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4 | [문화시평]
주제의식과 형식의 진지한 만남
-문경순․송수미전-
김은정 / 전북일보 문화부기자․편집위원
(2004-02-03 14:30:56)
그림을 통해 우리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거나 우리의 존재의식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는 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것을 또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림과의 진정한 교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교감은 그림이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때로는 감동을 줄 수도, 혹은 그저 보고 지나가는 단순한 차원에 머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림의 역할을 깨닫게 하는 작품을 기대할 수 있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잡다한 소개와 방만한 주제 의식이 쉴새 없이 표현되어지는 속에서 작가 자신들도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를 막막해 할 때, 적어도 그러한 성향이 그들 자신들의 작품 속에서 더 이상 감추어지지 못하고 고스란히 배어 날 때 관객들은 왜 우리가 이 자리에 와있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월말부터 3월초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가졌던 「문경군 송수미전」은 근래 보기 드물게, 자기 발언이 분명한 전시회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했던 자리였다. 여성작가들의 활동이 날로 활발해져 가는 분위기 속에서 그 역량을 돋보였던 이들 두 작가는 고등학교때부터 함께 작업해온 친구 사이이다. 각기 다른 대학에서 서로 다른 분야를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다시 만나 공부하고 있는 이들은 아예 작업실까지 공동으로 마련, 가장 많은 시간을 붙어 다니는 셈이 되어버렸는데 그래서 인지 서로에게 신랄한 비판자로서 때로는 가장 든든한 격려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주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들이 2인전을 갖게 된 것은 자신들의 직립을 그런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이번 전시회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대학을 졸업한지는 얼마되지 않은 이들 신인 작가들에게는 가능성을 인정받는 다는 것처럼 확실한 결실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문경순, 송수미는 서로 다른 언어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추구하는 세계를 비교 할수도 없을 뿐 아니라 비교 할 수 있다 치더라도 별다른 의미는 가지 못한다. 다만 굳이 공통적으로 씌여질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이들이 궁극적으로 만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우리 한국적 정서, 그 자체를 찾아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한국화를 하고 있는 문경순의 작업은 하지에 혼합재료를 이용한 것으로 「월인천강지곡」이란 부제를 단 연작으로 모아져 있다. 그는 빨강색과 파랑색의 원색이 갖는 단조로움을 팔화기법을 이용해 오히려 독특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얻어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뜻 보기에 별반 다름없이 보여지는 각각의 작품들은 그 독특한 이미지 속에서 ‘뒤돌아 보아지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은밀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문경순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색상을 통해 오늘의 정서를 반영해내는데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단조로운 색상과 기법이 추상이라는 형태를 앞세우고 작가의 언어를 확고한 자기 신념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오히려 장애로 작용하는 가능성 또한 배제 할 수 없을 것 같다. 형식상의 측면에만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면 자칫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경직되거나 아예 소홀하게 다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도 그런점에서 우연이 아니다.
송수미의 작업은 종래의 작업에서 한차원 변모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그는 대학 시절 전라북도미술대전에서 공예 부문 대상을 수상항 경력을 갖고 있는데 그때의 작품 역시 기존의 염직 작품과는 다른 표현으로 화제를 모았었다. 황토색 바탕에 다 바랜 듯이 흑백사진을 연상 작용처럼 배열해 놓았던 그의 작품이 그때 주었던 이미지는 염색공에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징을 독특한 회화성으로 발휘해낸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내놓은 작품들 역시 그러나 이미지에서 전체적으로 트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평면작업에서 부조 작업으로 새로운 형식이 도입됐다는 점이 각별한 관심을 모은다. 한지와 산성 염료를 이용한 실크스크린 기법의 작품들은 여전히 송수미의 진지한 주제의식을 표현하는데 상당 부분 성공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나무가지를 이용해 한지를 풀어 부조 형식으로 돋우어 낸 일련의 근작들은 황토색 바탕의 고유한 정감과 함께 관객들을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데 기여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하고 있어야 할 우리의 역사, 그 아픈 체험들을 오늘에 되살려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작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대가족의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한 제 어린시절을 체험과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이 작업이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그래서 오늘 우리가 서있는 자리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ㅇ르 하고 있을 뿐입니다.”
송수미의 말처럼 우리의 역사나 현실을 늘상 제자리에 세워놓고 살아가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미술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절실한 것 아니겠는가.