 악순환이어서 환심하다는 생각조차 아예 해볼수 없게 된다.
세삼 원인을 따지기도 싫다. 메아리 없는 야호 소리처럼 답답해서가 아니다. 도대체 누구 좋은 일 시켜주려고 그 모양인지 무릇 관객들이 ‘비애국자’글이어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러다간 이 땅에서 마침내 우리 영화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 이를테면 위기감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12월 22일 현재) 제작된 우리 영화는 96평으로 [영화소식]이 집계해놓고 있다. 기를쓰고 본다면 [우리영화 좀 봅시다]라는 책까지 펴낸 필자가 만나본 영화는, 그러나 26편에 불과했다. 과감하게 국수주의자르 f자처하는 필자으 l사정이 그럴진대 보통의 일반 관객들 경우야 일러 무엇하랴.
그런데 제목들을 살펴보니 그런 영화가 있었나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만큼 개봉되지 않았거나 되었어도 재개봉관에서 거의 흔적없이 간판을 내건 영화들이었던 셈이다. 특히 지방의 경우 더 열악한 환경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한가지 반성할 점은 96편의 우리영화들을 살펴보니 그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같잖은’느낌이 든다는 사실이다. 열악한 소재제약의 원천적 악덕환경이 엄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같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제작풍토야 말로 자승자박의 덫에 다름아님을 반성해야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신년 극장가에 유일하게 개봉된 우리 영화 [그대안의 블루]는 그런 기본적 부담감을 안고 외로운 행진을 시작한 셈이지만 상영 15일만에 12만명의 관객을 돌파(서울기준)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우선 반갑고 대견한 일로 받아들여 진다. 오히려 그 희소가치성으로 말미암아 전화위복이 된 셈이라고나 할까.
거의 이례적으로 서울보다 1주일 늦게 상영된 이곳 극장에서도 어떤 우리 영화같지 않게 관객들이 많았던 것을 사실이다. 이른바 ‘정예관객’들과의 영화보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거리각 무섭게 1주일만에 간판을 내리는 보통의 우리영화 상영일 수를 훨씬초과하는 현상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되어 진다.
그러나 [그대안의 블루]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좋은 영화는 아니다. 다만 ‘색깔있는’ 영화로 보일 뿐이다. 우선 기존의 영화문법을 파괴하는 데서 그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마장가는 길]같은 ‘해체영화’가 작년초 만들어졌지만 [그대안의 블루]는 다분히 ‘시각디자인과적’인 모습을 여러 군데서 보여주고 있다.
감독의 전공(홍익대학교 미대 시각디자인과)과 여성관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그대안의 블루]는 푸른색 “사랑이란 이름뒤에 감춰진 악마적빛깔”인 푸른 색과 ‘역동적 여자 이미지’를 줄기차게 추구하는 디스플레이어 호석(안성기)의 특수한 일과 유별난 사랑이야기다.
호석의 맞수도 등장하는 유림(강수연)은 디스플레이어이면서도 일고 k사랑을 동시에 쟁취하려는 현대 여성의 한 전형적 인물형이다. 섹스파트너만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하는 호석에게 버림(?)을 받아 첫사랑의 연인과 결혼, 결국 일보다 가정을 택하게 되지만, 그러나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결혼식장을 뛰쳐나오는 등 유림의 인생유전은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인물설정과 인생관 등이 [그대안의 블루]를 색깔있는 영화로 보이게 한다. 평번하게 말하면 다소 편집광적이면서 속세를 거부하는 한 예인(藝人)의 혼같은 것을 호석에게서 읽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의 전달매체가 단순한 스토리가 아니라 색조를 가득 깐 영상이기 때문 그런 느낌은 더욱 기미하게 스며든다.
그점은 세속적 출세와 치부를 위해 일(예술이라 해도 좋다)을 팔아 먹는 배금주의 사회의 현대인들에게 따끔한 메시지를 안겨줌으로 영화의 기능이 재미추구에만 잇지 않음을 강변하는 주 요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호석의 유림에 대한 직업정신 전수와 이성적(理性的) 매너들이 비교적 일관되게 그려짐으로써 그런 느낌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어떤이는 [그대안의 블루]를 “90년대식 삶의 방식을 선언하고자 한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색상메타포, 최첨단 작업공간 및 직업, 가정보다 일을 더 중시하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옹호적 시선 등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신인감독의 첫 작품에서 발견된 점은 [그대안의 블루]가 갖는 미덕이자 우리 영화계의 수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대안의 블루]는 그만큼 ‘어려운’영화이다. 많은 이들이 빠른 화면전개, 독특한 장면배치, 역동적인 카메라 앵글을 강점으로 꼽았는데, 바로 그것들이 위험 부담도 안고 있었다. 가령 과거와 현재 시점이 빠른 화면전개로 뒤엉켜져, 아무리 정신을 바짝차리고 처음부터 열심히 본 일반 관개들이라 할지라도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대략 그 지점에서 [그대안의 블루]의 성공요인이 분석될 것 같다. 즉 앞에서의 희소가치적 프리미엄에다가 새롭게 추구한 몇가지 것들(여기엔 각 신문들의 보도자료 기사가 단단히 한 몫했을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잘나가는’ 두 톱스타 안성기, 강수연의 인기세 등이 그것이다.
어쨌거나 [그대안의 블루]는 색깔이 있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