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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1 | [특집]
우리문화의 참모습과 참가치를 세워 나가겠습니다.
문화저널(2004-02-03 14:15:22)
가뜩이나 어지럽고 ꡐ위기ꡑ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고,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 놓은 제도나 도덕, 권위 심지어는 당연한 믿음으로 서있어야 할 인공적인 건축물조차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히 살아간다고 하는 자체가 어쩌면 모험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문화저널』이 벌써 창간 7주년을 맞았습니다.ꡑ벌써ꡑ라는 말이 이 작업을 결코 쉽지 않게 이어온 사람들에게는 당치 않은 표현이겠지만 어찌됐든 ꡐ7년ꡑ이란 세월은 분명 짧은 시간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80년대는 그저 막연한 시간의 흐름으로만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그 격랑의 80년대에서 90년대의 한가운데를 향하고 있는 오늘까지 문화저널이 걸어온 길은 평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되돌아보면 어려웠던 그만큼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비바람을 많이 맞은 나무가 강해지듯이 가능한 쉬운 길보다는 어려운 길을 부러 택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저널의 ꡐ살아남음ꡑ이 어디 그 덕분만이겠습니까? 앞뒤 가릴 겨를 없이 산처럼 쌓이는 일들을 추스리느라 정신없는 우리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독자 여러분들과 주위 분들의 따뜻한 격려와 애정 그리고 신뢰였습니다. 그런데도 저희는 7년을 맞은 오늘까지 여러분들에게 변변한 인사조차 못 드리는 처지입니다. 늘상 이 고비만 넘기면 당당하게 설 수 있겠지 하는 희망만을 가지고 올해도 지나갑니다. 식구는 느는데도 여전히 경제적 자립은 산 넘어 산입니다. 문화저널을 살찌워 가는데 힘을 보태주시는 많은 분들에 대한 감사는 이제 또 마음 빚으로 담아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문화저널에 안겨진 7주년의 의미는 참으로 각별합니다. 월간지 발간과 함께 지켜온 백제기행도 이제 웬만큼 틀이 잡혔습니다. 40회에 이르는 동안 어느새 전라도 땅 구석구석에 저희 백제기행의 발길이 닿았고 그 땅의 역사와 숨결을 적지 않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담겨졌습니다. 우리 삶을 보고 문화를 찾고 그리고 역사를 알고자 마련했던 공연이나 문화강좌도 탄탄한 무게를 실어가고 있습니다.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시대상황 속에서 그래도 중심을 지키려고 애썼던 보람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자부심이, 보람이, 우물 안 개구리들의 한 치 밖을 내다보지 못하는 자기 안주의 판단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생각은 종종 우리의 작업에 대한 불확신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 그것은 우리가 이 땅 이 시대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이라는 깨달음입니다. ꡐ전국토가 박물관ꡑ이라는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의 행복함을 만끽할 수 있도록 또 우리의 후대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유산을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작은 소망이 큰 힘을 부추겨주는 셈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 5월이었나요? 영화 서편제를 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ꡐ송화ꡑ가 배를 움켜쥐고 핏대 세우며 소리 한 대목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객! 석에서 난데없이 ꡐ얼씨구 잘헌다ꡑ하며 추임새를 넣는 것이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중년 아저씨들이었는데 그들의 용기(?)는 금세 전염되어 영화가 끝나는 시간까지 흥겨운 대목에서는 자연스럽게 추임새가 여기저기에서 쏟아졌습니다. 그야말로 신선한 문화적 체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디 그런 일이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일이겠습니까? 이 땅 전북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아무리 힘겨운 일이 있어도 농부가 한 대목에 어깨춤을 들썩여 신명을 풀 줄 알고 춘향가의 애절한 이별 대목에 눈시울을 붉히는 따뜻한 정서를 지닌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불의에는 당당하게 맞서 싸울 줄 아는 용기로 당당한 역사를 우리에게 안겨준 자랑스런 선조들도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근대사의 포문을 열어 젖힌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을 지핀 곳이 바로 이 땅이 아니던가요? 문화저널은 바로 그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가꾸어 건강하게 내일을 열어 가는 힘이 되고 싶습니다. 대책 없이 밀려오는 국적 없는 문화의 회오리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우리문화의 참모습과 그 가치를 세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물질이 정신을 앞지르는 이 시대에 정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지만 소중한 터전이 되기를 원합니다. 가치관이 흔들리고 삶에 대한 진지한 고뇌가 실종되어 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조금은 힘이 들더라도 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잡지가 되고 싶습니다. 이 바람은 7년 전 출발 당시의 그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절실해졌습니다. 우리의 할 일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작업에 대한 성과를 챙겨내기보다는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에 중심을 두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작은 공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들의 것이 아닐 터입니다. 그러나 허물은 고스란히 우리들의 것입니다. 그 허물을 털어내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우리는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그 허물을 털어내 건강한 문화를 가꾸어 가는 역할로 세워 가는 일에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실어진다면 더욱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ꡐ유물은 제자리에 있을 때 제 빛을 발한다ꡑ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리를 찾는 일은 유물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삶일 것입니다. 『문화저널』도 제자리를 찾아 나가고자 합니다. 그 ꡐ제자리ꡑ가 혼돈스런 시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과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의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크고 작은 허물들을 나누어 갖는 일에 선뜻 나서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큰 빚, 앞으로의 작업 속에서 소중하게 갚아나가겠습니다. 가을빛이 완연하다 싶더니만 어느새 겨울바람이 성큼 다가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신뢰가 사라져 가는 이 사회에 문화저널이 변치 않는 신뢰를 독자 여러분께 보냅니다. 올 한해의 끝이 여러분들에게 큰 의미로 안겨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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